톡식 "톱밴드, 이건 오디션이 아니에요" (인터뷰)
  • 오영경 기자
  • 입력: 2011.10.29 13:23 / 수정: 2011.10.29 13:23

▲홍대 인근 카페에서 만난 톡식 김정우(왼)와 김슬옹/ 노시훈 기자
▲홍대 인근 카페에서 만난 톡식 김정우(왼)와 김슬옹/ 노시훈 기자

[ 오영경 기자] 하마터면 오해할 뻔 했다. 우승한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변한 줄 알았다. 일정이 늦게 끝나 20여분 늦게 인터뷰 장소에 도착한 톡식은 그다지 미안한 표정을 짓지 않았다. 하지만 그 미적지근한 표정이 수줍음 많고 쑥스러움을 잘 타는 이제 이십대 초반인 두 청년들의 성품 때문이었다는 걸 오래지 않아 깨달았다. 공간의 여유가 없어 일행이 올 때까지 흡연실에 앉아있는 기자에게 "담배 안 피우시죠? 얼른 나가세요. 인터뷰도 밖에서 하시고요"라고 내보내는 그들에게서 가식 없는 배려와 진심이 느껴졌다.

KBS2 '톱밴드'에서 우승한 지 일주일 된 톡식을 홍대 인근 카페에서 만났다. 벌써부터 쏟아지는 스케줄로 7일 동안 잠도 거의 못자고 끼니도 대충 때우고 있다고 했다. 인터뷰에 앞서 가진 사진 촬영 도중 멤버 김슬옹(19)은 입이 찢어지게 하품을 하다 기자와 시선이 마주치자 부끄러운 듯 크게 웃었다. 아직 카메라 세례가 익숙지 않은, 하지만 무대에 서면 자연스럽게 '괴물'이 되는 톱밴드 밖 톡식의 이야기를 들어보고자 한다.

▲완도 브라더스가 될 뻔 했던 톡식 멤버 김슬옹(왼)과 김정우/ 노시훈 기자
▲'완도 브라더스'가 될 뻔 했던 톡식 멤버 김슬옹(왼)과 김정우/ 노시훈 기자

◆ 다른 듯 닮은 두 남자의 만남

김정우(24)는 어린 시절부터 음악적인 환경에서 자랐다. 김정우의 아버지는 '나 어떡해'로 대학가요제에서 대상을 차지한 서울대 농대 밴드 샌드페블즈 1기 멤버였다. 산타나와 에릭 클랩튼의 음악을 들으면서 자란 그는 6살 때 이미 보헤미안 랩소디를 따라 불렀다.

김슬옹은 초등학교 시절 교회에서 음악을 처음 접했다. 초등학교 2학년 때 드럼을 치는 형이 그저 멋있어 보여 따라 배우기 시작했고 중학교 때부터 학원을 다니며 본격적으로 배웠다.

두 사람은 6년 전 실용음악학원에서 처음 만났다. 밴드 제안은 1년 전 쯤 김정우가 먼저 했다. 2인조 밴드의 전설 화이트스트라입스의 음반을 건네주며 들어보고 결정하라는 말에 김슬옹은 '도대체 이 형이 뭘 하고 싶은 건가? 이걸 지금 나랑 하자고?'라는 황당한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두 달간 그 밴드의 음반만 들었고 이후 톡식의 음악에도 도입이 됐다.

밴드명 '톡식'은 우여곡절 끝에 탄생했다. 김슬옹은 "처음에 이름 지을 때 둘 다 차가 코란도라서 '란도 브라더스'를 할까 생각했다. '별들의 고향' '전원일기' 등 여러 후보가 있었는데 그때 처음으로 해체를 고려했다"며 웃었다. 결국 발음도 강렬하고 거친 음악적 색깔과도 어울리는 '톡식'으로 의견을 모았다.

밴드를 결성해 연습을 해오던 이들은 우연히 톱밴드 프로그램 포스터를 보게 됐고 별 생각 없이 지원했다. 같은 오디션 프로그램인 '슈퍼스타K'는 생각해본 적이 없냐고 물으니 손 사레를 젓는다.

"노래를 못해서 '슈퍼스타K'는 엄두도 못 냈어요. 거긴 노래 잘하시는 분들이 워낙 많고 또 그 프로그램에 맞는 스타성을 추구하는 팀이 나가야 한다고 생각했거든요. 사실 톱밴드도 처음부터 '나가야겠다' 마음을 먹은 게 아니라 추가모집을 한다는 포스터를 보고 뒤늦게 지원했죠."(정우)

▲천재라는 말을 들을 때 억울하다는 톡식 멤버들/ 노시훈 기자
▲"천재라는 말을 들을 때 억울하다"는 톡식 멤버들/ 노시훈 기자

◆ "OECD 가입국 평균 근로시간이 연습 목표"

톡식은 '톱밴드' 경연 당시부터 뜨거운 화제를 모았다. 2인 밴드임에도 불구하고 비는 소리가 없이 풍성한 사운드를 만들어내며 격렬한 무대로 시선을 사로잡았다. 시청자들과 언론에서는 그들을 두고 '천재 밴드의 탄생'이라고 치켜세웠다.

"방송이 끝나고 주변에서 천재라고 칭찬해주셨어요. 천재라는 건 어쨌든 잘 한다는 말이니 당연히 감사하죠. 그런데 우리는 정말 평범한 사람이고 엄청나게 연습을 많이 하거든요. 그게 천재라는 말로 끝나버리니까 노력이 묻히는 것 같아 억울하죠. 저희 연습목표가 '최소한 OECD 가입 평균 근로시간만큼은 연습하자'예요. 하루 5~6시간 합주를 하고 3~4시간 정도 개인연습을 하죠. 무대에 오르기 전 못해도 수백 번 맞춰봐요."(정우)

"천재라는 얘기 들을 때마다 괜히 물집까지 터뜨렸단 생각이 들어요. 또 경연에 나가야 하니까 굳은살을 만들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터뜨렸는데 너무 억울해요. 어린 나이부터 연습실을 다녔는데 연습실 사장님이 '넌 음악 하겠다고 학교도 그만둬놓고 그만큼 연습하고 있냐'며 채찍질 해주셨어요. 남들이 일하는 시간만큼만 연습해 보라고 하셨죠."(슬옹)

▲인디신 부활에 도움이 되고 싶다는 톱밴드 우승팀 톡식/ 노시훈 기자
▲'인디신 부활에 도움이 되고 싶다'는 톱밴드 우승팀 톡식/ 노시훈 기자

◆ "톱밴드, 이건 오디션이 아니에요"

우승 이후 톡식은 국내 유명기획사들의 러브콜을 마다하고 최근 아이씨사이다, 예리밴드와 함께 독립 레이블 'DMZ'를 설립했다. 굳이 힘든·길로 돌아가는 이유가 궁금했다.

"지난 2년간 클럽에서 공연을 해왔어요. 관객 분들이 10명 정도 오면 많이 왔다고 좋아했고 20명이면 대박이었죠. 그런데 지금은 그 몇 배의 분들이 저희를 보러 와주세요. 당장은 방송을 통해 쌓은 인지도로 우리를 보러 와주시는 분들이 있을 테니 단독공연보다는 클럽 합동공연을 통해 더 훌륭한 밴드들의 음악을 들려드리고 싶어요."(정우)

남들은 우승까지 해놓고 남 좋은 일 시킨다고 할 지 모르겠지만 이것 자체가 톡식을 위한 일이기도 하다. 톡식은 "기반이 없는 반짝 인기는 언제까지 갈 지 모른다. 혼자 해봐야 세상이 돌아가는 것도 아니고 인디신 자체가 확대되고 부흥해야 우리도 같이 올라갈 수 있다. 소녀시대 혼자만 있었다면 걸그룹 문화가 형성 되었겠는가"라고 반문했다.

이런 기특한 결심은 톡식 혼자만의 생각이 아니다. 최근 톱밴드 16강전에서 톡식과 맞붙었던 밴드 브로큰 발렌타인의 공연에서 톱밴드 참가자들과 제작진이 재회했다. 톡식은 "관객과 '톱밴드' 출연자들이 모두 다 같이 뛰어놀았다. 그걸 보면서 설움이 복받쳤다"고 회상했다.

"경연을 펼치는 순간엔 경쟁자라는 생각도 하지만 이날은 다들 하나로 뭉치고 서로의 생각을 확인한 순간이었어요. 탑밴드가 왜 훌륭한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하느냐면 적이 아니고 같은 마음으로 모두 잘돼야 한다는 마음으로 임했기 때문이에요. 이건 오디션이 아니에요. 애당초 목표는 경연이 아니라 인디 신을 부흥시키기 위해 이 프로그램을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어요."(슬옹)

"우리가 잘해서 우승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노력을 많이 하긴 했지만 운도 좋았죠. 우승팀이 저희가 아니었다고 해도 아마 인디신 전체의 부활을 위해 똑같은 선택을 했을 거예요. 지금의 유명세가 언제까지 갈진 모르겠지만 관객이 많이 들어찬 클럽공연을 다 같이 하고 싶어요. 저희가 할 수 있는 건 그것뿐이고 거기까지가 우리의 책임이라 생각해요."(정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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