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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밝은 웃음과 함께 사진 촬영에 임하고 있는 배우 이제훈 /배정한 기자 |
[김가연 기자] "이제훈? 가수 이재훈 아니었어?"
신예 이제훈(27)과 인터뷰를 앞두고 사진기자에게 들은 말이었다. 이제훈은 이름 석자만 놓고 보면 사실 가수 '쿨'의 이재훈에게 밀린다. 아직 이름값 하는 배우는 아니다. 하지만 이제훈에게 자신의 이름을 제대로 알릴 수 있는 기회가 왔다.
'고지전'으로 비상을 꿈꾸는 이제훈에게 이 영화는 사실 꿈과 현실의 경계였다. 꿈에 그리던 배우들과 작업하며 하루하루를 보냈지만 막상 닥친 현실은 척박했다. 상처와 추위와 싸워가며 그렇게 6개월을 보냈다. "힘든 촬영이었던 것이 눈에 보인다"라고 묻자 끝나지 않을 줄 알았지만 돌아서니 후회만 남는다고 고백한다. 이제훈에게 '고지전'과 함께 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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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고지전' 에서 신일영을 연기한 이제훈 |
★ 기태에서 일영으로…배우로 날개달다
이제훈은 '고지전'보다는 독립영화 '파수꾼'으로 이름을 먼저 알렸다. 올초 개봉한 '파수꾼'은 2만여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흥행에 성공했다. 그 이면에는 이제훈이란 배우가 있었고 많은 영화관계자들은 '이제훈의 발견'이라며 칭찬을 쏟아냈다. 단 두 편의 영화로 엄청난 시선몰이를 한 그는 연기가 천성일 것만 같지만 막상 시작은 조금 달랐다.
"사실 생명공학을 전공했어요. 연기를 하겠다는 열망은 이전부터 있었지만 실행에 옮기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린 셈이죠. 부모님께서도 반대를 많이 하셨어요. 하지만 연기에 대한 목마름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죠. 2년 정도 연기를 해보고 공부를 다시 하자 마음먹었어요. 그런데 막상 시작하니 장난이 아니더라고요. 연기에 푹 빠져 다니던 학교도 자퇴하고 새롭게 입학했죠."
이제훈은 이후 차근차근 필모그래피를 쌓았고 '파수꾼'의 기태로 날개를 폈다. 1984년생으로 올해 27세인 그는 9세 어린 고등학생 일진 기태를 마음껏 연기했다. 반항아지만 내면의 아픔을 가진 그를 진한 눈빛과 입에 감기는 욕설로 다이내믹하게 표현했다. '고지전' 신일영도 비슷하다. 부하보다 어린 대장을 맡는 그는 배역마다 유난히 나이 어린 역할과 관계가 깊다.
"전작에선 이른바 일진 고등학생, '고지전'에선 나이 많은 부하들을 다루는 우두머리를 연기했어요. 상황 자체가 아이러니했기에 캐릭터 연구에 몰두했죠. 위엄과 카리스마, 동시에 어린 모습까지 표현해야 했기에 어려움이 많았어요. 아직 어린 역할을 주시니 좋은 점도 많아요. 하지만 영원히 어릴 순 없겠죠."(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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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지전'에서 신일영을 연기한 그는 장훈 감독의 믿음이 가장 컸다고 고백했다. |
★ "장훈 감독만 믿고 버틴 6개월"
이제훈은 신일영이란 캐릭터를 얻기 위해 세 번의 오디션을 거쳤다. 탄탄한 시나리오를 보자마자 너무 탐이 났고 장훈 감독과 함께할 수 있어 끌렸다. 처음 접하는 복잡미묘한 캐릭터도 이제훈을 흔들었다. 신일영을 새롭게 만들고 싶은 마음에 애가 탔다. 하지만 막상 연기해 보니 스스로 풀어야 할 것이 너무 많았다. 비교할 캐릭터가 없었기에 자신 안에 존재한 나만 보고 연기했다.
"이미 있었던 캐릭터였다면 비교하면서 일영을 완성할 수 있었을 텐데 이 캐릭터는 신선했어요. 기댈 사람이 없어 장훈 감독님만 의지했죠. 촬영 전 감독님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캐릭터를 완성했는데 촬영에 들어가니 도움이 많이 됐어요. 감독님 눈빛만 봐도 원하는 것을 알 수 있게 됐죠. 장훈 감독님 덕에 무사히 마칠 수 있었어요."
영화 초반 객석을 집중시킨 한 장면이 있다. 이제훈의 뒷태 노출신. 관객을 위한 보너스 영상같지만 아니다. 전투에선 누구보다 과감하고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부하들을 직접 지휘해야 했던 일영의 외적인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필요한 장면이었다. 다부진 몸에 관리를 열심히 했을 것 같다고 말하자 수줍게 웃는다.
"어린아이 같지만 우두머리로서 절도있고 카리스마 넘치는 모습을 동시에 보여줘야 했어요. 그러면서 전쟁을 일상처럼 치러내는 모습도 어필하고 싶었죠. 만든 것처럼 건장한 큰 근육보다는 당차고 다부진 모습을 보여주려 애썼어요. 헬스보다 간단한 운동으로 체력을 관리하면서 몸을 만들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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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지전'을 촬영하며 아픈곳도 많았다고 털어놓은 이제훈 |
★ "건강에 이상신호…관절에 무리갔다"
'고지전'은 100억원을 웃도는 제작비가 들어간 대작이다. 블록버스터급의 화려한 장면들이 러닝타임 내내 스크린을 수놓는다. 리얼리티를 살리기 위해 대규모 전투 장면 촬영에는 1500명이 넘는 스턴트맨이 동원됐고 한 장면을 촬영할 때마다 화력과 총기도 무수히 사용했다. 총과 칼이 항상 있는 촬영장에서 당연히 부상은 있을 수 밖에 없었다.
"다리가 잘리는 신은 특수분장을 했어요. 한쪽 다리를 땅속에 깊이 박고 보이는 부분만 효과를 넣어 만들었죠. 잘린 팔도 마찬가지였어요. 촬영이 어찌나 힘든지 찰과상과 타박상은 기본으로 달고 살았어요. 마지막에는 관절에 무리가 가는 것 같이 몸에 이상이 오는 신호를 느껴서 걱정했어요. 하지만 아프지 않으려고 더 신경썼죠. 촬영장에선 혼자 몸이 아니잖아요. 막내인데 피해를 입히고 싶진 않았어요."
추위도 발목을 잡았다. 지난해 9월에 시작해 올 3월 촬영이 마무리될 때까지 한겨울을 촬영장에서 버텼다. 하지만 그의 수고는 힘든 것도 아니었다. 이제훈은 함께 한 보조출연자와 스턴트맨들이 오히려 더 대단하다고 치켜세웠다.
"올 겨울 엄청 추웠는데 군복만 입은 채 겉옷을 입고 촬영하지 못하니 너무 추웠어요. 추위를 견디는 것이 가장 힘들었죠. 하지만 저보다 보조출연자분들이 훨씬 힘드셨을 것 같아요. 촬영장이 정말 험해 자칫하면 쉽게 다칠 수 있는데 끝까지 다 해주시더라고요. 그 분들이 아마 영화를 보시면 저처럼 보람된 작업이었다고 생각하 듯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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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지전'에서 신일영 역을 연기한 배우 이제훈 |
★ "꿈같던 선배들과 나로우주센터로 단체관광"
이제훈은 '고지전'팀에서 막내급이다. 고수와 신하균, 고창석, 류승수, 류승룡 등 쟁쟁한 선배들과 함께한 촬영이 꿈만 같았다. 후배로서 잘 해야 된다는 생각이 컸다. 항상 긴장하고 내일 촬영에 대비했다. 하지만 이제는 그들과 술도 한 잔 기울일 수 있는 사이가 됐다. '고지전'이 그에게 가져다 준 행복이다.
"저는 관객으로 그 분들(배우들)을 알고 있는데 반대로 선배들은 저를 잘 모르시잖아요. 그래서 신기하고 즐거웠죠(읏음). 신하균, 고수 선배님과 촬영분량이 많았는데 정말 친형처럼 잘 챙겨주셨어요. 연기할 때도 조언을 많이 해줘 연기하기 수월했어요. 성격이 다들 시원시원하세요. 자주 모여서 술도 마시죠."
홍일점 김옥빈을 제외하고는 남성만 있는 촬영장. 나름 반년 동안 매일 함께 촬영하며 동고동락했는데 재미있는 에피소드 하나쯤 없을까 하고 물었다. 곰곰이 생각하던 그는 쉬는 시간 선배들과 나로우주센터를 관광했다고 털어놓았다.
"하루는 촬영이 지체돼 류승수, 고창석 선배님과 촬영장 인근에 있는 나로우주센터에 놀러갔어요. 처음 보는 곳이라 신기한 것도 많았고 볼거리도 많았어요. 신나게 관광했죠(웃음). 제가 애교가 없는 편인데 다들 저를 너무 아껴주셨어요. 보고만 있어도 웃음이 나오는 촬영장이었죠. 요즘은 같이 무대인사 다니면서 즐겁게 지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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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훈은 로맨틱 코미디에서 까칠남을 연기하고 싶다고 밝혔다. |
★ "김주원? OK…이제는 '로코 대세남' 꿈꾼다"
이제훈은 이제 배우로 첫발을 내딛은 신예다. 욕심 나는 배역도 많다. 스크린을 넘어 브라운관까지 접수하고 싶다는 그는 요즘 대세인 로맨틱 코미디로 여심을 사로잡고 싶다며 웃었다.
"SBS TV '시크릿가든'에서 현빈씨가 연기했던 김주원 캐릭터가 마음에 들었어요. 모든 면이 딱 좋아죠. 기회가 된다면 영화나 드라마에서 이런 까칠남을 연기하고 싶어요. 대세남이라면 저도 한번 해봐야죠(웃음)"
이제훈에게 연기자로 돌아오는 시간은 길었다. 하지만 오래 생각하고 준비한 만큼 배우로서 가진 마음가짐은 깊다. 이제훈은 지난 시간을 되짚듯 긴 호흡 끝에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지금까진 달려들어서 여기까지 왔는데 앞으로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관객이 영화를 즐기는 것 뿐 아니라 돌아가는 길이 헛된 시간이 아니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항상 연기하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