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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고지전' 속 악어중대원들의 모습들. |
[김가연 기자] 우리나라에서만 가능한 영화 모티브 중 하나는 한국전쟁을 중심으로 한 전쟁영화다. 그렇기에 매년 심심찮게 6·25을 배경으로 한 영화들이 선보인다. 올해도 벌써 두 편째다. '적과의 동침'에 이은 또 한 편의 전쟁영화 '고지전'이다.
전쟁영화는 외적으론 제작비 100억원을 웃도는 남다른 스케일과 내적으론 강렬한 휴머니즘이란 주제를 관통한다. 주제의식도 큰 카테고리 안에서는 비슷하다. 다만 스케일과 드라마, 어떤 부분을 좀더 강조하는지에 따라 영화의 색깔이 결정될 뿐이다.
'고지전' 드라마에 무게를 실은 작품이다. 그렇다고 스케일을 간과한 것은 아니다. 엄청난 제작비는 물론이고 리얼리티를 살리기 위해 한 장면을 촬영할때마다 엄청난 인원이 투입됐다. 대규모 전투 장면 촬영시엔 스턴트맨만 150여명이 동원될 정도다. 화력과 폭탄역시 만만찮았다.
그럼에도 스토리에 먼저 눈길이 가는 것은 영화를 바라보는 다른 시각덕분이다. 이 영화는 1950년부터 3년간 일어났던 전쟁 중심부가 아니라 그동안 관심 밖이었던 휴전협상이 진행되던 1953년을 배경으로 했다. 여기에 캐릭터를 심고 이들의 관계를 만들어 새로이 엮었다.
'고지전'은 관찰자 시점에 놓인 강은표(신하균)의 시선에서 시작한다. 방첩대 중위였던 은표는 북한군과 내통하는 아군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사건 조사차 악어중대가 있는 애록고지로 향한다. 은표는 그곳에서 죽은줄롤만 알았던 친구 김수혁(고수)를 만나게 된다.
전쟁 발발 당시 이등병이었던 수혁은 2년사이 전혀 다른 모습으로 중위로 승진해 악어부대를 이끄는 실질적 수장이 됐다. 그 곳에 있는 동안 은표는 하루에도 뺏고 빼앗기를 수차례 반복하는 애록고지의 실상을 마주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아군과 우리군 사이에 의심스런 거래가 오감을 확인한다.
처음 거래의 흔적에 대해 의구심을 갖지만 애록고지에 머물던 은표는 전쟁의 황망함속에서 변해가는 자신을 발견한다. 그렇게 몇달을 보내던 북한군과 우리군은 결국 휴전협상을 한다. 악어중대는 협상 12시간 전 마지막 전투를 준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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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고지전' 스틸컷 |
영화는 100억을 들인 대작답게 스펙터클한 영상이 압도적이다. 리얼리티를 살리기 위한 스태프들의 노력이 고스란히 엿보이는 작품이다. 단 한번도 본 적 없는 고지전쟁을 구현하지 위한 철저한 고증과정도 필요했다. 그렇기에 30여명의 아티스트들이 벙커와 참호, 교통호 등 세세한 부분을 살려냈다. 손으로 땅을 파고 길을 내는 등 수작업도 마다하지 않았다. 또 당시 사용했던 군용품들을 직접 공수해오는 열의도 보였다.
하지만 영화속에선 방대한 스케일보다는 캐릭터에 눈길이 간다. 지난 몇년간 대작을 접하면서 관객의 수준이 높아져 그다지 놀라운 장면이 없다는 것도 있지만 '고지전'은 은표의 시선을 따라가며 인물간의 관계와 소소한 에피소드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관찰자 역할은 한 신하균의 관조적인 태도는 영화 속에서 잘 버무려졌다. 그는 튀지도 않고 묻히지도 않고 적당히 제 몫을 해낸다. 고수는 한층 성숙된 연기력으로 무장했다. 가녀린 수혁과 악만 남은 두가지 캐릭터를 완벽하게 소화했다.
눈에 띄는 배우는 이제훈이다. 신하균과 고수를 거느리는 중대장을 맡은 이제훈은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스크린을 압도한다. 특히 극 후반부에서 안정적으로 스토리를 이끄는 그의 모습은 관객의 시선을 끌기 충분하다. 고창석과 류승수도 적재적소에서 코믹함을 자아내며 소소한 재미를 안긴다.
아쉬운 점은 류승룡과 김옥빈이다. 김옥빈은 영화의 홍일점이라는 것외에는 특이점이 없다. 남자배우들에게 파묻혀 보이지 않는다. 어느 배역이나 제대로 소화하는 류승룡이 눈에 띄지 않는 것도 문제다. 결국 '괜찮은' 배우들은 한꺼번에 소화하려고 했지만 탈이 난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고지전'은 분명 볼거리는 많았다. 이제훈이란 젊은 배우의 발견도 반갑다. 하지만 남다른 시각조차 '전쟁'이란 큰 카테고리에 갇혀 오히려 133분이 지루하고 뻔하게 느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오는 20일 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