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IFF리뷰] '산사나무 아래', 순정 없는 세상에 전하는 순도의 사랑
  • 김지혜 기자
  • 입력: 2010.10.08 07:58 / 수정: 2010.10.08 07:58

[ 부산=김지혜기자] 가벼운 만남과 쉬운 이별이 난무하는 세상이다. 드라마와 영화는 어떤가. 남녀 관계의 왜곡된 사랑을 오락 소재로 삼기 급급하다. 사랑은 남녀 사이에 일어나는 가장 신비로운 감정이다. 하지만 현대 사회에서는 그 가치가 너무나 가볍게 여겨지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장이모우 감독의 '산사나무 아래'는 한 남녀의 애틋한 순정을 통해 사랑의 존귀함을 이야기한다. 1970년대 중국의 문화대혁명을 배경으로 한 이 영화는 징치우(조우 동유 분)와 라오산(샨 도우 분)의 사랑을 그린 작품이다.

아버지가 정치적 이유로 투옥된 뒤 가정을 이끌고 있는 징치우는 농촌견습을 갔다가 탐사대에서 일하는 라오산을 만나 사랑에 빠진다. 라오산 역시 징치우에게 첫눈에 반해 무조건적인 사랑과 헌신을 보여준다. 영화에서 산사나무가 상징적인 의미로 등장하는 것은 이 나무가 가진 의미인 '유일한 사랑'이라는데에 있다.

영화는 말할 수 없이 상투적이고 진부하다. 사회적, 경제적 위치가 다른 두 남녀의 사랑, 부모의 반대, 불치병이라는 비극을 맞게 되는 결론까지 어느 것 하나 새로울 것 없는 철지난 신파극이다. 그럼에도 영화는 관객들로 하여금 첫사랑의 설레임과 순수한 사랑의 가치를 상기시키며 눈물과 감동을 선사한다.

징치우와 라오산은 사랑은 지금의 관객들이 보기에는 환타지에 가까운 순정이다. 하지만 이들의 순도높은 사랑이 공감할 수 없는 환상으로 여겨지지 않는 것은 암울한 사회상을 바탕에 깐 리얼리티가 녹아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이 살아간 시대는 자유롭게 사랑한다는 것 조차 쉽지 않은 각박한 세상이었다. 그 당시 중국은 개개인의 자유와 행복보다 이념과 신분이 우선시되는 공산주의 사회였다. 더욱이 우파였던 아버지로 인해 사회적, 경제적 핍박을 받고 있는 징치우에게 사랑은 사치에 가까웠다.

징치우에게는 자신의 가족에게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이념보다는 당장 내일의 먹거리를 걱정해야 하는 삶이 더 고단하다. 그런 그녀에게 무조건적인 위안을 주는 것은 사랑의 설레임이다.

두 사람의 사랑에는 절박함의 정서가 구구절절 배여있다. 아날로그식 사랑을 하는 이들은 말보다는 행동으로, 몸짓보다는 눈빛으로 서로의 마음을 전한다. 쉽게 타오르고 금방 식어버리는 디지털 시대의 사랑과는 다른 고결함이 있다. 그래서 "네가 언제라도 내 이름을 부르면 달려올거야", "니가 죽으면 나도 죽고 내가 죽으면 너는 사는거야"와 같은 신파 대사도 거부감 없이 가슴을 파고든다.

이는 장이모우 감독의 섬세한 연출과 배우들의 호연 덕분이다. 90년대 중국 5세대 감독의 대표주자라 평가받았던 장이모우 감독은 할리우드에 진출한지 약 7년만에 중국 서민의 이야기를 다룬 이 영화를 만들며 초심으로 돌아왔다.

첫사랑의 순수를 다룬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감독의 전작인 '집으로 가는 길(2000)'을 떠오르게 한다. 그러나 인물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은 한층 깊고 넓어졌다. 또 격동의 역사 속에서도 함몰되지 않은 개인의 감정을 섬세하게 그렸으며 도시와 시골의 풍경을 폭넓게 담아내 관객에게 시각적, 정서적 포만감까지 선사한다.

무엇보다 관객이 이 영화가 이야기하는 사랑에 아낌없이 빠져들 수 있다면 그것은 배우의 덕이 크다. 장이모우 감독이 중국 전역의 7,000여명의 배우 지망생 중에 찾아낸 신예 조우 동유와 샨 도우는 영화에서 빛나는 재능을 뽐냈다. 특히 사랑스럽게 눈웃음을 치며 사람의 마음을 뺐다가도 건드리기만 해도 눈물을 터트릴 것 같은 그녀의 다채로운 표정 연기는 보는 이들의 마음을 앗아가기에 충분한 매력이 있다.

ebada@tf.co.kr

<글=김지혜기자, 사진=영화 '산사나무 아래'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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