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나지연·서보현기자] 故 앙드레 김(본명 김봉남)의 삶은 빛과 어둠의 연속이었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디자이너로 활약하며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지만, 옷로비 청문회 사건을 겪으면서 한 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지기도 했다. 고인의 75년 인생사는 그야말로 파란만장한 영욕의 세월이었다.
한국 패션계를 대표하는 디자이너 앙드레 김이 75세 일기로 세상과 작별했다. 고인은 12일 오후 7시 25분경 서울 연건동 서울대병원에서 별세했다. 사인은 숙환. 감기로 인한 폐렴 증상이 악화돼 끝내 숨을 거둔 것이다.
고인에게는 늘 '최초'와 '최고'라는 수식어가 함께 했다. 국내 첫 남성 패션 디자이너였고, 한국인 최초로 프랑스 파리에서 패션쇼를 연 것도 바로 그였다. 그래서일까. 그는 마지막 순간까지 옷에 대한 열정을 놓지 않았다. 몸 상태가 좋지 않았던 지난 3월에도 중국 베이징에서 패션쇼를 열며 마지막 예술혼을 불태웠다.
하지만 그 이면엔 그림자도 있었다. 디자이너가 아닌 남자 김봉남의 삶은 외롭기 그지 없었다. 47세에 아들을 입양하기 전 독신으로 살 때는 온전한 가정을 이루지 못한데 대한 아쉬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세상을 뒤흔들었던 옷 청문회 사건 참고인으로 섰을 땐 희화 대상이 되면서 마음을 다치기도 했다.
패션계의 큰 별에서 이제는 하늘의 별이 된 故 앙드레 김의 75년 삶을 되돌아봤다.

◆ 빛 1. 韓 최초 남성 디자이너가 되다
고인은 1935년 경기 고양군 신도면 구파발리에서 태어났다. 초·중·고등학교까지는 평범한 소년의 삶을 살았다. 그런 그가 패션계에 입문하게 된 건 1961년, 서울 명동 국제복장학원 1기생으로 디자이너 수업을 받으면서부터다.
그리고 1년 뒤, 앙드레 김은 서울 소공동에 '살롱 앙드레(앙드레김 의상실)'를 열었다. 한국 패션계에 최초의 남성 디자이너가 탄생한 순간이었다. 이후 세상의 편견과 맞서면서 그만의 개성있는 의상과 디자인 철학으로 디자이너로서의 입지를 다졌다.

◆ 빛 2. 세계적인 패션 거장으로 우뚝 서다
앙드레 김은 짧은 시간만에 패션계 거장으로 우뚝섰다. 60년대부터 그는 국내외에서 두각을 드러냈다. 개인 의상실을 연지 2년만인 1964년에는 당대 최고 톱스타였던 엄앵란의 웨딩드레스를 만들며 화제가 됐다. 1966년에는 프랑스 파리에서 한국인 최초로 패션쇼를 열었다.
1980년대까지도 디자이너로서의 그의 삶은 탄탄대로였다. 1980년 열린 미스유니버스 대회에서는 메인 디자이너로 발탁되며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1988년 서울올림픽 당시에는 대한민국 대표팀 선수복을 디자인 하면서 한국 대표 디자이너로 우뚝섰다.

◆ 그림자 1. 남자 김봉남의 외로운 삶
하지만 그의 삶이 행복하기만 했던 건 아니었다. 디자이너라는 삶에만 몰입한 탓에 개인사는 돌보지 못한 면이 있었다. 특히 40대 중반까지 제대로 된 가정을 꾸리지 못하고 독신으로 살아간 점은 본인 스스로가 가장 아쉬워한 부분이었다.
앙드레 김은 생전 한 인터뷰에서 "가정적인 행복이 가장 소중한 행복같다"는 이야기로 가족이란 단어의 의미를 되새겼다. 그리고 이런 그의 가족애는 47살에 아들 김중도 씨를 입양하면서 완성됐고, 마지막까지 고인이 누렸던 가장 큰 행복이 됐다.

◆ 그림자 2. 옷로비 사건, 상처를 입다
시련은 1990년대 후반에도 찾아왔다. 1999년 옷로비 사건 당시 앙드레김은 사건 참고인으로 청문회장에 출석했다. 이 청문회장에서 고인은 "앙드레 김입니다"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하지만 본명을 요구하는 고압적인 질문에 결국 "김봉남입니다"라고 말하며 진짜 이름이 알려졌다. 이는 '김봉남 사건'이라 불리며 두고 두고 대중에 회자됐다. 그간의 화려한 이미지와는 달리 다소 투박한 이름을 갖고 있다는 점 때문에 큰 화제가 됐다. 이후 앙드레 김은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단골 패러디 소재가 되기도 했다. 희화화 된 면도 있었지만 긍정적인 측면에서는 앙드레 김이 대중에게 친근하게 다가간 계기가 되기도 했다.

◆ 앙드레김, 영원히 빛나는 별이 되다
앙드레 김은 빛과 그림자가 공존한 삶을 살았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고인은 살아서도 죽어서도 여전히 빛나는 별이라는 것이다. 무엇보다 패션에 대한 그의 뜨거운 열정은 전 국민의 존경을 받기 충분했다.
앙드레 김은 70대에 들어서도 디자인에 대한 변치않는 열정을 불태웠다. 이런 열정은 2000년 프랑스 예술문학훈장을 받으면서 세계적으로 그 공로를 인정받기도 했다.
마지막까지 고인은 디자이너였다. 마지막 활동이 불과 5개월 전인 3월 열린 중국 베이징 패션쇼였을 정도로 일에 대한 열정을 끝까지 놓지 않았다. 앙드레 김의 삶은 75세에서 멈췄지만 그를 기억하고 존경하는 국민들의 마음은 계속될 것이다.
<글=나지연·서보현기자, 사진=김용덕·이승훈기자>
<관련기사>
▶"그는 대한민국을 디자인했다"…앙드레 김, 패션 속 한국
▶"엄앵란부터 김연아까지"…앙드레 김과 ★의 특별한 인연
<더팩트 기자들이 풀어 놓는 취재후기 = http://press.tf.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