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 이면의 '갈등'...불리한 계약에 불만·가족 개입까지

[더팩트ㅣ강일홍 기자] 트로트 오디션 프로그램이 가요계의 판도를 바꿨다. 무명 가수에게는 인생 역전의 기회였고, 방송사에는 시청률과 화제성을 보장하는 흥행 카드였다. 하지만 화려한 성공의 이면에는 불편한 현실이 도사리고 있다. 기성 가수들의 무대는 줄어들고, 일부 오디션 출신 가수들의 몸값은 레전드급 가수들을 뛰어넘는다. 여기에 가수와 소속사 간 계약 분쟁까지 잇따르면서 트롯 가요계가 속앓이를 하고 있다.
문제는 단순한 세대교체가 아니다. 스타를 만들어내는 데는 열광하면서도 그 스타가 성장한 이후의 책임과 권리, 수익 배분을 둘러싼 질서는 제대로 정립되지 못했다는 데 있다. 과거 행사 섭외의 중요한 기준은 히트곡과 대중적 인지도, 오랜 무대 경험이었다. 물론 지금은 크게 다르다. 지자체 축제와 지역 행사에서 방송 노출도와 팬덤의 규모, 현장 분위기를 주도할 수 있는 능력이 섭외의 핵심 기준으로 떠올랐다.
그 결과 오랫동안 가요계를 지켜온 중견·원로 가수들이 설 자리를 잃고, 일부 라이징 가수의 출연료가 레전드급 가수보다 높아지는 '출연료 역전' 현상까지 나타난다. 물론 관객을 많이 끌어모으는 가수가 높은 개런티를 받는 것을 잘못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방송 노출과 팬덤의 규모가 몸값을 판단하는 절대 기준이 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수십 년간 쌓아온 음악적 성취와 대중문화에 대한 기여가 단기적인 화제성에 밀려나는 시장은 결코 건강하다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 계약 도중 정산 둘러싼 분쟁, 법정 다툼까지 갈등 사례 빈번
더 심각한 문제는 가수와 소속사 간 갈등이다. 무명 시절에는 서로가 절실했지만, 인기를 얻고 몸값이 치솟으면 관계가 흔들린다. 계약기간이 끝나자마자 결별하거나, 계약 도중 정산과 권한을 둘러싼 분쟁으로 법정 다툼까지 벌이는 사례가 빈번하다. 가수는 치열한 오디션을 통과한 자신의 실력과 노력, 대중의 선택이 성공의 원동력이라고 주장하는 반면 소속사는 무명 시절부터 가수를 발굴하고, 오디션 준비와 일정 관리, 방송 활동 등을 지원하며 투자와 희생을 감수했다고 항변한다.
양쪽 모두 일리는 있다. 그러나 문제는 성공 이후 상대방의 기여를 인정하지 않는 태도다. 가수는 자신의 재능을 과신하고, 소속사는 과거의 투자를 내세워 현재의 수익까지 과도하게 통제하려 한다면 신뢰가 무너지는 것은 시간문제다. 성공하기 전에는 동반자였던 관계가 성공한 뒤에는 수익을 놓고 다투는 이해당사자로 바뀌는 것이다. 오디션이 스타를 탄생시켰을지는 몰라도, 그 스타를 둘러싼 계약과 매니지먼트의 질서까지 성숙시킨 것은 아니다.
갈등의 중심에는 결국 돈이 있다. 예를 들어 행사 출연료가 1000만원이라고 가정하면, 우선 방송사 측 위탁 매니지먼트사(통상 1년 6개월~2년)가 절반을 배분받고, 나머지 절반을 다시 가수와 원소속사가 나누는 구조인데 결국 가수 몫은 전체의 25%, 250만원에 그친다. 각종 비용까지 사전 공제하면 실제 수령액은 더욱 쪼그라들 수 있다. 물론 이는 모든 가수에게 동일하게 적용되는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계약 만료일까지 수익 배분을 둘러싼 불만은 쌓일 수 밖에 없다.

◆ 오디션은 가수에게 '기회통로'...성공에 기여한 공로 인정해야
계약 당시엔 방송 출연과 인지도 확보가 절실해 불리한 조건을 인정했더라도, 성공 이후까지 무조건 감수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 거꾸로 소속사의 투자와 관리 비용을 외면한 채 가수의 몫만 늘려야 한다는 주장 역시 정답은 아니다. 계약서에 수익 배분율과 비용 공제 기준이 명확히 적혀 있는가? 가수는 정산 내역을 투명하게 확인할 수 있는가? 투자에 대한 보상과 가수의 권익 사이에 합리적인 균형이 있는가? 이런 질문에 답할 수 없다면 분쟁의 씨앗은 피할 수 없다.
무엇보다 부모나 형제, 남편 등 가족의 개입은 오히려 갈등을 키우는 요인이 된다는 점이다. 가족이 가수의 권익을 보호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계약과 정산 구조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채 감정적으로 끼어들면 해결할 문제를 오히려 키울 수 있다. 갑작스러운 인기와 치솟은 출연료에 도취해 주변의 도움을 당연하게 여기는 태도 역시 경계해야 한다. 오디션에서 가창력을 인정받았다고 해서 대중문화인으로서의 자질까지 검증받은 것은 아니다.
또 하나, 실력과 인성은 별개라는 사실이다. 함께 일하는 매니저와 스태프, 자신을 키워준 사람들에 대한 배려가 없다면 인기는 오래가기 어렵다. 다만 가수의 태도만 탓하기에 앞서 갈등을 반복적으로 만들어내는 계약 구조부터 들여다봐야 한다. 한국트로트제작자협회 시성웅 회장은 "갈등은 어느 한쪽의 문제라기보다는 양쪽 모두 서로 바라보는 시각이 다르기 때문에 발생한다"며 "파면 팔수록 깨끗한 물이 아니라 흙탕물이 나오는 구조적인 문제를 해소하려면 계약서부터 합리적으로 바꿔야 한다"고 지적한다.

◆ 함께 일하는 매니저와 스태프에 대한 배려가 없다면 '사상 누각'
해법은 분명하다. 계약서부터 바꿔야 한다. 수익 배분과 비용 공제, 계약기간, 위탁 매니지먼트의 권한을 명확히 하고 정산 내역을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가수의 활동 규모와 수익이 크게 달라졌다면 일정한 조건 아래 계약을 재협의할 수 있는 장치도 마련할 필요가 있다. 계약 전 법률·회계 검토와 함께 계약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는 장치를 강화해야 한다. 가수에게는 인성 교육과 직업윤리 교육이 필요하고, 소속사는 투자와 희생을 명분으로 가수의 권리를 과도하게 제한해서는 안 된다.
방송사 또한 오디션을 통해 스타를 배출하는 데 그치지 말고, 프로그램 이후의 매니지먼트 구조와 계약 분쟁을 예방할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오디션은 무명 가수에게 기회를 주는 통로여야지, 성공한 뒤 서로의 몫을 놓고 싸우는 갈등의 출발점이 돼서는 안 된다. 가수는 자신의 성공에 기여한 사람들을 인정해야 하고, 소속사는 정당한 투자 보상을 요구하되 가수의 성장과 권익을 존중해야 한다.
스타는 오디션으로 만들 수 있어도, 신뢰는 오디션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계약의 공정성과 상호 존중, 투명한 정산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오늘의 라이징 스타도 내일의 분쟁 당사자로 전락할 수 있다. 트롯 오디션은 올 하반기와 내년에도 줄줄이 예고돼 있다. 가요계가 시급히 바꿔야 할 것은 스타의 몸값만이 아니다. 성공의 과실을 공정하게 나누고 함께 성장할 수 있는 산업의 구조가, 지금 어느때보다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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