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씨네리뷰] 모든 순간이 찬란한 '흐르는 여정'

  • 문채영 기자
  • 입력: 2026.10.28 11:00 / 수정: 2026.10.28 11:00
김혜옥 데뷔 49년 만의 첫 메인 주연 도전작
클래식으로 펼쳐낸 감동…유쾌함까지 느낄 것
오는 28일 개봉하는 영화 흐르는 여정은 남편을 먼저 떠나보내고 자신만의 여행을 준비하던 춘희가 새로 이사 간 아파트에서 예상치 못한 인연들을 만나는 이야기다. /㈜영화사 진진
오는 28일 개봉하는 영화 '흐르는 여정'은 남편을 먼저 떠나보내고 자신만의 여행을 준비하던 춘희가 새로 이사 간 아파트에서 예상치 못한 인연들을 만나는 이야기다. /㈜영화사 진진

[더팩트 | 문채영 기자] 결코 흘러가는 영화가 아니다. 막이 내린 후에도 관객의 마음에 묵직하게 남는 영화다. 연출에는 빈틈이 없고 모든 장면에는 감동이 깃들어 있다. 기대 이상으로 아름다운 '흐르는 여정'이다.

28일 개봉한 영화 '흐르는 여정'(감독 김진유)은 남편을 먼저 떠나보내고 자신만의 여행을 준비하던 춘희(김혜옥 분)가 새로 이사 간 아파트에서 예상치 못한 인연들을 만나며 고요했던 일상에 새로운 변화를 맞이하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제30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한국영화감독조합 플러스엠상과 KBS독립영화상을 수상했다.

작품은 단독 주택 현관에서 바쁘게 움직이며 화분을 옮기는 춘희의 모습으로 시작한다. 그 위로 춘희가 오래된 사전의 힘을 빌려 영어로 작성한 편지를 읽는 젊은 남자의 목소리가 겹친다. 남자의 목소리가 이어지는 동안 춘희는 화분 하나를 들고 대문을 나선다.

차에 올라탄 춘희. 하지만 그의 옆자리 운전석에는 사람이 아니라 화분이 있다. 춘희는 익숙한 듯 화분이 운전하는 차를 타고 어딘가로 향한다. 단독 주택을 떠나 춘희가 도착한 곳은 계단식 아파트다. 이미 춘희의 이삿짐을 운반하는 업체가 바쁘게 작업 중이다.

하지만 그에게 문제가 생긴다. 1층에 위치한 춘희의 집에 그랜드 피아노를 넣으려면 나무를 베어야 한다는 것. 망설이는 춘희의 옆에 어색한 한국어를 구사하는 민준(저스틴 민 분)이 등장한다. 소리 소문 없이 다가온 그는 15층에 있는 자신의 집을 내어주겠다며 손을 내민다.

영화 흐르는 여정은 배우 김혜옥이 데뷔 후 처음으로 메인 주연으로 나선 영화이자 저스틴 민이 처음으로 한국 장편영화 주연에 도전하는 작품이다. /㈜영화사 진진
영화 '흐르는 여정'은 배우 김혜옥이 데뷔 후 처음으로 메인 주연으로 나선 영화이자 저스틴 민이 처음으로 한국 장편영화 주연에 도전하는 작품이다. /㈜영화사 진진

민준이 의심스럽지만 춘희는 어쩔 수 없이 그의 집으로 피아노를 옮기기로 한다. 남편을 여읜 후 생애 처음으로 아파트 생활을 시작한 춘희가 피아노를 매개로 맺어진 새로운 이웃 민준과 만나 어떠한 변화를 겪을까.

'흐르는 여정'은 관객이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다. 모든 대사와 상황에는 소박하지만 임팩트 있는 유머가 담겨 있다. 또한 이미 여러 힌트로 관객에게 암시한 하나의 결말로 가는 과정을 직접적인 말 대신 인물의 표정과 몸짓으로 섬세하게 그린다. 치밀한 계획하에 완성된 서사는 관객에게 깊은 여운을 남긴다. 김진유 감독의 연출력이 빛나는 지점이다.

소중한 사람을 잃어본 이들이 모여 서로의 아픔을 어루만지며 결국 가족이 된다. '흐르는 여정'은 이러한 흔하다고 할 수 있는 소재를 기반으로 한 작품이다. 때문에 자칫 신파로 빠질 수 있는 이야기를 김진유 감독은 감각적이고 세련되게 그리며 무엇보다 아름답게 풀어낸다.

그가 특히 신경 쓴 부분이 한 곳 더 있다. 김진유 감독은 앞서 개최된 제작발표회에서 음악의 중요성을 언급했다. 그는 음악이 또 다른 언어로 작용하기를 바랐다. 때문에 작품에는 음악과 관련된 직업을 가진 이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민준은 독일에서 온 지휘자이며 그에게 피아노 수업을 받는 성찬(박대호 분)은 피아니스트가 되기를 꿈꾼다.

민준과 성찬 덕에 여러 장면에서 클래식 음악이 흘러나오는데, 타이밍이 인상적이다. 때로는 대사 대신 클래식 음악이 인물의 감정을 대변한다. 또한 춘희 민준 성찬을 잇는 매개체로도 사용된다. 나아가 작품의 말미에는 남다른 의미를 지닌 클래식 음악 하나가 관객에게 소개된다.

영화 흐르는 여정은 소중한 이를 잃어본 사람들이 새로운 인연으로 맺어지는 과정을 그린다. 자신의 의지로 직접 선택한 가족이라는 점에서 깊은 감동과 여운을 자아낸다. /㈜영화사 진진
영화 '흐르는 여정'은 소중한 이를 잃어본 사람들이 새로운 인연으로 맺어지는 과정을 그린다. 자신의 의지로 직접 선택한 가족이라는 점에서 깊은 감동과 여운을 자아낸다. /㈜영화사 진진

배우들 역시 각자의 자리에서 존재감을 발휘했다. 데뷔 약 49년 만에 첫 메인 주연으로 나선 배우 김혜옥에게서는 기대 이상의 깊은 내공이 느껴진다. 오랜 시간 미국에서 활동해 온 저스틴 민도 한국계 미국인으로서 독일 출신 이방인 민준을 연기하며 제 옷을 입은 듯 자연스럽게 움직인다.

새로운 발견도 있다. 이번 작품으로 처음 연기에 나선 배우 박대호다. 그는 춘희와 민준의 보살핌을 받는 어린 학생 성찬으로 분했다. 모성애를 불러일으키는 역할인 만큼 그의 능숙하지 못한 연기가 불편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훈련되지 않은 인물이기에 할 수 있는 연기로 몰입을 해치지 않는다.

박대호는 실제 현직 피아니스트로도 활동하고 있다. 영화에 사용된 피아노곡 대부분을 직접 연주하며 피아노에 천부적인 재능을 지닌 성찬 캐릭터의 설득력을 높인다.

'흐르는 여정'은 결말이 정해진 슬픈 이야기다. 누군가의 깊고 무거운 선택을 영화는 처음부터 암시한다. 하지만 그 과정이 마냥 암울하거나 처연하지만은 않다. 삶의 마지막을 앞둔 시점에서 새로운 이웃을 만나 상처를 보듬으며 하나의 가족이 되는 과정은 눈이 부실 만큼 아름답다.

때문에 여운이 오래 지속된다. 가족으로 거듭나는 춘희 민준 성찬의 이야기는 관객에게 많은 질문을 남긴다. 인생에서 진짜 중요한 가치 그리고 내가 선택한 소중한 인연 등을 되새기게 만든다.

누군가의 인생 영화가 되기에 충분한 '흐르는 여정'은 전체 관람가이며 러닝타임은 125분이다. 쿠키영상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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