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기행'은 보고 나온 뒤에 할 이야기가 많은 작품"

[더팩트|박지윤 기자] "제 몸에 어떠한 배역도 들어오지 않았어요. 영주로 끝나서 다시 영주로 활동 중이죠". 배우 박소담에게 '경주기행'은 조금 더 특별하게 기억될 영화다. 촬영을 끝내고 개봉하기까지 예상보다 긴 시간이 흘렀지만, 그 사이 작품과 캐릭터를 간직한 채 온전히 자신을 위한 시간을 보내며 건강을 회복하고 돌아왔기 때문이다.
박소담은 '경주기행'(감독 김미조) 개봉을 앞둔 지난달 20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 있는 카페에서 <더팩트>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2년 전에 촬영을 끝낸 후 온전한 쉼을 가졌던 그는 그동안의 시간을 허심탄회하게 털어놓고 작품과 관련된 다양한 이야기도 전했다.
먼저 박소담은 '경주기행'을 처음 만났던 순간을 떠올렸다. 그는 "시나리오를 읽을 때 많이 울었다. 가족들이 다음에 어떻게 행동할지 궁금하고 기대되면서도 두려웠다. 영주로 제안받았음에도 캐릭터에 집중하기보다 있는 그대로 읽게 되는 글이었다"며 "감독님께서 글에 모든 걸 담아주셔서 이해가 안 되는 신이 전혀 없었다. 매 순간 확신을 주셨다"고 회상했다.

지난 8월 26일 스크린에 걸린 '경주기행'은 수학여행에서 돌아오지 못한 막내딸을 위해 8년의 기다림 끝에 '죽이는' 여행을 떠난 네 모녀의 가족 복수극으로, 데뷔작 '갈매기'(2021)로 연출력을 인정받은 김미조 감독의 첫 상업영화다.
이 가운데 박소담이 연기한 영주는 네 자녀 중 둘째로, 한때 집안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던 법대 출신 엘리트지만 지금은 사법고시를 포기한 채 코인 창을 들여다보는 백수 신세인 인물이다. 또한 그는 엄마의 무모한 계획이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명석한 두뇌를 활용해 알리바이를 촘촘하게 설계해 나가는 전략가다.
실제로 여동생과 남동생이 있는 K-장녀이지만 영주를 이해하는 게 어렵지 않았다는 박소담이다. 그는 "철저한 계획을 세우면서도 엄마와 대립한다. 궁극적인 목적은 복수의 성공이나 실패가 아니라 가족이 잘 살고 행복해지는 건데 이 선택이 가족이 행복해지는 길인가를 물어보면 법적으로 그렇지 않다. 그걸 너무 잘 알고 있는 인물"이라고 바라봤다.
"그렇기에 삶이 멈춰버린 엄마를 위해서, 또 먼저 떠난 아빠와 동생이 불쌍해서 여기까지 온 거야라는 영주의 혼란스러운 마음이 이해됐어요. 그래서 연기하면서 크게 헷갈리거나 어려운 점은 없었던 것 같아요."
박소담은 현실적인 논리와 날카로운 팩트로 속 시원한 사이다 매력을 발산하면서도 똑똑하지만 꿈을 이루지 못했다는 무력감과 결핍이 있는 불완전한 내면을 밀도 있게 표현하며 입체적인 캐릭터로 존재한다. 책을 읽거나 공부할 때만 안경을 쓰는 여동생을 보고 힌트를 얻으며 직접 제안한 안경과 히메컷 스타일로 외적 비주얼을 완성하면서 말이다.

"영주는 집에 있는 백수지만 기본적으로 갖고 태어난 감각이 되게 좋고 공부를 잘하고 잘 꾸밀 줄 알고 예민하고 세심한 친구라고 바라봤어요. 공부를 잘하고 예민한 친구들이 감각적인 면이 많다고 생각했거든요. 또 계획적인 캐릭터니까 머리 길이를 딱 유지하려고 했고 늘 고데기로 머리를 정갈하게 폈어요. 그러다가 하루하루 시간이 흐르면서 살짝 부스스해지는 변화를 줬죠."
이어 '기생충'(2019)에서 서로 다른 목적을 갖고 충돌했던 이정은과 모녀로 재회한 소회를 밝혔다. 늘 그에게 '내 엄마 한 번만 해줘'라는 말을 했었다는 박소담은 "간절히 바라니 이루어졌다. 언니가 '나 때문에 하면 안 된다'고 해서 '대본이 좋아서 하는 거다'라고 했다. 함께해서 행복했다"며 "언니는 따뜻한 사람인데 옥실로서 눈을 무섭게 뜨고 상처를 주더라. 그 에너지를 받아서 영주로서 맞설 수 있어서 기뻤다. 다음에는 살가운 엄마와 딸로 만나고 싶다"고 각별한 애정을 드러냈다.
그러면서 이번 작품을 통해 처음 만났지만, 함께 연기를 하는 동료를 넘어 진짜 자매처럼 지내는 공효진과 이연도 잊지 않고 언급했다.
"효진 언니의 목소리가 독보적이잖아요. 리딩 때 장주의 대사를 읽는 데 너무 신기하고 멋있었어요. 이연은 전작들에서 에너지가 너무 좋았는데 실제로도 동주 그 자체였어요. 함께 작업하는 동안 선배님들에게 많은 걸 배우려고 하는 그의 자세를 보고 제가 더 많이 배웠죠. 이들과 연기하니까 너무 재밌더라고요. 원래도 재밌었지만 너무 즐거워서 촬영을 끝내고 2년을 쉬는 게 힘들었어요."

좋아하는 일을 잠시 멈춘다는 게 쉽지 않았지만 배우이기 이전에 사람 박소담에게 꼭 필요한 시간이었다. 지난 2021년 갑상선(갑상샘) 유두암 진단을 받고 수술한 그는 약 1년간 활동을 중단했고 2023년 개봉한 '유령'으로 복귀했다. 이후 티빙 '이재, 곧 죽습니다'로 시청자들과 만나고 '경주기행' 촬영에 돌입했지만, 완전히 몸이 회복되지 않았다는 것을 스스로 느낀 박소담은 바쁘게 달려온 삶에 잠시 쉼표를 찍고 2년 동안 휴식을 취하고 재정비 시간을 가졌다.
"물론 조급해질 때도 있었지만 지금 30대 중후반이고 인생은 기니까 재정비하는 게 중요하겠다고 판단했어요. 2년 간 운동하고 잘 먹고 여행을 다녔어요. 잠도 7~8시간 자려고 했고요. 수술하고 2~3년 차때 괜찮은 줄 알았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이제야 건강해진 것 같아요. 20대 때 저의 컨디션이 조금씩 돌아오고 온전한 리듬이 잡히면서 수술 이후 지금이 가장 건강하다고 할 수 있는 상태에요."
끝으로 박소담은 '스파이더맨: 브랜드 뉴 데이'와 '오디세이'가 쌍끌이 흥행을 하고 있는 극장가에 '경주기행'을 걸게 된 것에 관해 "많은 분이 아침 6시부터 새벽 2시까지 영화관을 찾아주고 있는 시기에 개봉하게 돼서 너무 좋다"고 소감을 전하며 차별화된 매력과 재미를 자신했다.
"저희 영화는 뉴스나 '그것이 알고 싶다' 등을 통해 어디선가 한 번쯤 접했을, 그러면서도 나에게는 일어나지 않길 진심으로 바라는 가족의 이야기예요. 감독님이 이를 촘촘하게 담아냈죠. 저는 영화를 보고 나온 뒤에 할 이야기가 많은 작품을 하고 싶었는데 '경주기행'이 딱 그런 것 같아요. 아직 개봉 전인데 개봉 후에 많은 분이 영화를 보면서 자연스럽게 극장을 찾아와 주시지 않을까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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