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속사 성급한 부인·하영은 여전히 침묵

연예계는 수많은 별들이 등장하고 찰나의 순간에도 다양한 이슈가 쉴 새 없이 소용돌이치는 곳이다. 매일 쏟아지는 뉴스 속에서 하나의 작품, 하나의 인터뷰, 혹은 작은 현장의 가치를 찾아내는 일은 흥미롭다. '김샛별의 별별노트'는 트렌드의 중심에 선 스타들부터 연예계 전반을 관통하는 굵직한 흐름까지, '별의별' 이슈들을 기자의 시선으로 짚어내고(Notice) 기록하는(Note) 공간이다. 화려한 스포트라이트가 비추는 연예계의 오늘과 내일을 가장 선명하게 전달한다. <편집자 주>
[더팩트ㅣ김샛별 기자] "그러니까, 한마디로 '엿' 된 거네요, 나?"(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이런 엿같은 사랑' 속 하영 대사)
배우 하영에게 '이런 엿같은 사랑'은 배우 인생의 새로운 장을 열 기회였다. 조연을 넘어 작품을 이끄는 여주인공으로 한 단계 올라설 수 있는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꽃길을 앞둔 지금, 그의 역사의식이 도마 위에 올랐다. 친일 행적이 의심되는 증조부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채 자랑한 사실이 알려지면서다. 공교롭게도 광복절을 나흘 앞둔 시점에 스스로 '꽃길'에서 '낙마'한 하영이다.
논란은 하영이 넷플릭스 시리즈 '이런 엿같은 사랑' 홍보를 위해 예능에 출연하면서 시작됐다. 하영은 지난 6일 공개된 넷플릭스 코리아 웹예능 '홍보하러 온 건 맞는데'와 7일 방송된 KBS2 '옥탑방의 문제아들'에 출연해 '4대째 의사 집안'이라는 특별한 가족사를 소개했다. 특히 증조부에 대해 "일본에서 서양 의학을 배웠고 한양에 양의원을 열어 고종을 진료했다"고 소개하며 자부심을 드러냈다.
그러나 자부심은 순식간에 부메랑이 돼 돌아왔다. 방송 직후 하영이 언급한 증조부가 일제강점기 시절 의사로 활동한 안상호였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분위기는 급변했다. 안상호는 '친일파' 이완용이 고문으로 있던 단체 '대정실업친목회'의 평의원 명단에 이름을 올린 인물이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대정실업친목회를 1916년 서울에서 조직된 친일 단체로 규정하고 있다.
집안을 자랑하고자 꺼낸 인물이 역사적으로 민감한 기록과 맞닿아 있었던 셈이다. 하영의 발언을 계기로 안상호를 비롯해 가문의 과거 행적까지 다시 들여다보는 움직임이 이어졌고, 그 과정에서 대중이 마주한 기록들은 결코 반갑지 않았다.
더 큰 문제는 논란을 대하는 태도에서 불거졌다. 하영의 소속사 비스터스엔터테인먼트는 지난 10일 친일 행적 의혹에 대해 "사실무근"이라고 선을 그었다. 그러나 하루 만에 입장을 바꿨다. 11일 "추가 확인 결과 증조부 안상호 선생이 1916년 대정실업친목회의 평의원 명단에 이름이 올라와 있는 기록이 실제로 존재함을 확인했다"며 "충분한 검증 없이 '사실무근'이라고 성급하게 답변해 혼란을 드린 점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문제의 핵심은 친일 행적에 대한 해석을 놓고 의견이 갈렸다는 데 있지 않다. 기록의 존재부터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채 의혹을 먼저 부인했다는 데 있다. 사실관계를 충분히 살핀 뒤 입장을 밝힌 것이 아니라 일단 선을 긋고 본 셈이다. 결국 미숙한 대응이 논란을 잠재우기는커녕 오히려 키웠다.
여기에 당사자인 하영의 침묵은 또 다른 아쉬움으로 남는다. 하영은 현재까지 이번 논란과 관련해 직접적인 사과나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물론 논란이 불거진 직후 당사자가 공식적인 입장을 정리하는 데 시간이 필요할 수는 있다. 하지만 소속사가 이미 관련 기록의 존재를 인정하고 사과까지 한 상황이라면 이제는 하영 본인의 설명이 필요한 시점이다.
특히 당초 예정됐던 14일 '이런 엿같은 사랑' 인터뷰 일정까지 취소했다. 대중 앞에서 직접 입장을 밝힐 수 있는 공식적인 자리가 사라진 상황이라면, 오히려 더욱 빠르고 명확하게 입장을 들려줘야 한다. 소속사는 기록의 존재를 인정했다. 그렇다면 이제 남은 것은 하영의 몫이다. 무엇을 몰랐는지보다 왜 그렇게 소개했는지, 논란을 접한 뒤 무엇을 확인했는지, 그리고 자신이 어떤 부분을 돌아보고 있는지를 직접 설명해야 할 때다.

이번 논란이 뼈아픈 이유는 하영이 이제 막 자신의 이름을 알리고 있던 시점이었기 때문이다.
지난 2019년 '닥터 프리즈너'로 데뷔한 하영은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모범형사2' '이두나!' 등 단역부터 차근차근 필모그래피를 쌓았다. 그러다 지난해 넷플릭스 '중증외상센터'에서 천장미 역을 맡아 국내를 넘어 해외 시청자들에게도 자신의 이름을 각인시켰다.
이후 상승세를 탄 하영은 2026년에만 넷플릭스 작품을 중심으로 활동하며 사실상 플랫폼의 주요 기대작에서 연이어 얼굴을 비쳤다. 특히 '월간남친'을 통해서는 로맨스 장르에 대한 가능성도 보여주며 스스로를 향한 기대감을 끌어올렸다. 실제로 지난 8일 공개된 '이런 엿같은 사랑'에서는 정해인과 함께 작품을 이끄는 여자주인공으로 올라섰다.
차기작도 탄탄했다. 배우 이제훈과 호흡을 맞출 2027년 SBS 기대작 '승산 있습니다'를 비롯해 '중증외상센터 시즌2'까지 출연을 확정 지으며 꽃길이 예견돼 있던 상황이었다. 하지만 스스로 뽐낸 역사의식의 부재와 무지가 본인이 어렵게 깔아놓은 앞길을 막은 셈이다.
배우에게 모든 역사적 지식을 요구할 수는 없다. 조상의 행적을 후손에게 연대책임처럼 묻는 것 역시 경계해야 한다. 그러나 대중 앞에서 자신의 가족사를 이야기하고, 그 과정에서 역사적으로 민감한 인물을 자랑스럽게 소개했다면 그에 따른 설명과 책임도 뒤따라야 한다.
'역사 속 인물이나 상황을 평가할 때는 당시의 역사적 배경을 고려해 이해해야 한다'는 말이 있다. 한 인물의 선택을 오늘날의 잣대만으로 단순하게 재단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특히 일제강점기처럼 개인의 선택을 둘러싼 시대적 조건이 첨예했던 시기를 바라볼 때는 더욱 그렇다.
그러나 시대적 배경을 이해하는 것과 그 시대의 모든 선택을 용인하는 것은 다르다. 암울하고 혹독했던 시대적 상황 속에서도 현실에 순응하지 않고 전혀 다른 선택을 내린 사람들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결국 역사를 제대로 바라본다는 것은 당시의 상황을 이해하는 동시에 그 안에서 사람들이 어떤 선택을 했고 왜 서로 다른 길을 걸었는지를 함께 살펴보는 일이다.
이것이 우리가 역사를 공부하고, 역사의식을 갖추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이유다. 준비되지 않은 역사의식이 불러온 이번 대가는 꽃길을 눈앞에 두고 넘어진 하영 본인에게 가장 뼈아픈 교훈으로 남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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