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팩트|박지윤 기자] 분명 결말까지 다 알고 있는 이야기인데 뮤지컬로 만나니 또 색다르게 재밌다. 익숙한 장면들이 무대 위에서 생생하게 되살아나고 새로운 노래와 배우들의 움직임이 더해지니 공연장에서만 느낄 수 있는 매력들이 가득하다. 웹툰, 드라마와 또 다른 뮤지컬만의 맛을 선사하고 있는 '유미의 세포들'이다.
작품은 평범한 직장인 유미의 일상과 사랑을 머릿속 세포들의 시각으로 그려낸 독창적인 서사를 무대 언어로 재구성한 것으로, 글로벌 누적 조회수 35억 뷰를 달성한 동명의 네이버웹툰을 원작으로 한다.
'유미의 세포들'은 웹툰을 시작으로, 배우 김고은이 이끌고 안보현(구웅 역) 박진영(유바비 역) 김재원(신순록 역)을 각각 남자 주인공으로 내세운 티빙 오리지널 시리즈로 제작된데 이어 애니메이션 '유미의 세포들: 더 무비'(2024)로도 만들어지며 대중과 꾸준히 만나온 슈퍼 IP(지식재산권)다.
그렇기에 512화의 웹툰과 세 개의 시리즈로 제작됐던 방대한 이야기를 160분(인터미션 포함)의 공연으로 새롭게 펼쳐낼 뮤지컬에 이유 있는 궁금증이 쏠렸다. 특히 그림과 애니메이션으로 표현됐던 유미의 세포마을이 무대 위에서 어떻게 구현될지, 오직 뮤지컬에만 등장하는 미지의 오리지널 캐릭터 109 세포가 어떤 정체성을 갖고 이야기에 변주를 줄지에 많은 이목이 집중됐다.

이 가운데 공연은 회계팀에서 홍보팀으로 부서 이동을 제안받고 고민하는 유미의 모습으로 시작된다. 남자친구 웅이와도 행복한 시간을 보내면서 일과 사랑을 모두 놓치지 않는 듯했지만 그의 여사친(여자사람친구) 새이로 인해 연애 전선에 비상사태를 맞이한다. 그러면서 대홍수와 이별 시계가 등장하고 각자의 역할과 이름을 갖고 유미만을 생각하는 세포들이 살고 있는 세포마을도 위기에 처한다.
그런가 하면 어느 날 갑자기 세포마을에 나타난 견습세포 109는 프라임 세포인 사랑을 동경하며 유미를 위해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일과 이름을 찾으려고 노력한다. 유미의 남자 주인공은 웅이여야만 한다면서 어떻게든 이별을 막으려는 사랑 세포와 달리 주인공은 유미라고 외치는 109 세포는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 유미도 지켜내기 위해 각자의 자리에서 고군분투한다.
공연은 인물이 아닌 세포들의 시선으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전지적 세포 시점'인 덕분에 관객들은 공연이 시작되는 순간부터 자연스럽게 유미의 세포마을에 발을 들이고 세포들의 움직임을 따라가며 그의 감정과 선택을 함께 고민하게 된다.
이 가운데 감성 이성 명탐정 불안 응큼 작가 두려움 출출 구질구질 뒷북 판사 문지기 등 저마다의 역할이 있는 세포들은 이를 극대화한 의상과 독특한 실루엣으로 보는 재미를 확실하게 책임진다. 그리고 이를 연기하는 배우들은 앙상블이 아닌 저마다의 존재감을 지닌 주인공들로서 극을 이끌고, 여기에 LED와 영상의 입체감 있는 연출이 더해지면서 세포마을은 기대 이상으로 더 생생하게 펼쳐진다.
회계팀과 홍보팀을 놓고 고민하기 시작한 유미와 함께 머릿속에서 맷돌을 열심히 돌리는 세포들을 시작으로 다양한 퍼포먼스가 쉴 새 없이 이어진다. '우선순위 쇼' '응큼파티' 등 보는 재미가 있는 무대들, '마이너 마이너 마이너' 'One O Nine(원 오 나인)' 등 세포들의 진심을 알 수 있는 넘버들이 등장하면서 어느새 관객들은 관객 세포가 돼 공연을 함께 즐기게 된다. 여기에 어딘가에 잠들어 있던 유미의 오랜 꿈인 작가 세포가 깨어나고 그의 탭댄스와 함께 신명 나게 키보드를 치는 연출은 기발함으로 눈길을 사로잡는다.
다채로운 볼거리의 향연 속 관객들에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도 확실하다. 메이저가 되지 못하고 마이너 집단에 속한 불안 두려움 명탐정 작가 등은 스스로를 유미에게 도움이 되지 못하는 '쓸모없는 세포'라고 여기지만 이들은 그가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행동하고 꿈꾸는 데 꼭 필요한 존재였음이 드러나는데, 이 과정을 통해 세포들은 자신의 가치를 다시금 깨닫고 관객들도 모든 감정에는 존재해야 하는 이유가 있다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된다.

작품은 결국 어떤 감정도 불필요하지 않으며 서로가 서로에게 도움을 주는 세포들이 모여 한 사람을 완성한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무엇보다 배우들의 움직임과 다채로운 무대 연출을 통해 눈앞에서 구현되기에 작품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더욱 깊게 와닿고, 어딘가에서 나를 위해 묵묵히 제 역할을 다하고 있을 세포들을 떠올리게 하며 뭉클한 여운도 남긴다. 그렇게 유미가 아닌 모두의 이야기로서 저마다의 감정과 존재가 모여 우리의 삶을 완성해 간다는 따뜻한 울림을 전하며 막을 내린다.
세포들이 된 배우들이 개성 넘치는 각기 다른 매력으로 무대를 가득 채운다면, 이들이 뛰어놀 수 있는 판을 만들어 주는 건 109 세포와 사랑 세포 그리고 유미다.
한때 '겹치기 논란'에 좋지 않은 컨디션까지 보여줬던 최재림은 폼을 제대로 찾고 무대 위에서 날아다닌다. 109 세포가 된 그는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감과 동시에 유미만을 생각하는 캐릭터의 고군분투를 입체적으로 그려내고, 폭발적인 성량으로 넘버들을 소화하며 객석을 압도한다.
화려하게 등장하는 유리아는 러블리한 매력을 발산하고 끝도 없이 올라가는 단단한 고음으로 눈과 귀를 사로잡으며 공연 내내 사랑 세포 그 자체로 존재한다. 유미 역의 티파니 영의 분량은 생각보다 많지 않지만, 안정적인 연기와 가창력을 바탕으로 가수일 때와는 또 다른 분위기를 보여주며 색다른 인상을 남긴다.
더 나아가 원작자인 이동건 작가를 직접 언급하는가 하면, 반가운 얼굴이 신선한 방법으로 예상치 못한 타이밍에 등장하는 등 곳곳에 심어진 원작에 대한 리스펙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이미 웹툰이나 드라마 등으로 즐겼던 관객이라면 아는 맛이 공연만의 언어로 새롭게 변주되는 재미를 제대로 느낄 수 있고, 그렇지 않은 이라면 이 이야기가 계속 여러 포맷으로 재탄생되고 있는 이유를 몸소 체감할 수 있을 듯하다.
뮤지컬로 돌아온 '유미의 세포들'은 오는 8월 23일까지 서울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공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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