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팩트ㅣ강신우 기자] 플라멩코라는 생소한 소재가 익숙한 오피스와 마주쳤다. 매일같이 반복되는 야근과 결재선, 승진 경쟁으로 숨 가쁜 직장인들에게 스페인 집시들의 '한(恨) 맺힌 춤'이 스며든다.
'미친 춤'과 '오피스'가 만나며 생기는 아이러니는 묘한 해방감을 안긴다. 각박한 삶을 버텨내던 K-직장인들이 폭발시키는 감정의 리듬, 그 낯설고도 뜨거운 박자가 스크린을 두드린다.
지난 4일 스크린에 걸린 '매드 댄스 오피스'(감독 조현진)는 24시간 완벽하게 살아오던 공무원 국희(염혜란 분)가 조금 망해버린 인생 앞에서 플라멩코(스페인 집시들의 전통 민속 춤) 스텝을 밟으며 몰랐던 희망을 찾아가는 이야기를 그린다.
국희는 빈틈없이 살아온 구청의 갓생(GOD+生) 과장이다. 언제나 "칼퇴는 없다"고 호통치는 완벽주의자인 그는 그간 모든 것을 자신이 계획한대로 완벽하게 해냈다. 부구청장으로 승진과 딸 해리(아린 분)의 임용고시 합격도 눈앞에 다가오면서 그녀의 계획은 척척 진행되는 듯 보였다.

그러나 너무 강하면 부러진다고 했나, 그녀의 완벽한 스텝이 꼬여버리며 인생에 균열이 발생한다. 승진은 라이벌에게 도둑맞고, 딸은 연락이 두절된다. 매일 그녀를 반기는 것은 어두컴컴하고 텅 빈 거실 뿐이다.
처음 떨어진 밑바닥에서 우왕좌왕하던 그가 인생의 박자를 수습하기 위해 찾아간 곳은 다름 아닌 플라멩코 연습실이다.
국희는 플라멩코를 배우며 그간 각박하게 살아온 자신의 삶을 뒤돌아본다. 또한 타인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고 성장한다. 국희를 롤모델로 삼고 따라하며 성장하는 구청 주임 연경(최성은 분) 역시 그녀와 함께 플라멩코를 추며 용기와 자신감을 얻는다.
그러나 이들 앞에는 아직 많은 위기가 놓여있다. 국희는 해리와의 관계를 회복해야 하며 억울하게 휴직하게 된 연경 역시 자신의 자리를 되찾아야만 한다. 플라멩코를 통해 성장한 이들에게는 어떤 앞날이 기다리고 있을까.
작품은 현실과 비현실의 설정을 절묘하게 교차시킨다. 구청 사무실과 플라멩코 연습실이라는 상반된 공간을 오가며 차가운 일상과 뜨거운 감정을 한 화면 안에 포개 놓는다. 특히 건물 옥상에서 벌어지는 연극과도 같은 신은 인물들의 응축된 감정을 한꺼번에 터뜨리는 장치로 기능한다. '날 것 그대로의 외침'과 '플라멩코 스텝의 발 구름'은 '매드 댄스 오피스'가 선택한 위로의 방식이다.

무엇보다 염혜란과 최성은이 선보이는 명품 연기는 작품의 가장 단단한 축이다.
'더 글로리' '마스크걸' '폭싹 속았수다' 등 출연 작품마다 생활 밀착형 연기를 유감없이 보여준 염혜란은 이번에도 단단한 연기력을 선보인다. 그는 완벽주의 공무원의 냉철함과 한순간에 무너진 중년 여성의 공허함, 그리고 서툰 춤사위 속에 스며드는 해방감을 섬세하게 그려낸다. 아린과의 모녀 호흡에서도 그간 두 사람 사이 엇갈린 시선 속에 쌓여온 상처가 현실적으로 묻어난다.
최성은의 연기 역시 눈여겨 볼 만 하다. 그간 '괴물' '안나라수마나라' '로기완' 등에서 다양한 작품에서 개성있는 연기를 보였던 그는 소심하지만 속은 단단한 구청 주임 연경을 설득력 있게 소화하며 '착붙' 캐릭터를 완성했다. 눈치를 보며 매 행동을 주저하던 인물이 플라멩코 스텝과 함께 자신의 목소리를 찾아가는 과정은 사회 초년생들의 마음에 뭉클함을 안긴다.
다만 현실성에 대한 의문부호가 남는 지점도 있다. 고작 몇 개월 배운 플라멩코 실력이 완벽할 수 없기에 어딘가 어설픈 이들의 춤은 현실적이다. 그러나 이를 보며 많은 시민들이 감탄하고 박수를 치는 장면은 영화적 허용이라고 보기에도 살짝은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든다. 감정의 고조를 위해 마련된 클라이맥스이지만 다소 급작스럽게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드 댄스 오피스'가 전하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완벽한 스텝과는 거리가 멀지라도 각자의 자리에서 흔들리고 있는 이들에게 영화는 서툰 몸짓으로 응원을 건넨다. 늘 세상의 기준에 자신을 끼워 맞추느라 잊고 지냈던 저마다의 리듬을 되찾으라고, 설령 밑바닥에 떨어졌을지라도 다시 시작할 수 있다고. 투박하지만 진심 어린 박자가 관객의 마음을 묵직하게 두드린다.
직장 생활이나 가족을 생각하면서 보면 누구든 몰입할 수 있는 지점이 분명하게 있다. 다만 통쾌한 액션이나 화려함을 기대한다면 실망할 수 있다. 전체 관람가이며 러닝타임은 106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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