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일홍의 클로즈업] '두 자릿수의 착시' 트로트 오디션...재탕·삼탕의 늪
  • 강일홍 기자
  • 입력: 2026.02.23 00:00 / 수정: 2026.02.23 00:00
"열광 사라진 시청률 안주" 동력 잃은 서바이벌의 '민낯'
장르 확장 실종…꺾기 일변도 무대가 만든 획일화 '그늘'
트롯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은 5년이 지난 지금도 오리지널의 반복에 불과하다. 포맷은 거의 달라지지 않았고, 무대 구성과 심사 방식, 서사 전개까지 재탕 삼탕이라는 비판을 피하지 못했다. /TV조선 미스트롯4
트롯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은 5년이 지난 지금도 오리지널의 반복에 불과하다. 포맷은 거의 달라지지 않았고, 무대 구성과 심사 방식, 서사 전개까지 '재탕 삼탕'이라는 비판을 피하지 못했다. /TV조선 '미스트롯4'

[더팩트ㅣ강일홍 기자] '미스트롯4'와 '현역가왕3'가 후반부 막바지로 내달리고 있는 가운데 방송을 바라보는 아쉬움은 어느 때보다 크다. 두 프로그램 모두 여전히 두 자릿수 시청률을 기록하며 체면치레는 하고 있지만, 체감 온도는 사뭇 다르다. 숫자는 남았는데 열광은 사라졌다거나, 화제성은 유지되는 듯 보이나 폭발력은 확연히 줄었다는 반응이다. 오디션 서바이벌의 심장은 '새 얼굴'과 '새로운 스토리'에서 뛴다. 하지만 지금의 트로트 오디션은 그 동력이 눈에 띄게 약해졌다.

오디션 프로그램의 본질은 단 하나, 스타 탄생이다. 무명에 가까웠던 인물이 무대 위에서 자신의 서사를 완성하며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 바로 그 과정이 감동을 만들고, 그 감동이 곧 시청률과 화제성으로 이어진다. 2020년 '미스터트롯' 시즌1이 사회적 신드롬을 일으켰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같은 트로트라는 틀 안에서도 스펙트럼은 넓었다. 발라드 감성을 녹여낸 임영웅, 정통트롯의 맛을 지킨 이찬원, 성악적 기반으로 차별화를 일군 김호중까지, 장르의 확장성과 캐릭터의 대비가 시너지를 냈다.

아쉽게도 5년이 지난 지금 후속 시즌들은 흉내에 불과하다. 아니, 가용 자원이 없으니 오리지널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수준이다. 포맷은 거의 달라지지 않았고, 무대 구성과 심사 방식, 서사 전개까지 '재탕 삼탕'이라는 비판을 피하지 못했다. 무엇보다 반복 출연 패턴이 문제다. 이전 시즌에서 봤던 얼굴이 다시 등장하고, 다른 트로트 오디션에서 익숙해진 참가자가 또 다른 무대에 섰다. 도전은 존중받아야하지만, 새로움의 강도는 점점 옅어졌다. '또 그 사람'이라는 인식이 쌓이면, 긴장감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네 번째 시즌을 맞은 미스트롯4의 경우 다양성의 측면에서보면 그 아쉬움이 너무나 크게 와닿는다. 어린 아역 가수부터 성인 참가자까지 연령대는 넓어졌지만, 무대 스타일은 오히려 획일화됐다. /TV조선 미스트롯4
네 번째 시즌을 맞은 '미스트롯4'의 경우 다양성의 측면에서보면 그 아쉬움이 너무나 크게 와닿는다. 어린 아역 가수부터 성인 참가자까지 연령대는 넓어졌지만, 무대 스타일은 오히려 획일화됐다. /TV조선 '미스트롯4'

'또 그 얼굴' 반복 출연 구조, 새로움 대신 피로감만 키웠다

특히 이번까지 네 번째 시즌을 맞은 '미스트롯4'의 경우 다양성의 측면에서 보면 그 아쉬움이 너무나 크게 와닿는다. 어린 아역 가수부터 성인 참가자까지 연령대는 넓어졌지만, 무대 스타일은 오히려 획일화됐다. 단순 모창을 넘어서는 과도한 꺾기와 이른바 '완뽕' 창법이 주류를 이루며, 개별 참가자의 색깔은 희미해졌다. 트로트라는 장르의 매력을 확장하기보다는, 특정한 창법과 감성에만 집중하면서 '오히려 더 식상하다'는 반응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방송에만 그치지 않는다. 오디션의 진짜 성적표는 전국투어 콘서트에서 드러난다. 시즌1이 대형 체육관을 가득 채우며 흥행 신화를 썼다면, 후속 시리즈들은 기대에 못 미치는 성적을 반복하고 있다. 수십억 원을 투자해 공연 판권을 확보한 기획자들은 흥행 실패의 부담을 고스란히 떠안는다. 프로그램의 화제성이 약해지면, 콘서트 티켓 파워도 자연스럽게 떨어진다. 결국 방송에서 확보한 제작비를 보전하는 구조였던 공연 판권의 가치도 절반, 심지어 3분의 1 수준으로 하락하는 악순환으로 이어지고 있다.

그럼에도 방송사들이 트로트 오디션을 쉽게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동시간대 다른 예능과 비교하면 여전히 높은 시청률을 보장하는 '안전한 카드'이기 때문이다. 제작진 입장에서는 검증된 포맷을 반복하는 것이 리스크를 줄이는 선택일 수 있다. 그러나 바로 그 지점이 가장 큰 함정이다. '알고도 모른 척 하는' 이런 안일함은 서서히 브랜드를 갉아먹는다. 새로움을 고민하기보다 기존 공식을 답습하는 순간, 프로그램은 스스로 수명을 단축한다.

오디션의 생명력은 반복이 아니라 파격에서 나온다. 시청률 두 자릿수에 안주할 것인가, 다시 한 번 신드롬을 만들 것인가. 기로에 선 제작진의 결단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MBN 현역가왕3
오디션의 생명력은 반복이 아니라 파격에서 나온다. 시청률 두 자릿수에 안주할 것인가, 다시 한 번 신드롬을 만들 것인가. 기로에 선 제작진의 결단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MBN '현역가왕3'

'안전한 선택'에 갇힌 제작진…변하지 않으면 브랜드도 없다

오디션의 매력과 콘텐츠로서의 경쟁력은 원래 '스타 발굴'의 서사다. 그런데 지금의 트로트 오디션은 발굴보다 '재소환'에 가깝다. 장르적 실험은 줄어들고, 캐릭터의 다양성도 약해졌다. 시청자들은 이미 여러 시즌을 통해 비슷한 감동 구조를 경험했다. 더 강한 자극이나, 더 다른 이야기가 없다면 눈길은 자연히 다른 콘텐츠로 옮겨간다. 매년 반복되는 트롯 오디션은 서서히 한계를 보여주고 있다. 지금 두 자릿수 시청률을 지킨다고 안주해서 될 일이 아니다.

박수칠 때 떠나는 것이 가장 아름답다는 말이 있다. 그러나 지금은 떠나기엔 이미 늦은 감마저 든다. 손에 든 떡을 미적거리다 내놓지 못한 대가라고 할 수 있다. 메말라가는 웅덩이속 물고기는 비가 오지 않으면 더이상 버틸 수 없다. 이제 선택지는 하나다. 무사안일에 머물게 아니라, 지금이라도 근본적인 변화를 모색하는 것이다. 트로트라는 장르 안에서도 세대 융합, 타 장르와의 협업, 글로벌 시장을 겨냥한 확장 등 새로운 실험이 필요하다. 심사 구조와 서사 구성 역시 대대적인 혁신이 뒤따라야 한다.

트롯 오디션의 제작비는 사실상 공연 흥행을 담보로 투자되는 외부자금이다. 방송에서부터 식상함이 반복되면 장외 콘서트의 성공 가능성도 그만큼 쪼그라든다. 이런 상황은 공연계 전반에 이미 현실화돼 있는 분위기다. 시청률 두 자릿수에 안주할 것인가, 다시 한 번 신드롬을 만들 것인가, 기로에 선 제작진의 결단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오디션의 생명력은 반복이 아니라 파격에서 나온다. 지금 필요한 것은 안전한 선택이 아니라, 불편하더라도 새로운 길을 여는 용기다.

eel@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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