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인터뷰] 유해진, '왕과 사는 남자'로 알리고 싶은 것
  • 박지윤 기자
  • 입력: 2026.01.28 00:00 / 수정: 2026.01.28 00:00
산골 마을의 촌장 엄흥도 役 맡아 박지훈과 호흡
"실존 인물 연기 부담…단종 옆에 이런 분이 있었다는 걸 많이 알았으면"
배우 유해진이 영화 왕과 사는 남자 개봉 관련 인터뷰를 진행했다. /쇼박스
배우 유해진이 영화 '왕과 사는 남자' 개봉 관련 인터뷰를 진행했다. /쇼박스

[더팩트|박지윤 기자] 매번 다른 결로 그 시대와 호흡하며 사극 흥행 불패 기록을 써 내려온 배우 유해진이 또 한 번 사극으로 관객들과 만날 준비를 마쳤다. 그 어느 때보다 침체된 시기에 재미와 의미를 다 잡은 '왕과 사는 남자'로 유의미한 기록을 추가할 수 있을지 이목이 집중된다.

유해진은 영화 '왕과 사는 남자'(감독 장항준) 개봉을 앞둔 지난 22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 있는 카페에서 <더팩트>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그는 "만들고 처음 봤는데 상당히 슬퍼서 많이 울었다. 또 장면을 붙여 놓으니까 제 대사가 엄청 많더라. 고생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문을 열며 다양한 이야기를 꺼냈다.

오는 2월 4일 스크린에 걸리는 '왕과 사는 남자'는 1457년 청령포, 마을의 부흥을 위해 유배지를 자처한 촌장과 왕위에서 쫓겨나 유배된 어린 선왕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으로, 한국 영화 최초로 단종의 숨겨진 이야기를 중점적으로 다룬다.

앞서 장항준 감독은 "시나리오를 쓸 때부터 유해진을 생각했다"고 밝히며 그를 향해 두터운 신뢰를 내비쳤다. 그렇다면 유해진은 어떤 지점에 매료돼 출연을 결심했을까. 그는 "가장 끌렸던 건 이야기 그 자체였다. 모든 세대가 같이 공감할 수 있는, 타겟이 광범위한 이야기라서 잘 만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유해진은 단종이 유배 온 광천골의 촌장 엄흥도 역을 맡아 열연을 펼친다. /쇼박스
유해진은 단종이 유배 온 광천골의 촌장 엄흥도 역을 맡아 열연을 펼친다. /쇼박스

작품은 태어나 단 한 번도 자신의 뜻대로 살아본 적 없는 단종이 1457년 궁을 떠나 영월 산골 마을 청령포로 유배길에 오르는 이야기를 담아낸다. 이 가운데 엄흥도는 실록에 적힌 '노산군이 돌아가셨을 때 엄흥도가 슬퍼하며 곡을 하고 시신을 수습했다. 그리고 숨어 살았다'라는 단 두 줄에 영화적 상상력을 더해 탄생된 캐릭터다.

이번 작품을 만난 후 엄흥도를 처음 알게 됐다는 유해진은 실존 인물을 표현하는 것이 많이 조심스러웠다고. 그는 "관객들도 영화를 보고 (엄흥도라는 인물을) 처음 알게 될 텐데 재밌게 표현하면서도 어느 정도까지 해야 누가 되지 않을까를 많이 고민했다"고 솔직하게 털어놨다.

"가상의 설정이지만 단종을 모셔왔을 때부터 어떻게 인간적으로 바라볼까를 중요하게 생각했어요. 그러다가 어느 순간 부모가 자식을 볼 때 이런 감정이겠다는 게 자연스럽게 느껴지더라고요. 더 가볍게 표현할 수도 있었지만 최대한 그러지 않으려고 했어요. 단종이 역사책에 비운의 왕으로 남아있지만 인간으로서의 고뇌가 그려져서 좋은 작품이라고 생각했고, 단종이 너무 안 된 죽음을 맞이하지만 옆에 이런 분이 있었다는 걸 많이 알았으면 하는 바람으로 연기했어요."

극 중 엄흥도는 매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산골 마을의 촌장으로, 유배 온 양반 덕분에 풍족한 생활을 누리게 된 옆 마을의 소식을 듣고 광천골을 유배지로 만들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는 인물이다. 계획과는 달리 왕위에서 쫓겨난 어린 선왕 이홍위(박지훈 분)가 마을로 오게 되자 엄흥도는 유배지를 관리하는 보수주인으로서 이홍위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면서도 점차 그에게 마음을 열며 변화하게 된다.

이를 연기한 유해진은 역사책을 찢고 나온 듯한 외적 비주얼을 장착하고 맛깔나게 대사를 내뱉으면서 작품의 유쾌함을 책임진다. 그러다가 점점 이홍위와 아까워지는 관계성 안에서 그를 자식처럼 바라보는 인물의 감정을 섬세하게 표현하며 특유의 진정성과 인간미가 가득한 열연으로 대체 불가한 존재감을 발산한다.

이러한 활약을 펼칠 수 있었던 비결을 묻는 말에 "난감한데 타고났다"고 너스레를 떤 그는 "제 입에 붙이려고 계속 노력하는 편이다. 현장을 돌아다니면서 계속 되뇌고 아이디어를 떠올리려는 오랜 습관이 있다. 또 이번에는 어떻게 하면 줄을 잘 탈 수 있을지 밸런스를 많이 고민했다"고 중점을 둔 부분을 전했다.

유해진은 박지훈이 에너지를 뿜는 걸 보고 나도 정신을 바짝 차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좋은 자극이 됐다고 각별한 애정을 드러냈다. /쇼박스
유해진은 "박지훈이 에너지를 뿜는 걸 보고 나도 정신을 바짝 차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좋은 자극이 됐다"고 각별한 애정을 드러냈다. /쇼박스

역사가 곧 스포인 작품이지만 그럼에도 단종이 죽음을 맞이하는 장면은 짙은 여운을 선사하면서 엔딩 크레딧이 올라간 후에도 한참을 먹먹하게 만든다. 여기에는 단종의 마지막을 함께하는 장면에서 인물이 느끼는 복잡다단한 감정을 제대로 터뜨리는 유해진과 많은 것을 담고 있는 박지훈의 눈빛을 빼놓을 수 없다.

"마지막 신은 구상이라는 걸 할 수 없었어요. 감정에 맡기는 것밖에 없었죠. 그 신을 위해서 달려왔다고 볼 수도 있는데 인물들이 그사이에 많은 게 쌓여있잖아요. 저도 지훈이와 알게 모르게 쌓인 정이 있더라고요. 제가 정을 붙인 사람을 보내야 되는 걸 어떻게 말로 형용할 수 있겠어요. 이건 계산도 구상도 안 되고 진실하게만 갖고 가려고 했어요. 그래서 평소와 달리 지훈이를 피해 다녔어요. 감정이 미리 터질 것 같았거든요."

무엇보다 '왕과 사는 남자'는 엄흥도와 단종의 관계성이 핵심인 작품이다. 이를 이끈 유해진과 박지훈은 현장에서 함께 걸으면서 영화와 관련된 것부터 개인적인 이야기까지 많은 대화를 나누며 자연스럽게 가까워졌고, 이러한 현실의 관계가 극에 자연스럽게 녹아들면서 더욱 진한 케미를 만든 두 사람이다.

"서로 대사를 하다 보면 눈을 보게 되는데 그때 이야기 속에 있는지 없는지가 보여요. 예를 들어 슬픈 장면을 찍을 때 무슨 이야기를 하다가 그 친구를 보면 벌써 젖어 있더라고요. 그러면 이를 보는 사람도 뭔가가 확 오거든요. 반대로 제가 젖어 있으면 지훈이도 충혈되는 거고요. 이 친구가 이야기 안에 있는 걸 보고 그렁그렁한 눈을 마주하고 있으면 없던 것도 확 끌어오게 되는데 이게 시너지인 것 같아요."

그러면서 박지훈을 향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유해진은 "저는 '약한영웅'을 안 봐서 지훈이의 연기를 조금 걱정했었다. 역할이 쉽지 않았는데 처음에는 연약하다가 강인한 면모를 되찾고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변화를 너무 잘 표현하더라"며 "그 바탕에는 아마 진실된 눈빛이 있었던 것 같다. 처음 연기를 보는데 그 뿜어내는 에너지를 보면서 정신을 바짝 차려야겠더라. 좋은 자극이 됐다"고 힘주어 말했다.

유해진은 왕과 사는 남자를 보고 나서 주변에 좋아하는 사람과 가까이 있는 분들을 한 번쯤 생각해 보는 기회가 됐으면 좋겠다고 많은 관람을 독려했다. /쇼박스
유해진은 "'왕과 사는 남자'를 보고 나서 주변에 좋아하는 사람과 가까이 있는 분들을 한 번쯤 생각해 보는 기회가 됐으면 좋겠다"고 많은 관람을 독려했다. /쇼박스

그렇다면 '라이터를 켜라'(2002) 이후 오랜만에 현장에서 다시 만난 장항준 감독과는 어땠을까. 유해진은 "장 감독의 장점 중 하나가 잘 받아주는 거다. 지켜야되는 건 지키면서도 열려있는 게 되게 좋은 부분이다. 마냥 가벼운 게 아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예전부터 '난 이렇게 행복하게 사는 게 좋아'라는 마인드가 안 변한 것 같다. 늘 변함없이 철이 안 든다. 이게 되게 큰 장점이다. 꼰대 같을 수도 있는데 그게 없다"고 강조했다.

그동안 천만 관객을 사로잡은 '왕의 남자'를 시작으로 '전우치' '해적' '올빼미' 등 시대극과 좋은 합을 보여 온 유해진이다. 더 나아가 그는 '파묘'(2024)로 천만 영화를 하나 더 추가했고 '야당'(2025)은 청소년관람불가임에도 337만 명을 동원하며 그해 개봉한 한국 영화 흥행 2위를 기록하는 등 코로나19 이후 침체된 극장가에서도 꾸준히 두각을 드러내 왔다.

이를 되돌아본 유해진은 "'왕과 사는 남자'도 잘 될 요소가 없지는 않은 것 같다"고 조심스럽게 말을 이어가면서 "잘 됐으면 좋겠다. 혼자 배부르자는 게 아니라 저희 영화가 잘 돼야 또 투자받고 시장이 살아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바람을 내비쳤다.

"지훈이가 '왕과 사는 남자'를 보고 나서 주변에 좋아하는 사람과 가까이 있는 분들을 한 번쯤 생각해보는 기회가 됐으면 좋겠다고 했는데 그런 의미가 있는 것 같아요. 지금 세상이 삭막하다고 하지만 분명 마음 한 켠에는 정이 있을 텐데 저희 영화를 보면서 그런 마음을 일깨우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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