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팩트|박지윤 기자] 원작의 감성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그때 그 시절의 한국적 정서를 자연스럽게 덧입혔고, 익숙한 틀 위에 또 다른 매력과 감정의 결을 성공적으로 쌓아 올렸다. 그렇게 잘 만든 리메이크가 무엇인지를 분명히 보여주는 '만약에 우리'다.
지난해 12월 31일 스크린에 걸린 '만약에 우리'(감독 김도영)는 뜨겁게 사랑했던 은호(구교환 분)와 정원(문가영 분)이 10년 만에 우연히 재회하며 기억의 흔적을 펼쳐보는 현실 공감 연애를 그린 작품으로, 2020년 중국 멜로 영화 흥행 순위 1위에 오른 '먼 훗날 우리'(2018)를 리메이크했다.
작품은 2024년 여름, 호치민에서 한국으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우연히 마주치는 은호와 정원의 모습으로 시작된다. 태풍으로 인해 비행기가 이륙하지 못하자 호텔로 간 정원은 어쩔 수 없이 마지막 방을 예약한 은호와 하룻밤을 보내면서 함께했던 과거를 추억한다.
그리고 영화는 자연스럽게 200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향에 가는 은호와 휴학 후 어디론가 떠날 결심을 한 정원은 고속버스에 나란히 앉는다. 하지만 두 사람은 산사태로 인해 목적지까지 무사히 가지 못하게 되고, 은호를 데리러 온 아버지(신정근 분)의 차에 함께 타면서 뜻밖의 인연을 맺게 된다.

게임을 만들고 싶은 은호와 언젠가는 자신의 집을 짓고 싶은 건축가가 꿈인 정원은 서울에서 지내면서 서로의 꿈을 응원하고 의지하다가 어느새 일상 깊숙이 스며들고, 자연스럽게 연인으로 발전한다. 이후에도 함께 웃고 싸우고 화해하면서 뜨겁게 사랑하지만, 두 사람은 현실의 벽 앞에서 결국 다른 길을 선택하고 만다.
그로부터 약 10년이 지난 후, 호치민에서 우연히 다시 만난 은호와 정원이다. 이들은 같은 듯 다른 기억을 꺼내면서 시간을 보내고 은호는 정원에게 오랫동안 가슴 속에 품고 있었던 "만약에 우리가 그때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 지금은 달라졌을까?"라는 질문을 던진다.
이렇게 '만약에 우리'는 10여 년 만에 비행기에서 우연히 마주친 은호와 정원이 한때 뜨겁게 사랑했던 사랑과 이별의 시간을 되짚어가면서 마침내 진짜로 이별하게 되는 이야기를 스크린 위에 자세하게 펼쳐낸다.
메가폰을 잡은 김도영 감독은 주인공들이 함께했던 따뜻한 과거는 컬러로, 서로가 없는 현재는 흑백으로 연출하면서 시간적 대비를 확실하게 준다. 또한 남녀 간의 사랑뿐만 아니라 꿈꾸는 것부터 현실에 가로막혀 좌절되는 순간까지 청춘의 시간도 놓치지 않는다. 많은 사랑을 받은 이야기의 좋은 장치들에 그때 그 시절의 한국 감성을 덧입히며 자연스럽게 차별화를 꾀하고 과몰입을 유발한다.

약 10년의 세월을 표현한 구교환과 문가영의 연기와 호흡은 기대 이상이다. 삼수를 거쳐 컴퓨터 공학과에 재학 중인 은호 역을 맡은 구교환은 첫사랑의 설렘부터 뜻하는 대로 풀리지 않는 현실에 가로막힐 때마다 지쳐가는 청춘의 얼굴과 이별 후 밀려오는 후회까지, 누구나 한 번쯤 경험해 봤을 복합적인 감정을 특유의 유니크한 호흡으로 내뱉으며 대체 불가한 존재감을 발산한다.
은호의 첫사랑이자 헤어진 전 여자친구 정원으로 분한 문가영은 외적 스타일링에 변주를 주면서 고달픈 서울살이에도 자신의 꿈을 포기하지 않는 청춘에서 성숙한 커리어우먼으로 성장한 모습을 자연스럽게 그려낸다. 특히 버스에서 은호의 번호를 지우고 울음을 삼키는 장면과 은호의 아버지가 자신에게 남겨두고 간 편지를 뒤늦게 읽고 눈물을 뚝뚝 흘리는 신 속 문가영의 활약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으며 짙은 여운을 선사한다.
여기에 구교환과 문가영은 현실적이고 복잡다단한 감정선을 섬세하게 그려내고, 유쾌하면서도 애틋한 케미를 형성하며 14살이라는 나이 차이가 느껴지지 않는 호흡으로 극을 이끈다.
아이러니하게도 멜로 영화지만, 두 주인공이 비로소 이별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면서 해피엔딩으로 끝맺음 되는 '만약에 우리'다. 비슷한 경험이 있는 관객들은 저마다의 추억을 떠올리고, 그렇지 않은 이들은 구교환과 문가영의 열연 덕분에 자연스럽게 인물들이 처한 상황과 느끼는 감정에 동화되면서 114분이라는 러닝타임 그 이상의 여운과 먹먹함을 가져갈 듯하다. 15세 이상 관람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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