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팩트|박지윤 기자] 2025년 영화계를 한 문장으로 정리하자면 외화 애니메이션의 뚜렷한 강세 속에서 좀처럼 힘쓰지 못한 한국 영화다. 물론 여러 작품이 해외 영화제에 초청되고 수상하며 글로벌 입지를 다졌지만, 국내 극장 산업은 여전히 활력을 되찾지 못하며 침체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 천만 영화 0편…563만 명 동원한 '좀비딸', 韓 영화 1위
지난 2022년 '범죄도시2'를 시작으로 2023년 '범죄도시3'와 '서울의 봄' 2024년 '파묘'까지, 코로나19 이후 영화계의 침체기가 지속되고 있는 상황에서도 매년 꾸준히 천만 영화는 탄생했었다.
하지만 올해는 단 한 편도 천만 영화가 나오지 않으면서 그 어느 때보다 역대급 위기에 처한 한국 영화계의 현실을 실감케 했다. 개봉한 한국 영화 중에서 천만 관객을 돌파하지 못한 것은 사회적 거리두기가 시행된 2021년 이후 처음이다.
올해 개봉한 한국 영화 중 흥행 1위를 기록한 작품은 조정석 주연의 '좀비딸'(563만 명)이다. 2위는 '야당'(337만 명)이고, '어쩔수가없다'(294만 명) '히트맨2'(감독 254만 명) '보스'(243만 명) '승부'(214만 명)까지 총 네 편의 작품이 누적 관객 수 200만 명을 돌파했고, '하이파이브'(189만 명) '노이즈'(170만 명) '검은 수녀들'(167만 명) '얼굴'(107만 명) '전지적 독자 시점'(106만 명)이 100만 고지를 밟았다.

◆ '귀멸의 칼날'부터 '주토피아'까지…검증된 IP의 흥행
올해 개봉한 한국 영화 1위는 '좀비딸'이지만 2025년 박스오피스 흥행 1위는 '주토피아 2'(감독 재러드 부시·바이론 하워드)다. 9년 만에 속편으로 돌아온 작품은 개봉 23일 만에 '극장판 귀멸의 칼날: 무한성편'(568만 명)을 제치고 2025년 국내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하는 쾌거를 거뒀다.
이어 '주토피아 2'는 개봉 30일 만에 700만 관객 고지를 밟으면서 올해 개봉작 가운데 처음으로 700만 관객을 동원한 작품이 됐다. 또한 이는 개봉 75일 차에 700만 명을 사로잡은 '엘리멘탈'(724만 명)보다 41일이나 빠른 속도인 만큼, '주토피아 2'가 '엘리멘탈'의 기록을 넘고 역대 국내 애니메이션 흥행 TOP 4에 등극할 수 있을지 이목이 집중된다.
'주토피아 2'가 개봉하기 전에는 검증된 IP(지식재산권)의 일본 애니메이센의 강세가 돋보였다. '극장판 귀멸의 칼날: 무한성편'은 568만 명을, '극장판 체인소맨: 레제편'은 342만 명을 기록했다. 또한 '진격의 거인 극장판: 더 라스트 어택'은 메가박스 단독 개봉작임에도 불구하고 약 90만 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이는 OTT(온라인글로벌동영상플랫폼)를 통해 시청의 진입장벽이 낮아짐에 따라 형성된 두터운 글로벌 팬덤층이라는 명확한 관객 타겟층이 존재했기에 가능한 결과다. 또한 IMAX와 4DX 등 특별관에서만 느낄 수 있는 시네마틱 경험과 팬들의 소장 욕구를 자극하는 주차 별로 지급되는 다양한 굿즈 등은 관객들의 'N차 관람'을 유발하며 기대 이상의 존재감을 발산했다.

◆ 봉준호·박찬욱, 힘 못 쓴 거장들…그럼에도 해외 영화제에서 두각
봉준호 감독은 국내를 넘어 전 세계를 사로잡은 '기생충'(2019) 이후 6년 만에 '미키 17'로 돌아왔다. 앞서 '기생충'은 천만 관객을 돌파했고, 2019년 제72회 칸 국제영화제에서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에 이어 2020년 제92회 아카데미시상식에서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국제영화상 등 4관왕을 차지하며 한국 영화의 위상을 드높였다.
그렇기에 '미키 17'을 향한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뜨거웠다. 여기에 로버트 패틴슨이 주연을 맡아 더욱 기대감을 높였다. 하지만 작품은 누적 관객 수 301만 명을 동원하며 다소 아쉽게 극장가에서 퇴장했다.
박찬욱 감독은 제75회 칸 국제영화제에서 감독상을 거머쥔 '헤어질 결심'(2022) 이후 3년 만에 '어쩔수가없다'로 돌아왔다. 앞서 작품은 제82회 베니스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돼 유수 해외 매체들로부터 극찬받은데 이어 제50회 토론토국제영화제 갈라 프레젠테이션 섹션과 제63회 뉴욕영화제 메인 슬레이트 부문에도 이름을 올리며 작품성을 입증했다.
그리고 '어쩔수가없다'는 추석 연휴 직전에 스크린에 걸렸지만, 상반된 관람평을 받으며 300만 고지를 끝내 밟지 못해 아쉬움을 남겼다. 그럼에도 작품은 여전히 뜨거운 관심을 받으며 해외 영화제에서 막강한 존재감을 발산하고 있다.
'어쩔수가없다'는 98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 국제장편영화 부문에 한국 대표 출품작으로 선정됐고, 미국과 캐나다의 가장 큰 비평가 협회가 주최하는 제31회 크리틱스 초이스 시상식에서 외국어영화상과 각색상 후보에 이름을 올렸다.
또한 제83회 골든 글로브에서는 뮤지컬·코미디 부문 작품상 외국어영화상 뮤지컬·코미디 부문 남우주연상 후보에 노미네이트 되며 한국 영화 최초로 골든 글로브 작품상 후보에 오르는 쾌거를 달성한 가운데, 앞으로 어떤 새로운 기록을 추가할지 이목이 집중된다.

◆ 작년보다 전체 관객 수 감소…줄줄이 문 닫은 극장가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에 따르면 올해 극장을 찾은 전체 관객 수(1월 1일~12월 26일)는 1억 300만 5113명으로, 지난해(1억 2104만 명)보다 현저하게 떨어졌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이 같은 관객 수 감소는 극장가 폐점으로 이어졌다. CGV는 지난 10월 영업을 끝낸 명동역 씨네라이브러리를 비롯해 전국 10개 지점의 문을 닫았고, 15년 만에 로스앤젤레스(LA) 지점도 폐점했다. 메가박스는 본사 사옥 이전과 함께 성수점 영업을 6년 만에 종료했다.
이 가운데 지난 5월 롯데컬처웍스와 메가박스중앙은 합병을 위한 양해각서를 체결했다고 밝혔다. 양사는 영화 제작 감소와 흥행작 부족, 관객 수 저하 등의 악순환을 언급하며 "변하는 콘텐츠 산업 환경 속, 지속가능한 성장 도모 등을 위한 전략적 결정"이라고 합병 이유를 설명했다. 다만 여전히 기업결합 심사 사전 협의 단계로, 실제 합병까지는 꽤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이렇게 천만 영화라는 대형 히트작이 탄생하지 않았고 중박 영화의 부재도 계속됐다. 해외 영화제에서는 두각을 나타냈지만, 국내에서는 거장의 이름값도 통하지 않으면서 전체 관객 수가 감소함에 따라 문 닫는 극장들이 늘어나며 한국 영화계의 위기는 올해도 계속됐다.
이 가운데 '주토피아 2'와 '아바타: 불과 재'가 연말 극장가에 따뜻함을 불어넣고 있고 '하트맨' '프로젝트 Y' '슈가' 등 다채로운 장르의 한국 영화들이 새해 관객들과 만날 준비를 마친 만큼, 2026년 영화계에는 봄이 찾아올지 관심이 모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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