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팩트|박지윤 기자] 배우들이 작품을 선택하는 이유는 다양하다. 시나리오의 재미에 끌릴 수도 있고 한 번쯤 꼭 연기해 보고 싶은 욕심이 드는 캐릭터를 만나기도 한다. 이 가운데 김동욱은 대본 각색이 완성되기도 전에 '윗집 사람들'에 출연하기로 마음먹었다. 오직 감독 하정우의 존재만을 바라봤기 때문이다.
김동욱은 영화 '윗집 사람들'(감독 하정우) 개봉을 앞둔 지난 1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 있는 카페에서 <더팩트>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그는 "애정 어린 리뷰들을 열심히 찾아보면서 힘을 얻고 있지만 긴장을 놓을 수는 없다. 늘 개봉 전에는 설렘과 기대가 공존한다"고 말문을 열며 작품과 관련된 다양한 이야기를 꺼냈다.
지난 3일 스크린에 걸린 '윗집 사람들'은 매일 밤 섹다른 층간소음으로 인해 윗집 부부(하정우·이하늬 분)와 아랫집 부부(공효진 분·김동욱 분)가 함께 하룻밤 식사를 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예측불허 이야기를 그린 작품으로, '롤러코스터'(2013) '허삼관'(2015) '로비'(2025)를 선보였던 하정우의 네 번째 연출작이다.
이날 김동욱에게 '윗집 사람들'을 선택한 이유를 가장 먼저 물어봤다. 망설임 없이 '하정우'라고 답한 그는 "처음에 원작을 번역한 정도의 대본을 받았고 각색은 캐스팅된 이후였다"며 "그동안 형과 작품을 같이 하자고 이야기를 계속 나눴는데 타이밍이 맞지 않았다. 그러다가 기회가 온 거라서 대본은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정우 형과 같이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고 스케줄도 맞아서 너무 좋았다"고 회상했다.

'윗집 사람들'은 감독 겸 배우 하정우가 스페인 영화 '센티멘털'을 자신만의 색깔로 새롭게 풀어낸 작품이다. 그는 층간소음이라는 이웃 문제를 시작으로 이웃집 간의 식사에서 절대 나올 수 없는 발칙하고 비현실적인 대화를 펼쳐내더니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경지의 솔직함과 파격으로 뻗어나간 후 부부 내면의 관계를 깊게 들여다보는, 창의적이면서도 섬세한 시선으로 웃음과 생각할 거리를 동시에 선사한다.
다만 청소년관람불가인 만큼, 수위 높은 대사가 주를 이룬다. 이에 김동욱은 "잔잔한 원작과 전체 설정이 같아서 부담 없이 봤는데 각색하면서 영화적이고 극적인 것들이 추가되니까 거부감보다는 낯섦이 컸다"면서도 "그런데 생각해 보면 현실에서 더 영화 같은 일들이 많이 벌어지고 그렇지 않을 것 같은 사람들이 더 뻔뻔하지 않나. 이걸 우리가 극장에서 상영하면 안 된다는 게 오히려 고정관념인 게 아닌가라고 생각하니까 접근하고 이해하는 게 편해졌다"고 솔직하게 털어놨다.
그렇게 그는 현수로 분해 공효진과 아랫집 부부로 만났다. 서로 '너라면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할 것 같아?'라는 질문을 던지면서 각자가 맡은 캐릭터에 다가간 두 사람은 권태로움을 느끼는 부부의 현실적인 갈등과 감정을 날 것 그대로 표현하며 작품의 몰입도를 한껏 끌어올렸다.
더 나아가 김동욱은 비현실적이고 판타지적인 대화가 오가는 저녁 식사 자리를 영원히 이해하지 못하는 인물의 심리를 리얼한 표정에 모두 담아내며 이야기를 한 발짝 떨어져서 보는 관객들의 마음을 대변했다.
"고민을 많이 한 지점이었어요. 윗집 부부에 대한 거부감과 정아와의 서먹함 등 현수가 갖고 있는 텐션이 있잖아요. 시작부터 정서적으로나 상황적으로 고립된 인물이에요. 이들 사이에 끼는 게 처음부터 어려웠던 그가 말도 안 되는 대화와 상황에서 우리가 소위 말하는 상식적이고 보편적이라고 생각할 법한 반응을 담당하죠. 그러면서도 전체적인 극의 유머와 대사에 지나치게 방해가 되지 않고, 아이러니한 상황이 주는 유머에 브레이크를 너무 걸지 않는 선에서 현수가 어느 정도 개입할 수 있을까를 많이 생각했어요."

특히 '윗집 사람들'의 거의 모든 장면이 아랫집 부부의 집에서 펼쳐지는 만큼, 극이 전개될수록 보는 이들이 단조로움과 지루함을 쉽게 느낄 수 있는 구조다. 이 가운데 김동욱을 비롯해 공효진 이하늬 하정우는 현실과 유머를 적절하게 섞은 신선한 소재와 차진 대사를 예측 불가한 호흡으로 내뱉으면서 기대 이상의 시너지로 매 장면을 생동감 있게 그려냈다.
"(구강 액션) 어려웠죠. 많은 대사량을 어떻게 하면 관객들이 지루하지 않게 볼 수 있을까를 가장 많이 고민했어요. 그러면서 대사의 리름과 템포 그리고 배우 간의 호흡을 가장 강조했죠. 리딩을 정말 많이 했고 이게 실제로 많은 도움이 됐어요."
2009년 개봉한 '국가대표'를 시작으로 '신과 함께' 시리즈와 '하이재킹'까지, 네 작품을 배우 하정우와 함께하면서 사적으로도 두터운 친분을 쌓아온 김동욱이다. 그런 그가 처음으로 경험한 감독 하정우의 현장은 어땠을까.
"감독 하정우는 처음이기 때문에 매 순간이 다 새로웠어요. 연출할 때는 이런 모습이고 이렇게 준비하는구나를 느꼈죠. 감독이자 배우니까 다른 배우들이 어느 순간에 지치고 예민해지는지를 잘 알고 소통이 잘 돼서 편했어요. 같이 연기할 때도 그렇지만 이번에도 배우들을 많이 믿어주셨고요. 믿음과 신뢰를 바탕으로 저희가 준비한 것을 잘 봐주셨어요. 개인적으로는 온전히 연출에만 올인하는 작품으로 다시 만나고 싶은 마음이에요."
이와 함께 아랫집 부부로 연기 호흡을 맞춘 공효진을 향해 두터운 신뢰와 무한한 칭찬도 드러냈다. 김동욱은 "너무 좋았다. 공블리(공효진+러블리)리않나. 연기하는 모습이 사랑스럽고 매 순간 진실되게 호흡하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정말 사실적인 표현을 하는 배우다. 진심으로 진실된 표정과 표현 그리고 리액션을 하기 때문에 지루할 틈이 없었다"고 강조했다.
또한 2009년 드라마 '파트너'와 뮤지컬 '금발이 너무해'에 이어 약 16년 만에 재회한 이하늬도 빼놓지 않고 언급했다. 김동욱은 "그때나 지금이나 에너지가 한결같다. 긍정적이고 항상 파이팅있다. 그가 가진 최고의 매력"이라며 "정말 대단한 설득력을 가진 배우다. 이 캐릭터를 이렇게 연기할 수 있다는 건 이하늬라서 가능한 거였다. 그가 이 작품을 해줘서 감사했고 함께한 배우로서 너무 든든했다"고 덧붙였다.

지난 2004년 영화 '순흔'으로 데뷔한 김동욱은 드라마 '커피프린스 1호점' '손 the guest' '특별근로감독관 조장풍' '그 남자의 기억법' '너는 나의 봄' '어쩌다 마주친, 그대' '이로운 사기', 영화 '어쩌다, 결혼', 티빙 '돼지의 왕'과 디즈니+ '강매강' 등 브라운관과 스크린 그리고 OTT 플랫폼까지 종횡무진하며 꾸준한 작품활동을 펼치고 있다.
이러한 그의 필모그래피를 자세하게 들여다보면, 천만 관객을 사로잡은 영화는 물론이고 폭넓은 연기 스펙트럼을 입증할 수 있는 다양한 장르와 사회적으로 꼭 필요한 메시지를 담은 작품까지 확인할 수 있다. 여기에 '윗집 사람들'로 지금껏 해보지 않았던 색다른 느낌의 영화를 추가하며 또 한 번 배우로서의 폭을 넓힌 김동욱이다.
"작품을 선택하는 기준은 그때그때 달라요. '어떤 걸 꼭 본다'는 게 강하다기보다는 '하지 않아야지'라는 것을 많이 만들지 않으려고 해요. 그리고 시나리오가 좋거나 캐릭터적으로 욕심나는 등 제가 꽂히는 무언가가 있으면 돼요. 어떤 지점에서든 설득되는 강한 이유가 있으면 하는 편이죠. 아쉬운 지점이 다섯 개여도 너무 끌림이 강한 게 하나가 있다면 하는데 반대로 좋은 이유가 다섯 가지인데 두 가지의 싫은 이유가 더 크면 안 하게 되는 것 같고요."
그런 지점에서 각색이 끝난 시나리오를 받지 않은 상태에서 '윗집 사람들'을 택할 만큼, 어떤 지점에 강하게 끌렸는지 다시 한번 물어봤다. 이에 그는 "하정우라는 사람이 저를 설득시킨 것"이라며 "형이 '같이 해보자'라고 했을 때 죽이 되든 밥이 되든 하정우의 작품이라는 것만으로 충분히 만족할 수 있을 것 같았다"고 힘주어 말했다.
그러면서 김동욱은 19금이라는 외피보다 그 안에 담긴 메시지에 집중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내비쳤다. 그는 "작품을 준비할 때부터 영화관에서 완성본을 봤을 때까지, 부부끼리 조금 더 솔직하고 자주 소통하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느꼈다. 갑자기 관계에 어떠한 시도를 파격적으로 하려고 하기보다는 매 순간 솔직하고 소중해야 되는 것 같다"며 "어떤 지점에서 공감하셨던 긍정적으로 관계가 개선되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소통의 기회나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많은 관람을 독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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