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인터뷰] 김향기, '한란'으로 펼친 뜻깊은 도전
  • 박지윤 기자
  • 입력: 2025.11.26 07:00 / 수정: 2025.11.26 07:00
강인한 모성애를 지닌 엄마 아진 役 맡아 열연
제주 4·3 다룬 작품…"조화롭게 형성된 영화"
배우 김향기는 영화 한란 개봉을 기념해 <더팩트>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트리플픽쳐스
배우 김향기는 영화 '한란' 개봉을 기념해 <더팩트>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트리플픽쳐스

[더팩트|박지윤 기자] 역사적인 비극과 슬픔을 다루는 작품은 언제나 조심스럽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 안에서 느껴본 적 없는 감정까지 섬세하게 그려내야 했다. 이에 자신만의 방법으로 과거에 다가가고 모성애를 느끼며 유의미한 도전에 성공적인 마침표를 찍은 김향기의 '한란'이다.

김향기는 오늘(26일) 스크린에 걸리는 영화 '한란'(감독 하명미)으로 '한산: 용의 출현'(2022) 이후 3년 만에 관객들과 만날 준비를 마쳤다. 개봉을 앞둔 지난 18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 있는 카페에서 <더팩트>와 만난 그는 작품과 관련된 것부터 23년 차 배우로서 하는 여러 생각까지 전했다.

겨울에 피는 한라산의 난초를 뜻하는 '한란'은 1948년 제주 4·3 당시 한라산으로 피신한 모녀의 생존 여정을 통해 꺾이지 않는 생명의 고귀함과 삶의 위대함을 그린 작품이다. 첫 연출 데뷔작 '그녀의 취미생활'로 제27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2관왕을 받은 하명미 감독이 연출과 각본을 맡았다.

김향기(오른쪽)는 강인한 모성애를 지닌 엄마 아진 역을 맡아 열연을 펼쳤다. /트리플픽쳐스
김향기(오른쪽)는 강인한 모성애를 지닌 엄마 아진 역을 맡아 열연을 펼쳤다. /트리플픽쳐스

먼저 김향기는 "처음부터 글이 너무 잘 넘어갔다. 모녀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만 다른 인물들의 관점을 보여주는 게 좋았다. 장르나 캐릭터적으로 욕심나지만 텍스트적으로 잘 안 넘어가는 작품들이 있는데 '한란'은 그런 지점에서 술술 잘 넘어갔다. 글을 읽으면서 상상되는 지점들이 많아서 좋은 작품이라고 생각했다"고 출연을 결심한 이유를 밝혔다.

극 중 아진은 토벌대를 피해 한라산으로 피신하던 중 마을이 습격받았다는 말을 듣고 여섯 살의 어린 딸 해생(김민채 분)을 구하기 위해 하산하는 강인한 모성애를 지닌 엄마로, 극한 상황에서도 딸을 구하기 위해 어떠한 위험을 무릅쓰는 인물이다.

이를 연기한 김향기는 사전 단계부터 스태프들과 함께 제주 로케이션 현장을 둘러보며 캐릭터에 대한 이해도를 높였고 촬영 3개월 전부터 검수자에게 1:1 과외를 받으면서 제주어도 철저하게 준비했다. 그렇게 그는 딸을 구하기 위해 산과 바다를 건너는 생존 여정을 섬세하고 깊이 있게 완성하면서 1948년 혼란하고 비극적인 제주의 한가운데에 선 엄마 아진 그 자체로 묵직한 존재감을 발산한다.

"많은 분이 제가 엄마 역할을 하는 걸 놀라워하시는데 저는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부터 촬영이 끝날 때까지 엄마를 연기해야 된다고 의식하지 않았고 '한란' 속 아진의 개성이라고 생각했어요. 그 당시에 제 나이 또래에 어머니가 된 분들이 많았고 어머니도 처음부터 어머니는 아니잖아요. 다양한 어머니상이 있고 그중에서 아진은 어른스럽고 모든 걸 품어준다기보다 친구 같은 어머니라고 생각했어요."

김향기는 자신이 연기한 아진에 관해 어른스럽고 모든 걸 품어준다기보다 친구 같은 어머니라고 설명했다. /트리플픽쳐스
김향기는 자신이 연기한 아진에 관해 "어른스럽고 모든 걸 품어준다기보다 친구 같은 어머니"라고 설명했다. /트리플픽쳐스

그렇다면 태어나서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모성애라는 감정에 어떻게 접근했을까. 책과 영상을 찾아봤다는 김향기는 "아진이가 해생이를 위해서 쭉쭉 나아가는데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을까 궁금했다. 호르몬적으로 체계 자체가 바뀌어서 이성적으로 판단하기보다는 몸으로 행동하게 되는 부분들이 있다더라. 모든 게 지배되는 감각들이 있을 수 있겠더라"라고 연기 중점을 둔 부분을 설명했다.

"텍스트로 읽었을 때보다 현장에서 슬픔이 드러나지 않은 경우가 많았어요. 텍스트로는 가슴이 찢어지고 눈물이 흐르고 슬픔으로 지배되는 느낌이었는데 현장에서는 눈물이 나긴 했지만 '다음에 내가 뭘 해야되지?'라는 생각과 함께 슬픔을 느낄 겨를이 없는 감각이 잘 느껴졌어요."

이러한 김향기의 도전과 함께 화제 된 것이 또 있었다. 아진의 딸 해생을 연기한 아역 배우 김민채가 김향기와 똑 닮은 외모를 뽐낸 것. 이에 그는 "너무 귀여웠고 분장하고 나서 화면에 잡힌 걸 보니까 더 닮았더라"며 "취향이나 좋아하는 걸 물어보면서 친해졌다. 연기적인 조언보다는 컷 하면 편하게 잘 지낼 수 있는 현장을 만들어주고 싶었다"고 함께 호흡을 맞춘 소감을 전했다.

'한란'은 1947년 3월 1일을 기점으로 1948년 4월 발생한 소요 사태 및 1954년 9월 21일까지 제주도에서 발생한 무력 충돌과 그 진압 과정에서 많은 주민들이 희생된 제주 4·3 사건을 다룬다. 역사적인 비극과 슬픔을 조명하는 만큼, 김향기는 하 감독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관련 서적을 읽으면서 사건을 더욱 깊게 들여다봤다고.

"감독님이 말씀해 주신 부분도 있었고 기념관에 가서 정보도 얻었어요. 배우로서 감정적으로 이입된 건 4·3 연구소에서 나온 책들이었어요. 할머니들의 증언을 담은 게 있었는데 괴로웠지만 연기할 때 감정적인 상상이 더 잘됐어요. 저희가 역사나 과거 이야기를 다룰 때 제3자로서 생각하고 공부하고 정보를 접하는 듯한 감각이 크잖아요. 그런데 그 책은 그 안에 빠져서 상상하게 하는 지점들이 있어서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이어 김향기는 하명미 감독에 대한 두터운 신뢰를 드러냈다. 그는 "그리고자 하는 그림이 명확하셨다. 과거와 역사를 다루고 있는 작품은 제가 어느 정도 부담을 덜 수 있는 부분들이 필요한데 감독님의 역할이 컸다. 편안하게 해주시려고 했다"며 "자연에서 촬영하다 보니까 어려운 부분들이 있었는데 최대한 표현할 수 있게 도와주셨다. 아역 배우도 있고 동물들도 있어서 예민할 수 있는 현장인데 이를 차분하게 유지해 주시려고 했다. 저희 영화와 많이 닮아 있는, 따스한 감독님"이라고 강조했다.

김향기는 한란에 관해 배우들과 자연환경 그리고 감정을 따라가는 게 조화롭게 형성된 영화라고 자신했다. /트리플픽쳐스
김향기는 '한란'에 관해 "배우들과 자연환경 그리고 감정을 따라가는 게 조화롭게 형성된 영화"라고 자신했다. /트리플픽쳐스

2000년생인 김향기는 2003년 CF 모델로 데뷔한 후 2006년 영화 '마음이'로 배우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이어 그는 영화 '웨딩드레스' '늑대소년' '우아한 거짓말' '눈길' '증인' '신과함께' 시리즈, 드라마 '여왕의 교실' '복수노트' '열여덟의 순간' '조선 정신과 의사 유세풍' 시리즈 등 스크린과 브라운관을 오가며 탄탄한 필모그래피를 구축하고 폭넓은 연기 스펙트럼을 입증했다.

"다양한 캐릭터와 장르를 하고 싶지만 저에게 들어오는 시나리오 중에서 결정하는 거니까 이렇게 필모그래피가 형성된 것 같아요. 아역 배우로 시작해서 성장 과정을 다 보여드렸으니까 그 모습을 지켜야 될지 아니면 다양한 역할에 도전해야 할지에 관해 고민했는데 이제는 제가 할 수 있는 걸 제안해 주시는 거라고 생각하게 됐어요. 체력적인거나 역할을 분석하는 지점에서 '잘 해낼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지면서 작품을 결정하려고 해요. 과거는 지울 수 없고 과거가 있으니까 지금의 제가 있는 거잖아요."

다만 자아가 형성되기도 전에 연기를 시작했기에, 크면서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깨닫게 되거나 새로운 길에 뛰어들고 싶었던 적은 없었는지 궁금했다.

이에 김향기는 "큰 작품을 하다가 1년 정도 쉬었는데 학교를 다니면서 친구들과 재밌게 놀아도 뭔가 심심하고 촬영장에 가고 싶더라. 그때 나는 연기를 계속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하고 싶은게 너무 많아서 건강을 잘 유지하려고 한다. 플랫폼이 많아지고 기술도 발전하니까 구현해 낼 수 있는 저의 상상력이 더 좋아져야 될 것 같고 배우로서 감정을 잘 느낄 수 있게 감각의 생기를 잘 유지해야 될 것 같다"고 앞으로의 각오를 다졌다.

끝으로 김향기는 '한란'에 관해 "모녀의 이야기를 다루지만 다른 인물들도 잘 보여주려고 한 작품이다. 또한 제가 현장에서 느꼈던 자연이 주는 위대함과 그 안에서 한없이 나약해지는 인간의 모습을 잘 담으려고 하셨다"며 "저도 현장에서 많이 느꼈고 배우들과 자연환경 그리고 감정을 따라가는 게 조화롭게 형성된 영화"라고 많은 관람을 독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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