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해 4365억 원의 음악 저작권료를 징수하는 한국음악저작권협회(이하 음저협)가 변혁의 시기를 마주하고 있다. 최근 각종 이슈와 논란에 휩싸인 음저협은 때마침 12월 16일 회장 선거를 앞두고 이번에야말로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겠다고 약속하고 있다. <더팩트>는 음저협의 현 상황을 짚어보고 이들이 말하는 변혁이 무엇인지 직접 확인해 보았다. 더불어 제2의 저작권 신탁단체인 함께하는음악저작권협회가 또 다른 대안을 제시할 수 있을지 살펴보았다. <편집자 주>
[더팩트ㅣ최현정 기자] 의외로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지만 우리나라는 음악 저작권 신탁 관리에 복수 단체 체제를 도입하고 있다.
단일 단체로 독점적 지위를 이어오던 한국음악저작권협회(이하 음저협)를 견제하기 위해 문화체육관광부는 2014년 함께하는음악저작권협회(이하 함저협)의 설립을 허가했고, 함저협은 그로부터 11년간 꾸준히 운영을 이어오고 있다.
현재 함저협의 회원수는 약 5700명에 징수액은 2024년 기준 약 150억 원 정도다. 이는 음저협과 비교하면 회원수는 10%, 징수액은 3% 수준으로 아직 갈 길이 멀어 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함저협은 최근 3년 새 급격히 징수액과 회원수를 늘리며 영향력을 키워가고 있다.
<더팩트>는 함저협과 직접 만나 이들의 현재 상황과 비전을 들어보고, 과연 함저협이 음악 저작권 신탁 관리에 새로운 대안을 제시할 수 있을지 살펴보았다.
함저협의 가장 큰 특징은 '신탁범위 선택제'를 채택하고 있다는 점이다. 기본적으로 모든 권리를 한꺼번에 신탁하는 음저협과 달리 함저협은 출판, 영화·광고, 선거 홍보, 음반·영상물, 노래반주기, 웹캐스팅 등 각 이용 형태에 대응하는 권리 묶음을 선택해 신탁할 수 있다.
자신이 원하는 권리만 신탁이 가능하다는 장점 덕분에 특정 분야에서 대행이 필요한 창작자들에게 함저협은 매력적인 선택지다. 2002년 음저협을 탈퇴해 독자적으로 저작권을 관리해 온 서태지가 2020년 함저협에 공연권을 신탁한 것이 대표적이다.
함저협의 이태진 국장은 "사실 사실 19세기 중반 세계 최초의 음악 저작권 집단관리단체 가운데 하나로 출범한 프랑스 음악 저작권 협회(SACEM)도 지금은 저작자들이 공연·전송·복제 등 권리와 이용 형태에 따라 신탁 범위를 나눠서 맡길 수 있도록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며 "이용자는 더 효율적인 방법을 선택할 수 있으니 당연히 신탁범위 선택제가 편리하다. 하지만 관리하는 단체 입장에서는 시스템이 복잡해지고 번거로움이 늘어나니 기피하게 된다. 우리 함저협은 이 시스템을 시작부터 구축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우리는 이 시스템을 모두 내부에서 개발해 국제 표준에 거의 근접하게 완성한 상태다"라며 "다만 파편화된 부분이 있어 이를 통합하고 고도화하는 작업을 다음 달부터 시작할 예정이다. 이 작업까지 끝나면 회원 서비스의 품질이 지금보다도 훨씬 더 좋아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신탁범위 선택제와 함께 함저협의 또 하나의 특징은 배경음악에도 일반 음악과 동일한 요율을 적용한다는 것이다. 현재 음저협은 배경음악의 요율을 일반 대중음악보다 낮게 책정하고 있다.
이 국장은 "우리는 '음악은 음악이다'라는 모토를 기본으로 일반 대중음악과 배경음악에 차등을 두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함저협의 이런 특징은 자연스럽게 방송 매체와의 우호적인 관계로 이어지고 있다. 아무래도 배경음악은 음악 스트리밍 사이트보다 방송물에 더 자주 사용되기 때문이다. 이에 국내 OTT 업체와 미납 사태로 갈등을 겪고 있는 음저협과 달리 함저협은 국내와 해외 OTT 업체 모두에게 저작권료를 징수하고 있다.
사업국 김주옥 국장은 "우리는 OTT 업체와 이야기가 잘 돼서 합의서를 체결하고 징수와 분배를 진행하고 있다"며 "다만 아직 징수 규정이 확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가정산으로 진행하고 있기는 하다. 국내와 해외 OTT업체 모두 우리 쪽에는 저작권료를 납부하고 있다"고 말했다.
함저협의 이런 두 가지 특징은 분명 많은 창작자의 구미를 당기는 조건이긴 하다. 하지만 기존 창작자들이 선뜻 함저협으로 소속을 옮기는 것을 주저하는 이유는 결국 '제대로 징수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고 있느냐'에 대한 의심이다.
이런 의심의 눈초리에 대해 이 국장은 "솔직히 출범 당시에는 제대로 준비가 안 된 상태였다"라고 부족했던 부분이 있었음을 인정했다.
하지만 이내 그는 "2014년 설립 이래 2021년까지 연간 총징수액이 20억 원을 넘지 않았고 (협회 운영이) 힘든 시기도 있었다. 그런데 22년 40억 원, 23년 90억 원, 24년 150억 원까지 징수액이 늘었다"며 "올해는 총징수액 200억 원을 목표로 하고 있다. 최근 3년동안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는 점을 주목해 달라"고 강조했다.
함저협의 징수액이 2021년 이후 크게 늘어난 배경에는 '국제저작권관리단체연맹(CISAC)'의 가입이 크게 작용했다.
이 국장은 "21년에 CISAC에 준회원으로 가입하면서 해외 네트워킹이 확장됐다. 현재 우리 함저협과 직접 계약을 맺고 있는 해외 저작권 단체가 12곳이다"라며 "시장 규모가 큰 국가 위주로 계속 계약을 늘리고 있으며 3년 안에 50개국 이상으로 확대하려 한다. 그래야 우리도 회원들에게 할 말이 생긴다"고 말했다.
회원 유치를 위한 함저협의 노력도 당연히 병행됐다. 함저협은 2023년 통합징수기관으로 지정된 리브뮤직과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공연권료 징수를 강화했으며, 전송 매체에서 자기 저작물이 어떻게 사용됐는지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는 시스템을 도입하는 등 회원들의 편의 증진에 힘쓰고 있다.
특히 이들은 직접 신탁단체 미가입 저작권자를 찾아가 미수령한 저작권료가 있다는 것을 알리기도 한다. 이 국장은 "우리 함저협뿐만 아니라 음저협에도 미가입한 저작권자가 생각보다 많다"며 "이런 분들을 직접 찾아가 미수령한 저작권료를 수령하라고 알려주기도 하고 회원 가입을 권유하기도 한다. 지난해 3분기에는 11억 원 정도를 걷어서 가져다드린 적도 있다"고 밝혔다.
또 그는 "아이러니한 일이지만 우리는 덩치가 작아서 더 면밀하게 회원의 상황을 살피고 개인화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며 "음저협은 기가입 회원 수가 많고 먼저 찾아오는 사람도 많다 보니 이런 식의 대응은 하기 어렵다. 회원 만족도도 우리의 장점이라고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더불어 함저협은 창작자의 권익이 확대되기 위해서는 음저협과의 협력도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사실 함저협과 음저협의 관계는 썩 좋은 편이 아니다. 현재 함저협이 음저협을 상대로 낸 고소·고발 건은 9개에 달하고, 여전히 독점에 가까운 지위를 누리고 있는 음저협은 함저협의 성장을 결코 바라지 않는다.
함저협과 음저협의 이런 어색한 관계는 음저협의 차기 회장부터는 달라질 수도 있다. 음저협의 회장 후보로 나선 김형석 작곡가와 이시하 작곡가 모두 저작권자의 권익을 위해서는 두 단체가 소통을 강화하고 협력해야 한다는 의견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함저협 역시 이와 같은 생각이다. 이 국장은 "이제는 음저협과 협력할 수 있는 부분들을 협력할 때라고 생각한다"며 "공연권의 확대도 그렇고 방송이나 디지털 미디어 부분에서도 힘을 합칠 수 있는 부분이 많다"고 말했다.
대표적으로 AI 음악도 함저협과 음저협이 힘을 합쳐 해결해야 할 분야다. 함저협 측도 AI 음악은 피할 수 없는 흐름이고 권리자에게 정당한 보상이 돌아가야한다고 입을 모았다. 이는 음저협의 차기 회장 후보인 김형석 작곡가, 이시하 작곡가의 의견과도 일맥상통한다.
이 국장은 "AI 기술이 개발되고 도입되는 건 피할 수 없다. 그렇다고 권리자에게 정당한 보수를 지급하지 않고 무분별하게 AI 음악이 사용된다면 창작자들의 동기 부여를 떨어트릴 수 있다"며 "권리자가 보호받기 위해서는 AI가 학습하기 전에 업체는 이용 허락을 받아 그에 상응하는 비용을 지불하고, 또 그렇게 만들어진 음악을 활용해 수익이 발생하면 이용료를 징수하는 방식이 자리잡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다만 아직 AI음악과 관련해 정확한 규정이나 법이 전무한 상황이라 지금은 징수 자체가 불가능하다"라며 "하루라도 빨리 AI 음악에 관한 규정을 확립하기 위해서는 함저협과 음저협이 협력해 같은 목소리를 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최근 급성장을 바탕으로 이제는 음저협과 협력을 생각할 정도로 여유가 생긴 함저협이지만 서두에 언급한 것처럼 객관적인 수치로 볼 때 함저협의 규모는 여전히 작다. 함저협 역시 이를 부정하지 않았다. 다만 최근 3년 동안 꾸준히 우상향을 그리고 있는 만큼 기세를 몰아 회원 확보와 징수액 확대에 박차를 가하겠다는 계획이다.
이 국장은 "지금 우리가 보유한 회원으로 징수할 수 있는 최대치에 근접했다고 생각한다"며 "신탁단체 미가입 창작자들과 신탁범위 선택제 등이 필요한 창작자들의 가입을 유도해 2년 안에 징수액을 500억 원까지 늘리려고 한다. 5년 후에는 징수액이 1000억 원까지 늘어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목표를 밝혔다.
음저협이 논란과 이슈에 둘러싸여 헤매는 기간이 길어질수록 함저협의 존재감은 커지고 있다.<끝>
<관련기사>
[격동의 음저협①] '변화와 혁신의 시기' 마주한 한국음악저작권협회
[격동의 음저협②] '회장 후보' 김형석과 이시하, 이들이 그리는 음저협의 미래
laugardagr@tf.co.kr
[연예부 | ssent@tf.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