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팩트|박지윤 기자] '들어본 적은 있지만 잘 알지 못하는 가부키의 세계와 온나가타(여성 역할을 연기하는 남성 배우)의 이야기를 3시간 동안 온전히 집중해서 잘 즐길 수 있을까?'. 영화를 본 기자는 '충분히 가능하다'고 말하고 싶다. 눈을 뗄 수 없는 아름답고 압도적인 영상미와 경지에 오르기 위해 인생을 건 두 남자의 처절하지만 눈부신 여정으로 극장이라는 공간이 주는 힘까지 다시금 알려주는 이상일 감독의 '국보'다.
지난 19일 국내에서 개봉한 일본 영화 '국보'(감독 이상일)는 국보의 경지에 오르기 위해 서로를 뛰어넘어야만 했던 키쿠오(요시자와 료 분)와 슌스케(요코하마 류세이 분)의 일생일대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으로, 일본 작가 요시다 슈이치의 동명 원작을 바탕으로 한다.

야쿠자 집안에서 태어난 소년 키쿠오(쿠로카와 소야 분)는 눈앞에서 아버지의 죽음을 목격하고 가부키 명문가 하나이 한지로(와타나베 켄 분)에게 맡겨진다. '세키노토'를 선보인 키쿠오의 남다른 재능을 알아본 하나이 한지로가 가족을 잃고 갈 곳이 없는 그를 거둔 것.
운명이 결정짓는 세계에 이방인으로 뛰어든 키쿠오는 하나이 가문의 아들 슌스케와 둘도 없는 친구이자 라이벌로 함께 성장한다. 그렇게 서로의 길을 시험하는 치열한 경쟁에 놓인 두 사람은 세상에 단 하나뿐인 이름 국보를 향해 달리기 시작한다.
국내 관객들에게는 생소한 가부키와 온나가타를 다룬다는 점과 무려 약 3시간에 달하는 긴 러닝타임은 진입장벽이 맞다. 하지만 '도죠지의 두 사람' '두 명의 등나무 아가씨' '소네자키 동반자살' 등의 가부키 무대들은 두 캐릭터의 서사와 겹쳐지고 친절한 설명도 덧붙여지면서 배경지식이 없어도 이해하고 이야기를 받아들이는 데 큰 어려움이 없다.
특히 섬세한 무대미술부터 화려한 의상과 분장 그리고 카메라와 결합한 배우들의 몸짓과 호흡이 담긴 가부키 공연은 그저 영화 속 한 장면이 아닌 작품 속 또 다른 작품을 보는 듯한 몰입도 높은 감상을 안긴다.
이야기도 어렵지 않다. 재능을 타고난 자와 핏줄을 가진 자, 서로가 갖지 못한 것을 쥐고 있는 두 남자가 함께 성장하면서 치열하고도 숭고한 경쟁을 벌이며 국보의 경지에 오르기 위해 달려가는 긴 시간을 밀도 있게 다루기 때문이다.

배우들의 열연도 빼놓을 수 없다. 요시자와 료는 가부키 공연을 완벽하게 소화할 뿐만 아니라 인물이 느끼는 복잡다단한 감정을 무대 위에서 섬세하고 세밀하게 쌓아 올리며 긴 러닝타임 내내 눈을 뗄 수 없게 한다. 또한 그는 50년이라는 긴 세월의 흐름이 담긴 작품에서 나이 듦까지 연기하며 대체 불가한 존재감을 발산한다.
요시자와 료와 호흡을 맞춘 요코하마 류세이도 인상적이다. 친구이자 라이벌이라는 숙명 앞에 서로를 향한 연민과 질투가 교차하는 이들의 복잡한 감정이 무대 위와 아래에서 휘몰아치면서 예술이 인간을 어떻게 성장시키고 초월하게 만드는지를 곱씹게 만든다.
그리고 이 모든 걸 놓치지 않은 재일 한국인 이상일 감독의 집요함과 뚝심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짧고 자극적인 쇼츠 콘텐츠들이 쏟아져나오는 지금,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와 담고 싶은 장면들을 꾹꾹 채워 넣으면서 3시간에 달하는 작품으로 극장이 존재해야 하는 이유를 되새겨 준다. 또한 일본에서 나고 자랐지만 뿌리는 한국이라고 강조한 그가 살아온 삶의 궤적과 '국보'가 겹쳐지면서 더욱 짙은 여운을 선사한다.
지난 6월 6일 일본에서 개봉한 '국보'는 공개 158일 만에 1207만 5396명의 관객을 동원했고 흥행 수익 170억 4016만 5400엔을 기록하며 일본 전체 실사 영화 흥행 2위에 등극했다.
식지 않는 인기를 보여주고 있는 만큼, 작품은 '춤추는 대수사선2: 레인보우 브릿지를 봉쇄하라'(173.5억 엔)를 넘고 23년 만에 새 기록을 써 내려갈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침체된 한국 극장가에도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을지 이목이 집중된다. 15세 이상 관람가이며 러닝타임은 174분 58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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