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팩트ㅣ최수빈 기자] 배우 설경구의 입에서 가장 많이 나온 단어는 의심과 걱정이었다. 해보지 않은 캐릭터를 맡아봤기에 불안한 마음으로 출발했지만 변성현 감독과의 깊은 신뢰와 믿음을 바탕으로 '굿뉴스'를 완성해 냈다. 끝없는 의심 속에서 자신만의 해답을 찾아낸 셈이다.
배우 설경구가 최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더팩트>와 만나 넷플릭스 영화 '굿뉴스'(감독 변성현) 공개 기념 인터뷰를 진행했다. 극 중 정체불명의 해결사 아무개 역을 맡은 설경구는 이날 작품과 관련된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지난 17일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굿뉴스'는 1970년, 무슨 수를 써서라도 납치된 비행기를 착륙시키고자 한자리에 모인 사람들의 수상한 작전을 그린 영화다. 설경구는 "스케일도 방대하고 블랙코미디라는 장르 자체가 진입장벽이 높아서 걱정이 좀 많았다"며 "그래도 대본보다는 잘 나온 것 같다"고 소감을 전했다.
이번 작품은 설경구가 변성현 감독과 한 네 번째 작품이다. '불한당' '킹메이커' '길복순' 그리고 이번 '굿뉴스'까지. 그는 "'길복순' 끝나고 감독님이 '다음 작품 같이 할 수 있냐'고 묻더라. 그때는 '안 한다'고 했다. '길복순' 공개되고 작품 쓰고 있다는 얘기를 들어서 '내 역할 있냐'고 물으니 '있다'고 하더라. 나중에 책을 받았는데 그게 아무개였다"고 회상했다.
"아무개 역할을 보고 작품을 선택한 게 아니라 그냥 저한테 던져진 역할이었어요. 대본을 보고 제일 먼저 한 질문이 '다른 캐릭터들과 섞여야 하냐, 아니면 독립돼야 하냐'였죠. 조금 동떨어져서 따로 노는 느낌이 있다 보니 처음엔 많이 힘들었어요. 아직도 아무개라는 캐릭터를 제대로 잡았는지 모르겠어요."
그가 맡은 아무개는 비상한 머리와 빠른 임기응변, 유연한 대처 능력으로 이름도 직업도 없이 암암리에 나라의 대소사를 해결하는 인물이다. 평양을 향해 날아가는 일본 여객기를 어떻게든 대한민국 땅에 착륙시키기 위해 공군 중위 서고명(홍경 분)을 앞세워 온갖 방법을 동원한다.

설경구는 아무개를 떠올리며 "너무 불편했다. 재미없었다"고 회상했다. 그는 "편하게 내 감정을 표현하는 역할이 아니었다. 이 사람은 왜곡된 것을 전달해 주는 사람이었다. 권력들이 만들어낸 왜곡을 진짜처럼 포장해 내는 인물이었다"고 설명했다.
"안 해본 역할이다 보니 걱정이 많았어요. 이걸 어떻게 풀어낼지가 더 고민이었죠. 이렇게 추상적인 캐릭터는 처음이라 어디 기댈 곳도 없고 좀 난감했어요. 끝날 때까지 계속 의심하면서 촬영했던 것 같아요. 초반에는 감독님께 '이렇게 해도 돼요?' '이거 맞아요?'라고 물어보기도 했죠. 감독님이 원하는 그림이 있는 것 같아서 그 이야기를 따르려고 했지만 계속 의심하는 과정의 연속이었어요."
그가 가장 고민했던 부분은 캐릭터의 톤이었다. 설경구는 "아무개는 추상적이면서 때로는 해설자 입장이 되기도 한다. 배우는 보통 카메라를 피하지만 해설자 입장에서 카메라를 보라고 하니까 낯설었다"며 "가끔은 투명 인간 같기도 했다. 아무 곳에나 가져다 붙일 수 있는 인물이지만 편한 게 아니라 오히려 섞이면 안 돼서 힘든 지점이 있었다"고 털어놨다.
"다른 캐릭터들은 실제로 존재할 법한 인물들이잖아요. 그런데 아무개는 마치 툭 던져놓은 것처럼 그 시대에 없을 법한 인물이에요. 그때부터 막혔던 것 같아요. 촬영 초반에는 '내가 맞게 가고 있나' '더 떠야 하나' 계속 의심했죠. 혼자 떠들기만 하고 대화하는 장면도 거의 없었어요. 하지만 감독님이 머릿속으로 그린 그림이 있는 거 같아서 그냥 믿고 따라가려 노력했어요."
그렇기에 자유롭지도 않았단다. 설경구는 "불협화음 같았다. 조심스러웠다"며 "자유로움이 그 장면 자체를 망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 보이고 자칫 잘못하면 존재감이 없는 인물처럼 보일 수도 있어서 자유롭게 연기할 수 없었다"고 전했다.

새로운 분장도 시도했다. 설경구는 "의상 피팅할 때 살을 많이 빼서 갔는데 그 정도까진 아니라고 하더라. 또 점을 세 개 붙여서 갔는데 점만 눈에 띄어서 결국 하나로 합의 봤다"며 "모자도 쓸까 말까 고민하다가 촬영 날 '씁시다' 하면서 결정됐다.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도 이상하고 이질적으로 보일까 고민하며 준비했다"고 설명했다.
그렇게 의심으로 시작해 의심으로 완성한 작품이었다. 설경구는 완성본을 보기까지 작품의 매력에 빠질 여유조차 없었다고. 그는 "촬영할 때 여유가 없었다. 변성현 감독님도 아마 저에게 새로운 모습을 끌어내야 한다는 고민이 있었을 것 같다"고 얘기했다.
"대본이 너무 방대했어요. '이야기 자체를 어떻게 시작하지?' 싶었죠. 영화의 첫 장면이 납치와 하이재킹으로 시작하는데 감독님이 워낙 초반에 긴장을 많이 해서 한국 분량부터 찍자고 하더라고요. 일본 배우들과 먼저 촬영하면 혼란스러울 것 같다고 판단한 거죠. 그렇게 한국 장면에서 영화의 틀을 잡고 비행기 내부 장면은 뒤에 찍었어요. 감독님에게도 모험이었을 것 같아요. 완성본을 보고 나서 느낀 건 그래도 책보다는 훨씬 잘 나온 것 같다는 거예요."
한 감독과 네 번 이상 호흡을 맞추는 일은 흔치 않다. 자연스레 두 사람의 다섯 번째 만남 가능성에도 관심이 모이고 있다. 그러나 설경구는 "다섯 번째 작품은 진짜 없다"고 결별을 선언했다.
"변성현 감독과 처음 시작한 '불한당'이 벌써 10년 가까이 됐더라고요. 그 이후에 네 작품을 함께 했죠. 제 시야를 넓혀준 감독이에요. 예전의 저는 영화는 자극적이어야 하고 판타지는 싫다고 고집하던 사람이었는데 그걸 바꿔준 게 감독님이에요. 상상력을 영상으로 구현하는 게 영화의 역할이라는 게 저는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가능하다는 걸 보여준 사람이죠. '굿뉴스' 또한 감독님의 상상력이 구현된 작품이에요. 저의 편견을 깨준 사람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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