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팩트 | 정병근 기자] KBO 프로야구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시구의 벽도 높아졌다. 이에 따라 시구 문화도 수동적인 자세에서 능동적인 모습으로 바뀌고 있다.
3~4년 전만 하더라도 프로야구 구단이 시구자를 '모시기 위해' 노력했다면 이젠 연예 기획사가 시구자를 '따내기 위해' 각 구단의 문을 두드리는 상황이다. 특히 지난해 '꿈의 1000만 관중'을 돌파한 프로야구가 올해 이보다 더 나아가 1200만 관중 돌파를 예상할 정도로 관심과 인기가 치솟자 시구를 하겠다는 연예인들도 많아졌다.
그 변화를 가장 명확히 체감할 수 있는 건 서울이나 수도권 경기가 아닌 각 지방의 경기다. 접근성이 좋은 서울과 수도권 경기의 경우 연예인 시구자가 제법 있었지만 이동 거리가 긴 지방 경기에는 연예인 시구자를 찾아보기 어려웠다. 그런데 지난해, 특히 올해부터 각 지역의 모든 구장에서 인기 연예인 시구자를 자주 볼 수 있게 됐다.
10대 때부터 KIA 팬이었다는 40대 중반의 A 씨는 "가을 야구(포스트시즌)를 제외하고 한 4년 전까지만 해도 광주는 물론이고 각 지역의 경기에 연예인 시구자가 일 년에 너댓번 있을까 말까 했다. 그런데 요즘엔 서울뿐만 아니라 전 지역의 야구장에 연예인 시구자를 자주 볼 수 있고 심지어 인기 아이돌들까지 있어서 놀랍다"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올해 부산 사직구장에서 보이넥스트도어 운학과 이한, 에스파 카리나, 아일릿 원희 등이 시구 및 시타를 했다. 대전 한화생명볼파크에선 아일릿 윤아, 가수 츄 등이 시구자로, 광주 기아챔피언스필드엔 걸그룹 스테이씨 윤과 수민, 밴드 데이식스 원필 등이 함께했다. 배우 서현은 최근 대구 삼성라이온즈파크에서 시구를 했다.
몇몇 가수만 나열해도 이 정도고 서울과 수도권 경기장까지 범위를 넓히면 전소미, 투모로우바이투게더 수빈, 세븐틴 도겸 등 그 라인업이 아주 쟁쟁하다.
그렇다 보니 시구나 시타를 하고 싶다고 해서 아무 때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아이돌그룹이 다수 소속된 기획사의 한 관계자는 "요즘 연예인이라고 시구를 다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특히 서울 경기, 그것도 주말에 시구자로 들어가는 게 상당히 어렵다. 활동 시기까지 맞춰서 하는 건 더더욱 어렵다"고 달라진 분위기를 전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사실 예전엔 구단 쪽에서 연락이 오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이젠 완전히 반대다. 언제 시구를 할 수 있는지 문의를 넣어놓고 기다리는 입장이 됐다"며 "물론 회사나 매니저의 역량에 따라서 원하는 날 시구자로 들어갈 수도 있지만 이젠 이미지나 구단과 맞는지까지도 좀 보는 거 같다"고 말했다.

연예인들이 시구자로 나서는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다. 그중 가장 이상적인 건 프로야구, 나아가 특정 구단 팬이어서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경우다.
이한은 "어린시절 추억이 많은 행복한 사직구장에서 시구와 시타를 하게 돼 영광"이라고, 윤은 "어렸을 때부터 챔피언스필드에 직관을 자주 갔었는데 시구자로 방문하게 돼 더 기쁘고 신기하다"고, 원희는 "부모님의 고향인 부산에서 첫 시구를 하게 돼 정말 영광이다. 특히 아버지가 롯데 자이언츠의 팬이라 더 뜻깊다"고 말했다.
팬이 아니어도 수많은 관중과 시청자들에게 노출되는 홍보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스포츠와 연계된 건강한 이미지도 얻을 수 있다. 최근 소속 연예인이 시구를 했던 한 소속사 관계자는 "평소 보여주지 않았던 모습을 보여준다는 점도 매력적이고 무엇보다 스포츠 중계 카메라가 예쁘게 잘 잡아준다. 여러 측면에서 긍정적"이라고 말했다.
시구를 가장 적극적으로 한 팀은 걸그룹 키키다. 이들은 지난 5월 25일 같은 날 멤버들이 각각 문학 잠실 고척 대구 경기 시구자로 나섰다. 한 팀에서 시구와 시타를 하는 경우는 종종 있지만 4개 구장에서 한 팀 멤버들이 동시에 시구를 하는 건 전례 없던 이벤트다. 당시 키키는 폭발적인 관심을 모았다.
시구가 각광받으면서 이를 대하는 연예인들의 태도도 능동적으로 변했다. 한때 노출 의상에 성의 없는 투구로 비판을 받았던 연예인들도 있었지만 최근엔 최소한의 연습을 거치는 성의를 보여주고 있는 것. 특히 얼굴만 비추고 빠지는 게 아니라 경기장에 남아 짧게는 5회 정도, 길게는 끝날 때까지 열정적으로 응원하며 즐기는 모습이다.
지난 10일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LG 트윈스와 한화 이글스 경기에서 시구를 한 전소미는 앞쪽이 아닌 무려 투수석에서 안정적인 폼으로 공을 던졌고 공은 포수 글러브로 들어갔다. 뿐만 아니라 승리 기원 스티커를 만들어 선글라스에 장식으로 붙인 채 열정적인 응원을 하는 모습이 카메라에 수차례 잡혔다.
이처럼 야구장에 와서 야구를 진심으로 대하고 즐기는 모습에 야구 팬들은 색다른 즐거움을 느낀다. 더불어 좋은 시선으로 그들을 바라보고 응원한다. 형식적인 시구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하는 연예인도 즐겁고 이를 보는 야구 팬들도 즐거운 건강한 시구 문화가 만들어지고 있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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