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인해 신작 개봉이 잠시 멈추면서 공백을 채웠던 재개봉 영화가 이제는 하나의 장르로 자리 잡았다. 기술적으로 작품을 업그레이드하고 기념전과 미니 전시 등으로 관람 그 이상의 재미를 선사하며 신작들 사이에서도 경쟁력을 갖췄기 때문이다. <더팩트>는 이러한 극장가의 흐름을 정리하고 여러 콘텐츠를 직접 즐기고 관객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서 재개봉의 이유 있는 열풍을 알아봤다.<편집자 주>
[더팩트|박지윤 기자] 이미 스크린에 걸었던 영화들이 저마다의 경쟁력을 갖고 다시 극장가를 찾으면서 관객들의 발걸음을 붙들고 있다.
재개봉작들은 리마스터링과 업스케일링 등 비주얼 업그레이드를 꾀하는가 하면, 'N 주년'이나 감독과 배우의 기획전 등으로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거나 다양한 굿즈 제공, 무대인사와 GV(관객과의 대화) 등 여러 이벤트를 마련하면서 꼭 극장에서 한 번 더 영화를 관람해야 할 이유를 만들고 있다.
이렇게 단순한 재상영이 아닌 하나의 콘텐츠로 재탄생되면서 과거에 작품을 봤던 관객들의 향수를 자극함과 동시에 새로운 경험을 선사하고 당시에 영화를 즐기지 못했던 이들에게는 명작을 다시금 즐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먼저 오랜 세월이 흐른 후 다시 관객들을 찾고 있는 영화들은 대부분 리마스터링이나 업스케일링 된 버전으로 재개봉되고 있다.
리마스터링은 원본 소스(필름·마스터 테이프)를 다시 작업해서 새로운 마스터 버전을 만드는 것으로, 원본을 고해상도로 스캔하고 색보정과 노이즈 제거, 사운드 믹싱 개선 등의 작업을 거쳐 화질과 음질을 실질적으로 향상시키는 것이다. 업스케일링은 이미 완성된 저해상도 영상을 알고리즘으로 확대하는 것으로, 원본 품질 한계를 넘을 수는 없지만 보다 선명한 화면으로 영상을 즐길 수 있는 특징을 갖는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지난해 12월 25일 재개봉한 '더 폴: 디렉터스 컷'이다. 이는 2006년 제작돼 2008년 국내에서 첫선을 보인 '더 폴: 오디어스와 환상의 문'을 4K 리마스터링을 통해 더욱 화려해진 영상과 새로운 장면을 추가한 감독판이다.
작품은 개봉 첫날 전국 66개 관·좌석 수 1만 5025석이라는 열세에도 불구하고 기술적 진화로 완성도를 극대화한 4K 리마스터링을 통한 시각적 예술로 두터운 팬덤을 형성하면서 입소문에 힘입어 흥행 역주행에 성공했다. 그 결과 누적 관객 수 18만 명을 돌파하며 '더 폴: 오디어스와 환상의 문'(2.8만 명)보다 약 6.4배 이상의 성과를 냈고 이에 타 셈 싱 감독은 내한해 국내 관객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해 화제를 모았다.
'패왕별희: 디 오리지널'도 156분 분량의 기존 '패왕별희'에 15분가량을 추가하고 디지털 리마스터링으로 화질을 보강해 화려한 경극과 영상미를 선보였고, '쉬리'도 26년 만에 4K 리마스터링 버전으로 재개봉해 폭넓은 관객 연령대를 아울렀다.
1999년 일본에서 개봉한 후 1999년 한국에서 처음 개봉한 '러브레터'는 작품 탄생 30주년을 맞아 지난 1월 다시 국내 스크린에 걸렸다. 당시 작품은 자막의 의역과 오역을 원작에 가깝게 개선하고 90년대 정식 개봉 당시 세로 자막을 복원해 관객들의 관심을 모았고 이번이 9번째 재개봉이었음에도 10만 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하면서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작품성을 입증했다.
7월 30일 재개봉한 '남색대문'(감독 이치엔)을 이끈 배우 계륜미는 지난 8~9일 양일간 무대인사와 GV에 참석해 한국 관객들과 특별한 만남을 가졌다. 그의 내한은 2013년 처음 한국을 찾은 이후 본인 출연작으로는 12년 만인 만큼 미니 GV를 추가로 오픈할 정도로 관객들의 관심은 그 어느 때보다 뜨거웠다.
또한 멀티플렉스 3사(CGV·메가박스·롯데시네마)는 기획전을 통해 재개봉작들을 선보이고 있다. 영화 한 편이 다시 스크린에 걸리기까지 배급사와의 조율부터 각 회사의 이해관계까지 현실적으로 고려해야 할 부분이 분명한 가운데 관계자들은 어떤 방식으로 관객들의 니즈를 파악하고 있을까.
CGV 서지명 커뮤니케이션팀 팀장은 <더팩트>에 "'개봉 20주년'이나 감독님의 기획전, 배우의 특별한 이슈 등 여러 방향을 생각하면서 재개봉작들을 발굴하고 있고 시즌에 맞춰서 개봉하고 있다"며 "신작을 개봉할 때처럼 작품에 대한 사전 인지도와 관심도를 파악하고 있고 데이터 전략팀을 통해 여러 자료를 받은 것 등을 취합해 선보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롯데시네마 관계자도 "아무래도 명작으로 불리는 작품들을 리마스터링 등 최신 기술과 큰 스크린, 좋은 사운드 등 기술적인 측면으로 발전시켜서 같은 작품이지만 새롭게 선보이려고 한다"며 "예전 관객들은 추억을 되새기고 요즘 세대의 관객들에게는 신작으로 다가올 수 있는 다양한 작품을 폭넓게 찾아보고 있다"고 전했다.
신작들 사이에서 재개봉작을 고르는 관객들의 의견도 들어봤다. '더 폴: 디렉터스 컷'을 관람했다는 20대 여성 A 씨는 "신작들이 홍보 문구로 '극장에서 봐야 할 작품'이라고 하는데 이 영화야말로 극장이 존재하는 이유를 느끼게 해줬다. 재개봉했기에 볼 수 있어서 너무 소중한 관람 경험이었다"며 "그 이후로 지금까지 명작이라고 불리는 작품들을 TV나 휴대폰이 아닌 큰 스크린으로 보고 싶어서 재개봉 영화를 계속 보러 가고 있다"고 말했다.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는 "감독판으로 분량을 확장시킨다던지 리마스터링으로 업그레이드를 시키는 등의 노력을 하지 않고 똑같은 것만 반복해서 스크린에 걸면 관객들은 찾지 않을 거다. 명분과 볼거리를 제공해야 한다"며 "현재 대중은 동기부여가 없기 때문에 극장에 가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재개봉작은 아예 모르는 게 아니라 어느 정도 자신의 취향과 맞는지 파악할 수 있다. 혹은 TV나 휴대폰으로 봤는데 너무 재밌어서 큰 스크린으로 다시 보고 싶어서 가려고 하는 사람들도 많다. 결국 극장에서 봐야 할 이유를 부여해주면 극장으로 온다는 걸 증명하는 셈"이라고 바라봤다.
또한 그는 "다만 재개봉 영화의 관객 수가 100만 명을 넘는 등의 수요가 많은 편은 아니기에 마이너한 니즈로서 계속 가져가야된다고 본다. 또 오리지널 작품은 제작비가 많이 들어서 수익을 내기 힘든데 재개봉작은 그렇지 않기 때문에 극장 입장에서 봤을 때 편한 부분이 있다"며 "또 속편을 예고하는 등 앞으로의 행보에 대한 홍보 효과 등 다양한 용도로도 활용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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