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박지윤 기자] 소설에서 영화로 그리고 이번에는 뮤지컬로 대중을 찾은 작품이 있다. 청춘들의 풋풋하고도 설레는 관계부터 사랑하는 이를 갑작스럽게 떠나보낸 상실의 아픔까지 그려내면서 오늘만 오는 오늘의 소중함과 그럼에도 내일을 살아가게 하는 사랑과 기억의 힘을 관객들에게 전하고 있는 '오세이사'다.
뮤지컬 '오늘 밤, 세계에서 이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이하 '오세이사')는 괴롭힘당하는 친구를 돕기 위해 거짓 고백을 하게 된 가미야 도루가 자고 일어나면 전날의 기억이 사라지는 선행성 기억 상실증을 앓는 히노 마오리와 가짜 연애를 시작하게 되며 겪는 일들을 그린 작품이다.
가미야 도루는 사에구사 켄토가 친구를 괴롭히는 것을 막기 위해 히노 마오리에게 거짓 고백을 한다. 이에 히노 마오리는 '학교 끝날 때까지 서로 말 걸지 말 것. 연락은 되도록 간단하게 할 것. 진짜로 좋아하지 말 것'이라는 세 가지 조건을 내밀고 그의 고백을 받아들인다.
조건부 가짜 연애를 시작한 두 사람은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추억을 차곡차곡 쌓아간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히노 마오리에 대한 감정이 커진 가미야 도루는 조건에 어긋나버린 자신의 속마음을 전하고 이를 들은 히노 마오리는 자신이 선행성 기억상실증을 앓고 있음을 고백한다.
알고 보니 히노 마오리의 시간은 1년 전에 멈춰 있었고 매일 밤 그날 있었던 일을 적은 일기를 다음 날 읽으면서 기억의 페이지를 새롭게 써 내려가고 있었던 것. 이를 알게 된 가미야 도루는 충격도 잠시 자신이 고백했다는 것을 일기에 적지 말아 달라고 부탁하고 매일 쓰는 일기를 즐거운 추억으로 가득 채우고 내일의 히노 마오리에게 용기를 심어줄 수 있도록 함께 시간을 보낸다.
그러나 현재 히노 마오리의 곁에 있는 사람은 가미야 도루가 아닌 친구 와타야 이즈미, 사에구사 켄토 뿐이다. 심장병으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가미야 도루의 부탁으로 일기 속 그의 흔적을 모두 지웠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건강을 회복하고 있는 히노 마오리는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지만 누군가와 학창 시절을 함께했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끼면서 바뀐 일기의 진실에 다가간다.
'오세이사'는 국내 판매 50만 부를 돌파한 작가 이치조 마사키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2022년 개봉한 동명의 일본 영화는 눈물샘을 자극하는 두 청춘의 러브스토리와 아름다운 영상미로 10·20 여성 관객들을 사로잡았고 누적 관객 수 121만 명을 기록하며 국내에서 개봉한 일본 실사 영화 흥행 2위에 오르는 쾌거를 거뒀다.
그리고 이번에는 무대 위에서 다시 피어난 '오세이사'다. 작품은 고등학생들의 풋풋하고 귀여운 순간들을 담은 1막과 한순간에 소중한 사람을 떠나보낸 이들의 시간을 녹여낸 2막으로 사랑과 상실의 경험이 있는 모든 이들을 위로한다.
얼핏 보면 뻔하고 유치하게 느껴질 수 있는 고등학생들의 로맨스물 같지만 그렇지 않다. 자고 일어나면 전날의 기억을 잃는 병을 갖고 있는 히노 마오리와 이를 안타깝게 여기지 않고 다채로운 추억들로 채워주려는 가미야 도루를 비롯한 그의 친구들 그리고 "기억은 사라져도 마음은 없어지는 게 아닐 거야" "오늘은 오늘만 오늘이니까" 등과 같은 대사로 우리 모두에게 찾아오는 오늘의 소중함을 다시금 되새기게 한다.
여기에 봄날의 공원부터 여름밤의 불꽃놀이와 마오리의 수채화 등 LED 무대장치로 표현된 문학적인 풍경과 모던락 인디팝 포크 신스팝 발라드 스윙 등 다채로운 장르의 넘버들이 눈과 귀를 즐겁게 한다.
이준 윤소호 인성이 가미야 도루 역을, 장민제와 솔빈이 히노 마오리 역을 맡아 관객들과 만나고 있다.
인성은 무미건조한 일상을 보내다가 히노 마오리를 만나면서 설렘과 애틋함을 느끼는 인물의 감정 변화를 섬세하게 쌓아간다. 특히 그는 계속 옷을 털고 뛰고 나서 심장을 부여잡는 등 디테일한 동작을 더해 대사로 드러나지 않는 인물의 서사에 집중하고 탄탄한 가창력으로 잔잔한 감성부터 경쾌한 멜로디까지 다양한 장르의 넘버를 완벽하게 소화하며 극을 안정적으로 이끈다.
그동안 뮤지컬 '썸씽로튼' '데스노트' '어쩌면 해피엔딩 2024' 등을 통해 탄탄한 필모그래피를 구축한 장민제는 매일 기억을 잃는 히노 마오리가 느끼는 불안함을 과하지 않게 그려낸다. 여기에 와타야 이즈미로 분한 오유민과 사에구사 켄토로 분한 정지우도 안정적인 가창력과 연기력으로 무리 없이 작품의 한 축을 담당한다.
다만 소설이나 영화로 '오세이사'를 즐겼던 관객이라면 사에구사 켄토의 변화된 설정값이 다소 몰입되지 않을 수도 있다. 물론 가미야 도루에게 도움을 받아 우정을 키워나가는 인물과 그를 괴롭히다가 가미야 도루에 의해 감화되는 인물이 합쳐져서 나온 캐릭터라는 기획 의도는 이해가 되지만 이것이 단번에 받아들여질 수 있을 정도로 매력적으로 그려졌는지에 대해서는 다소 고개를 갸웃거리게 한다. 여기에 쉴새 없이 움직이는 무대 장치는 조금 산만한 느낌을 주며 집중도를 떨어트린다는 또 다른 아쉬운 지점도 있다.
'오세이사'는 오는 8월 24일까지 코엑스 신한카드 아티움에서 공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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