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버스킹은 이제 단순한 거리 공연을 넘어 다양한 방식으로 진화하고 있다. 예술가의 자발적인 무대이자 데뷔의 발판이 되고 아이돌의 새로운 홍보 전략으로 활용된다. 또한 쉽게 볼 수 없는 아티스트의 컬래버레이션 무대까지 즐길 수 있다. <더팩트>는 변화하는 거리 공연 문화를 다양한 시선에서 들여다봤다. <편집자주>
[더팩트ㅣ세종=최수빈 기자] "음악은 타임머신 같죠. 그 노래를 들었던 때로 되돌아가니까요."
JTBC 예능프로그램 '비긴어게인 오픈마이크' 녹화가 지난 11일 오후 1시 세종특별자치시청 내 한글사랑 세종 책문화센터에서 진행됐다. 이날 녹화는 낮과 밤 두 차례에 걸쳐 이뤄졌으며 각각의 분위기에 맞는 곡들이 선곡돼 관객에게 다른 감동을 전했다.
녹화 방청 신청은 지난달 23일부터 29일까지 세종시청을 통해 접수됐다. 약 1만 3000명이 몰릴 만큼 높은 관심 속, 신청자 25명을 선정하고 동반 1인을 포함한 50명이 각 타임별로 함께했다. 낮 녹화에는 가수 곽진언 변진섭 려욱이 따뜻하고 감성적인 무대를 꾸몄고 밤 녹화에는 밴드 잔나비가 여름밤을 뜨겁게 달궜다.
유리너머로 햇살이 쏟아지던 공간. 오후 12시를 막 넘긴 시간부터 관객들의 설렘으로 천천히 채워진 이곳은 세종시의 다양한 연령대 시민들이 모여 음악을 통해 하나 되는 공간으로 바뀌었다. 특히 방청을 신청한 관객들뿐만 아니라 세종시청의 직원들과 방문객들도 발걸음을 멈추고 잠시 음악에 귀를 기울일 수 있는 순간을 선사했다.
이번 녹화의 주제는 발라드였다. '비긴어게인' 제작진은 세종시에서의 첫 녹화를 위해 특별한 무대를 준비했다. 시작에 앞서 무대에 오른 김지선 PD는 "전국 각지를 돌며 촬영 중인데 세종시는 처음이다. 초청해 주신 덕분에 좋은 공간에서 녹화를 하게 돼서 정말 감명 깊다"며 "소중한 연차를 내고 오신 만큼 아깝지 않은 좋은 공연 선사하겠다"고 약속했다.

이어 "오늘 무대의 주인공은 한국 발라드의 전설 변진섭, 올해 데뷔 20주년을 맞이한 K팝 레전드 아이돌 슈퍼주니어 려욱, 감성을 노래하는 싱어송라이터 곽진언"이라며 "같이 부르는 곡도, 혼자 부르는 곡도 준비돼 있으니 좋은 힐링이 되길 바란다. 버스킹은 함께 만들어가는 거니까 여러분이 녹화의 주인공이라 생각하고 함께해달라"고 당부했다.
오후 1시 10분, 출연진이 모습을 드러내자 관객들은 따뜻한 박수로 화답했다. 변진섭은 "'비긴어게인' 무대로는 처음 인사드리는 거다 보니까 굉장히 기분 좋고 떨리기도 한다. 여러분과 가까이 마주하니까 너무 반갑다. 좋은 시간 보내고 가셨으면 좋겠다"고 인사했다.
려욱은 "'호캉스'(호텔+바캉스) 만큼이나 시원한 '뮤캉스'(뮤직+바캉스) 선사해드릴테니까 많은 기대해달라"고, 곽진언은 "선배님들과 함께 무대를 하게 돼서 굉장히 설렌다. 다양한 곡 준비했으니 함께 즐겨주시면 좋겠다"고 소감을 전했다.
이날 무대의 배경이 된 책문화센터 공간은 세종대왕 동상이 지키는 복합문화공간으로 현장의 분위기를 더욱 특별하게 만들었다. 곽진언은 "한글과 책을 사랑하는 분들께 모두 열려 있는 공간"이라며 "세종시가 세종대왕에서 유래한 만큼 한글문화 도시로서 진심을 다했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변진섭 또한 "발라드에서 중요한 건 가사다. 한글을 사랑하는 도시인 만큼 오늘은 한 글자 한 글자 더 마음을 담아 부르겠다"며 "가사 하나하나 음미하며 들어주셨으면 한다"고 바랐다.
첫 무대는 변진섭의 대표곡 '숙녀에게'로 시작됐다. 여전히 수많은 이들의 기억을 되살리는 이 곡은 관객들의 마음을 조용히 두드렸다. 려욱은 '어린왕자'를 어쿠스틱 버전으로 들려줬고 곽진언은 '그대가 들어줬으면'을 통해 담백한 감성을 전했다.
무대 중간중간 이들은 곡과 얽힌 이야기를 간단하게 들려주며 의미를 더했다. 이후 변진섭과 려욱은 '너에게로 또다시'를 듀엣으로 부르며 따뜻한 화음을 선사했다. 려욱은 "어릴 적부터 좋아하던 노래다. 방송에서 꼭 불러보고 싶었는데 선배님하고 불러볼 줄은 몰랐다"고, 변진섭은 "'비긴어게인' 스타일이 기타와 피아노 두 악기로 하는 건데, 이 버전으로 부르는 '너에게로 또다시'는 어떨지 기대가 된다"고 했다.
이어진 곡들 역시 분위기를 끌어올리기에 충분했다. '별의 하모니'를 부르기 전 려욱은 관객들과 후렴을 함께 연습하며 현장을 하나로 만들었고 '나에게'를 통해 담백하면서도 깊은 감정을 전달했다. 변진섭 또한 '새들처럼'을 부르며 관객들 한 명 한 명과 눈을 맞췄다. 특히 마지막 후렴에서는 반주를 줄이고 관객들의 목소리로 무대를 채우는 장면을 연출했다.

이는 변진섭이 녹화 현장에서 즉석으로 낸 아이디어다. 변진섭은 리허설 때, 마지막 후렴구에서 피아노 소리가 줄어들고 관객들과 함께 따라 부르는 걸 해보는 게 어떠냐는 아이디어를 냈다. 관객들의 박수와 떼창 속에서 그가 받은 환호성은 이날 무대가 단순한 녹화를 넘어 진정한 공연으로 기능했음을 방증했다.
마지막으로 려욱과 곽진언이 '뜨거운 안녕'을 부르며 이날 버스킹 무대를 마쳤다. 화려하지 않은 무대, 하지만 진심이 담긴 노래와 관객의 리액션은 그 어떤 공연보다 짙은 감동을 남겼다. 공연이 모두 끝난 후에도 관객들은 연신 "앙코르"를 외치며 이 순간이 끝나지 않기를 바랐다. 그리고 그들을 따뜻하게 바라보며 미소 짓던 출연진의 모습은 이날의 따뜻한 공기를 오래도록 기억하게 했다.
화려한 조명도, 수천 명의 함성도 없었지만 그 자리에 있던 이들은 안다. 진심이 담긴 목소리는 가장 가까운 곳에서 가장 깊이 닿는다는 것을. '비긴어게인'은 그동안 거리 위에서 음악의 온기를 전해왔고 이번 세종시 무대 역시 그 연장선에 있었다.
버스킹은 단지 노래만 부르는 행위가 아니다. 삶의 한 장면에 음악이 스며들며 일상을 위로하는 순간, 그 음악은 공연을 넘어 하나의 추억이 된다. '비긴어게인'은 바로 그 기억을 무대 위에서 조용히 만들어내고 있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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