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강일홍 기자] 트로트 오디션프로그램이 잇달아 성공을 거두면서 최근 몇년 간 방송가요계 판도는 크게 바뀌었습니다. 팬덤을 등에 업고 급부상한 라이징 스타들이 기성 가수들을 주류 무대에서 밀어내는 이변을 만들어냈기 때문입니다. 오디션 출신 중에서도 임영웅 이찬원 영탁 송가인 전유진 등 일부 가수는 그야말로 막강 파워를 자랑합니다. 이들은 마력의 인기 여세를 몰아 단기간에 대세 스타로 발돋움했습니다.
음악에 대한 대중의 선호도가 달라지면 트렌드에도 변화가 생기게 마련인데요. 똑같은 노래라도 젊고 싱싱한 뉴페이스가 부르면 느낌과 신선도는 달라질 수 있습니다. 그들이 부르는 커버송은 원곡 가수를 뛰어넘는 폭발적 관심으로 증폭되기도 합니다. 서바이벌 오디션의 마술 같은 기적일 수 있지만, 남의 히트곡을 불러 정상급 무대로 뛰어오르는 일은 이전이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파격입니다.
◆일부 '레전드' 심사위원, 방송사 오디션프로그램 '병풍 역할' 불과
세상만사는 시시각각 바뀌고, 달라지는 변화를 거스를 수도 없습니다. 방송 가요계, 그리고 트로트계의 흐름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만 변화가 늘 긍정적으로만 흘러가지는 않습니다. 오디션 바람을 타고 커버송이 인기를 누리면서 부수적으로 파생되는 갈등을 피할 수 없습니다. 이전에 없던 새로운 수혜자가 등장하면 또다른 누군가는 그 유탄(피해)을 맞고 눈물을 머금습니다.
기성가수들 중에는 오디션 출신 젊은 가수들에 밀려 갈 곳 없는 신세로 전락한 경우가 태반입니다. 우선 방송부터 출연기회가 대폭 줄었습니다. 차츰 대중적 관심이 사라지고, 절대 수입원인 지역 행사에서도 외면당합니다. 반면 오디션을 거친 유망 신인가수들은 기성 가수들의 히트 인기곡을 커버송으로 불러 갈채를 받습니다. 강력한 팬덤 지지까지 받으니 히트곡이 없어도 당당하기만 합니다.
트로트 가수들 사이에 '중간 허리가 무너졌다'는 자조섞인 말은 이제 일상이 됐습니다. 일부 기성 스타급 가수들이 '레전드' 심사위원 게스트로 포장돼 체면을 유지하는 것처럼 보여도 알고 보면 방송사 오디션프로그램의 '병풍 역할'에 불과합니다. 음악프로그램에 오디션 가수들의 커버송이 주 레퍼토리가 되다보니 신곡을 들을 기회가 대폭 줄고, 새로운 히트곡도 나오지 못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방송사, 신인 가수와 별도 계약 등 '이중 삼중 불공정 구조' 심화
예상치 못한 상황 변화로 무대를 빼앗긴 대다수 기성가수들은 이런 왜곡된 현실과 아이러니가 답답합니다. 불이익을 받는 또 다른 피해자도 있습니다. 노래 한곡이 히트하면 작사 작곡자와 동일하게 음반제작자에게도 상응하는 음원권리가 생성되는데요. 방송사가 오디션 선곡으로 커버송을 유통시키면서 원곡 또는 원곡가수가 대중에 접근할 기회는 크게 줄어듭니다.
오디션프로그램 제작비는 한때 100억 원까지 치솟았습니다. 여기엔 공연판권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지만, 방송콘텐츠를 활용한 방송사의 부가 판권수익(IP)은 상당합니다. 커버 음원권도 무시할 수 없는 수익원입니다. 2차 음원(파생 저작물) 권리를 가진 방송사는 당연히 원곡이 아닌 커버송을 많이 유통시키고, 기성가수보다는 오디션 출신 뉴페이스 가수들을 선호합니다.
우려의 목소리는 최근 가요계 안팎에 커버 음원을 둘러싼 제도개선 필요성에 대한 물밑 움직임과도 무관치 않습니다. 커버 음원 제작의 불공정 관행과 원제작자의 피해, 제도적 개선의 필요성에 대한 지적인데요. 방송사가 송출 및 편성권을 독점적으로 행사하면 원곡가수는 행사·공연·방송 출연 등에 불이익을 받습니다. 원곡 제작자 역시 수익 손실을 감수할 수 밖에 없습니다.
◆'커버송 독점', 편곡권만 확보하면 새로운 마스터 음원 제작 가능
현행 저작권법상 커버 음악은 편곡권만 확보하면 새로운 마스터 음원 제작에 전혀 걸림돌이 없습니다. 수 십년 된 히트곡이라도 편곡을 통한 새로운 음원 제작과 유망 라이징스타가 불러주는 커버송이 가져다주는 수익이 더 커질 수 있습니다. 원곡 작사 작곡자는 커버송 유통을 반대할 이유가 없습니다. 리바이벌 재 히트로 이어져 저작권 및 저작료는 오히려 상승하는 구조입니다.
미국의 경우 커버 음원 제작 시 원작곡자에게 일정 법정 로열티를 주는 의무적 라이선스(Compulsory License)가 있습니다. 반독점 규제로 방송사가 시장을 모두 독점할 수 없습니다. 일본도 방송사와 음반 레이블을 분리하는 방식으로 방송사가 직접 가수를 매니지먼트하거나 음원을 유통하기 어렵습니다. 반면 음원 시장 지배력이 절대적인 국내 방송사는 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언제든 편파 편성이 가능합니다.
오디션 프로그램은 '미스트롯'과 '미스터트롯'이 연달아 대박행진을 벌이면서 본격화됐습니다. 종편채널에서 분 바람은 지상파로 이어졌고, 오디션 봇물을 이뤄 현재는 시즌제로 정착됐습니다. 방송사들은 두 자릿수 시청률을 보증받는 오디션을 당분간 포기할 이유가 없고, 커버송 파생 저작료 독점 논란은 계속될 수밖에 없습니다. 수익에 눈먼 방송사, 시장이 왜곡되면 그 피해는 결국 시청자들이 고스란히 떠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