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팩트 | 김명주 기자] 배우 배두나가 그간 좀비물, 형사물에서 보여준 무표정한 얼굴이 아닌 수줍고 러블리한 얼굴로 관객들을 찾아온다. 독특한 시나리오, 함께한 선배, 도움이 된 의상 등 무엇 하나 빠지지 않고 그가 마음껏 놀 수 있었던 현장이었다. 그렇게 배두나는 '바이러스'를 통해 칙칙하고 어두운 모습에서 반짝이는 눈빛의 화사함까지 다채로운 면모를 꺼내 보인다.
배두나는 지난 7일 스크린에 걸린 영화 '바이러스'(감독 강이관)로 관객들과 만나고 있다. 개봉에 앞서 지난달 30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더팩트>와 인터뷰를 진행한 그는 "팬데믹 전에 찍은 작품인데 오래돼 보이지 않는, 상큼한 영화라는 리뷰가 많아 기분이 좋다"며 작품과 관련된 다양한 이야기를 전했다.
'바이러스'는 이유 없이 사랑에 빠지는 치사율 100% 바이러스에 감염된 택선(배두나 분)이 모태 솔로 연구원 수필(손석구 분)과 오랜 동창 연우(장기하 분) 그리고 치료제를 만들 수 있는 유일한 전문가 이균(김윤석 분)까지, 세 남자와 함께하는 예기치 못한 여정을 그린다.
시나리오의 엉뚱함과 김윤석 때문에 작품을 선택했다는 배두나는 "코믹한 시나리오들을 받아본 적은 있었지만 '바이러스'는 굉장히 독특했고 무장해제 돼서 감염되듯 사랑에 빠지는 아이디어가 좋았다"고 전했다.
"부정적이었던 사람이 바이러스에 감염돼서 밝아지고 행복해 보이고 사랑스러운 사람이 되는 내용이 좋았어요. 현대 사회에 필요한 이야기 같았어요. 그리고 김윤석 선배가 먼저 캐스팅돼 있었기 때문에 더 긍정적이었던 것도 있었어요. 기회가 되면 꼭 선배와 작업해 보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시나리오를 읽을 때부터 호감을 갖고 봤어요."
작품은 2019년 7월 촬영을 시작해 같은 해 10월 일정을 마쳤다. 이후 팬데믹이 창궐하면서 개봉이 밀렸고 약 6년 만에 관객들을 찾아가게 됐다. 배두나는 "잊고 있었고 다른 작품들을 하면서 추이를 지켜보고 있었는데 개봉하게 됐다. 영화로 수년 전의 나를 보니 너무 귀엽고 풋풋하더라"라고 돌이켰다.
"2020년 1월 코로나19가 우리나라에 들이닥칠 때 사실 놀랐지만 오히려 이 영화가 희망을 줄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주인공이 가진 슈퍼 항체가 만인을 구할 수 있잖아요. 히어로적인 성격이 있는 캐릭터 자체가 힐링을 줄 수 있지 않나 생각했어요. 그래서 차라리 (팬데믹 동안에) 개봉을 했으면 어땠을까 싶어서 아쉬운 마음이 있었어요."

배두나가 맡은 택선은 소설가를 꿈꿨지만 일찌감치 재능이 없음을 깨닫고 온종일 타인의 활자와 씨름하는 번역가다. 매사가 우울모드에 연애 세포 소멸 직전인 택선은 어느 날 '톡소 바이러스'에 감염된 후 하루아침에 온 세상과 사랑에 빠진 '금사빠(금방 사랑에 빠지는)'로 돌변하게 된다.
배두나는 택선을 통해 일상의 에너지가 고갈돼 무기력하고 웃음기 없는 모습부터 생기발랄하고 설렘 가득한 모습까지 극과 극의 면모를 꺼내 보였다. 그는 "감염 전의 택선은 사회나 자신으로부터 주눅이 들어서 사랑스러워질 수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연기했다"고 이야기했다.
"현대 사회가 사람을 좀 우울하게 만드는 구석이 있는 것 같아요. 남들과 비교하고 나 빼고 다 행복해 보이고 이상향에 도달하기는 어렵고 이런 여러 가지가 사람을 주눅 들게 하는데 감염되기 전 택선이 그런 버전인 것 같아요. 그러다가 감염이 되고 나서는 '모두가 나를 사랑의 눈으로 바라봐주고 있다'고 생각하고 임했어요. 그러면 마음이 편하니까 택선이 밝아질 것이고 감염되면 '모두가 나를 특별하게 대해준다'고 느낄 것 같아 그렇게 여기고 임했어요."
배두나는 택선이 감염된 후 호감을 느낀 연우를 찾아갈 때 입은 화려한 패턴의 하늘색 원피스와 감염 의심 후 입은 핫핑크색 방역복이 연기에 도움이 됐단다.
"분장이나 의상에 영향을 많이 받아요. 하늘색 원피스나 핑크색 방역복 모두 봤을 때는 황당했어요. 그런데 입으니까 만화 속에 들어가 있는 것 같고 판타지적인 느낌이 강해지더라고요. 덕분에 이 영화의 톤이나 엉뚱함을 가늠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바이러스에 감염된 택선은 이유 없이 기분이 좋아지며 상대방에 대한 호감도가 상승해 사랑까지 할 수 있는 상태가 된다. 이성적으로 통제되지 않는 감정을 표현해야 했던 배두나는 "택선의 액션에 상대방도 호응하고 있다고 세뇌하면서 찍었다. 상대방도 너무 좋아하고 있어서 택선이 어떻게 하든 좋아할 것이라고 여겼다. 그렇게 감염 증상을 생각하고 연기했다"고 들려줬다.
배두나는 같이 호흡을 맞춘 김윤석에 대해서 굳건한 믿음을 드러냈다. 그는 "여러모로 배울 게 많고 언제든 작품을 같이 하고 싶은 선배"라고 김윤석을 치켜세웠다.
"촬영이 다 끝나고 시간이 지나서 생각해 보니까 선배가 저를 배려했던 부분에 대해서 하나씩 알겠더라고요. 현장에서는 한없이 저를 귀여워해 주셨고 이균 박사가 택선이 대하듯이 해줬어요. 그래서 더 잘 놀 수 있었어요. 제자 천진하게 나왔다면 그건 선배가 만들어준 분위기에 제가 반응하고 있었던 거예요. 그리고 작품 전반을 꿰뚫어 보는 시선이나 관찰력이 뛰어나세요."

1998년 쿨독 카탈로그 모델로 데뷔한 배두나는 1999년 '링 바이러스'로 처음 영화에, 같은 해 '학교1'로 처음 드라마에 발을 내밀었다. 어느덧 데뷔 30주년을 앞두고 있는 그는 "나이 드는 것을 잘 모르겠다"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우리 세대 배우들이 많이 활동하고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더 잘 못 느끼는 것도 있고 철없이 일하고 있는데 자꾸 출연했던 작품들이 개봉 20주년이 됐다고 재개봉을 할 때 실감을 해요. 데뷔 30주년이 돼도 여전히 철없을 것 같아요."
배두나는 영화 '터널', 드라마 '비밀의 숲' 시리즈, 넷플릭스 '킹덤' 시리즈 등 다수의 장르물에서 활약해 왔다. 드라마, 영화 등 업계가 침체하면서 작품을 신중하게 고르고 있다는 그는 차기작에 대해서도 들려줬다. 배두나는 "예전에는 이것도 해보고 저것도 해보고 여유가 있었다면 지금은 조심스러운 상황인 것 같다"고 귀띔했다.
"최근에 본 시나리오 중에 재밌게 본 것이 어처구니없겠지만 코미디에요. 지금 해보고 싶은 것이 그런 장르인 것 같아요.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는 미덕이 있는 콘텐츠가 요즘 좋아 보여요. 사회적 메시지나 대의 이런 것보다 작은 것,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 인간 등 따뜻하고 귀엽고 웃긴 작품에 끌리고 관객으로서도 보고 싶어요."
그렇다면 배두나의 '소확행'은 무엇일까. 그는 "맨날 바뀌는데 요즘 꽂힌 것은 스마트워치가 기록해 주는 운동량이다. 매일 운동을 하면 날짜에 빨간 도장이 찍힌다. 도장을 매일매일 모아서 한 달 모으는 것으로 소소한 행복을 느끼고 있다"고 웃으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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