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는 종종 현실보다 더 현실 같은 직업 세계를 그려낸다. 생소하지만 매력적인, 때로는 허구 같기도 한 이색 직업들이 시청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있다. 실제로 해당 직군에 대한 인식이나 관심에도 영향을 미치는 중이다. 이에 <더팩트>는 드라마 속 이색 직업의 세계를 살펴보고 실제 직업과의 간극이 얼마나 되는지 짚어봤다. <편집자 주>
[더팩트ㅣ최수빈 기자] 등장인물의 직업은 설정에 불과하다는 말은 이제 옛말이다. 최근 몇 년 사이, 드라마 속 이색 직업은 단순한 캐릭터 설정이 아닌 서사의 핵심으로 자리 잡고 있다. 이는 시청자들에게 새로운 정보를 제공함과 동시에 인물의 성장을 보여주는 중요한 장치로 작용한다.
예전에는 검사 의사 경찰처럼 익숙한 전문직이 드라마의 주류였다면 최근에는 감자연구원, 브루어리, 조향사 등 평소 접하기 어려운 직업군이 인물의 주요 배경이 된다. 특히 이 직업들은 단순히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인가를 넘어 작품의 주제와 세계관을 구성하는 중요한 도구로 사용된다.
사실 과거의 드라마에서도 이색 직업은 종종 등장했다. 하지만 대부분은 극의 분위기를 살리거나 캐릭터의 특이점을 부각하는 용도에 그쳤다. 2005년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에서 주인공은 당시 생소했던 파티시에라는 직업을 가졌지만 해당 직업의 전문성이 깊이 있게 다뤄지지는 않았다.
또한 2003년 드라마 '보디가드'도 당시로서는 드물게 민간 경호업을 중심 소재로 그렸다. 경호원이라는 직업의 세계를 다각적인 시선으로 조명해 보디가드로서의 사명과 본분을 다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커피프린스 1호점'은 한국 드라마에서 바리스타라는 직업을 본격적으로 조명한 대표적인 작품이다. 이 작품은 바리스타라는 직업을 단순한 배경이 아닌 주요한 설정으로 활용하며 신선한 인상을 남겼다.
특히 이 작품을 계기로 바리스타라는 직업에 관심을 갖고 실제로 진로를 선택한 사례도 있다. 2018년 월드바리스타챔피언십 컵테이스터스 부문에서 우승한 야마 김은 고등학교 시절 '커피프린스 1호점'을 보고 바리스타의 꿈을 키웠다고 밝혔다. 이처럼 드라마를 통해 이색 직업을 다룰 경우 단순한 극적 장치에 그치지 않고 시청자들에게 진로에 대한 새로운 영감을 줄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이후 변화는 점차 뚜렷해졌다. 2016년 드라마 '낭만닥터 김사부'는 외과의사라는 전문적인 분야를 사실적으로 묘사해 직업 자체가 서사의 중심축으로 기능할 수 있음을 보여줬다. '시그널' 또한 프로파일러와 형사의 공존을 통해 실제 미제 사건을 모티프로 삼은 구조로 몰입감을 더했다.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 우영우(박은빈 분)의 자폐 스펙트럼 장애와 변호사라는 직업은 분리되지 않는다. 직업은 단지 생계의 수단이 아니라 주인공이 세상의 편견과 맞서 싸우고 성장하는 수단이 된다. 이처럼 직업은 인물의 정체성과 맞물려 설득력 있는 서사를 만든다.
또한 이색 직업을 중심에 둔 드라마들은 장르물의 틀을 넓히는 역할도 하고 있다. '보이스' 시리즈는 112 신고센터의 '골든타임팀'을 소재로 하며 범죄 스릴러의 긴장감을, '라이프'는 병원 내 권력 구조와 생명 윤리를 다뤄 인간 드라마로서 깊이를 더했다. 이처럼 직업군이 장르에 맞는 새로운 장치를 제공하면서 시청자에게 익숙하지 않은 이야기를 설득력 있게 전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드라마 속 이색 직업은 이제 단지 '색다름'을 위한 선택이 아니다. 캐릭터의 고유한 성격을 드러내는 열쇠이자 이야기를 끌고 가는 동력이다. 작가와 제작진에게는 방대한 사전 조사와 직업인에 대한 이해가 요구되지만 그만큼 서사의 밀도와 공감력이 높아진다.
이와 관련해 정덕현 문화평론가는 <더팩트>에 "대중들이 직업에 대한 관심이 꾸준히 있었다. 새로운 전문직을 소재로 삼았을 때 새로운 그림이 만들어졌다"며 "그 흐름 안에서 최근에는 조금 더 전문적인 직업을 다루는 드라마가 나오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하지만 그냥 통상적인 직업을 다루면 식상해진다. 그렇기 때문에 색다른 직업을 찾는 것"이라며 "M&A 전문가도 이런 직업군이 분명히 있는데, 조금 더 전문적으로 다루지 않았을 뿐이다"라고 덧붙였다.
정 평론가는 드라마의 리얼리티와 픽션 부분이 어느 정도 조화를 이뤄야 인기를 끌 수 있다고 바라봤다. 그는 "사전 취재를 충분히 한다고 하더라도 드라마가 무조건 성공하는 건 아니다. 대중들이 좋아할 만한 판타지가 더해졌을 때 원하는 그림이 나올 것"이라며 "완전히 리얼리티만 추구해서는 원하는 성적이 나온다고 보기는 어렵지 않나 싶다"고 짚었다.
이어 "지금은 너무 많지만, 예전에 바리스타라는 직업이 드라마에 처음 나왔을 때 관심이 정말 많았다. 드라마를 보며 '나도 해보고 싶다'고 생각할 수 있게 된다"며 "M&A 전문가도 그동안은 '기업 사냥꾼'으로 인지가 돼 있었는데 '협상의 기술'에서는 판타지를 섞었다. 이를 통해 인간적인 그림을 그렸기 때문에 직업군에 대한 선입견도 많이 바뀌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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