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박지윤 기자] 죄책감을 갖고 살아가는 가해자의 아들과 방황하는 피해자의 딸, 만나서는 안 될 것 같은 두 사람의 기묘한 동행이 시작된다. 그렇게 서로의 상처를 들여다보고 치유하며 진정한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파란'이다.
오는 9일 스크린에 걸리는 '파란'(감독 강동인)은 뒤바뀐 가해자의 아들과 피해자의 딸, 가족의 죄로 죽지 못해 살던 두 사람이 진심으로 살고 싶어지는 뜻밖의 동행을 그린 감성 미스터리 영화다.
폐섬유증을 앓고 있던 국가대표 사격선수 태화(이수혁 분)는 폐 이식 수술을 받고 살아난다. 하지만 뺑소니 사고를 내고 시체를 유기한 채 이식 수술을 받다가 사망한 아버지의 폐를 받은 태화에게는 다시 살 수 있게 됐다는 희망보다 벌을 받지 않고 세상을 떠난 아버지에 대한 원망과 피해자 가족을 향한 죄책감이 가득하다.
결국 사고 피해자의 딸 미지(하윤경 분)를 찾아 나서는 태화는 우연히 금은방에서 그가 자신의 결혼 예물을 바꿔치기 하는 것을 보게 되고, 이를 눈감아주는 것으로 속죄하려고 한다. 하지만 영문을 모르는 미지는 태화를 집요하게 따라다니면서 자신을 도와주는 이유를 묻고, 결국 태화는 두 사람이 어떤 사연으로 얽히게 됐는지를 알려준다.
이에 미지는 태화에게 금전적인 도움이 아닌 자신의 엄마를 같이 찾으러 가자는 제안을 한다. 이렇게 가해자의 아들과 피해자의 딸의 기묘한 동행이 시작되는 가운데, 미지가 그날의 숨겨져 있던 진실을 꺼낸다.
단편영화 '굿타임'으로 제21회 베이징필름아카데미 영화제 심사위원 특별상과 제20회 대한민국청소년영화제 단체상 금상을 받은 강동인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파란'은 제24회 전주국제영화제 코리안시네마 부분에 초청된 바 있다. 당시 영화는 심리적 긴장감과 범죄자 주변 인물들이 겪을 수 있는 죄책감, 고통에 대한 색다른 접근을 감각적인 연출로 그려내며 호평을 끌어냈다.
이번 작품을 통해 처음으로 연기 호흡을 맞춘 이수혁과 하윤경은 지금껏 보여준 적 없는 새로운 얼굴을 꺼내 시선을 사로잡는다. '파이프라인'(2021) 이후 4년 만에 스크린에 돌아온 이수혁은 현실에 발 붙어있는 인물을 연기해 신선함을 선사한다. 그동안 신비한 비주얼로 뱀파이어 등 비현실적인 캐릭터를 주로 소화했던 그는 감정적으로 강하게 부딪히며 연기의 폭을 넓힌다.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강남 비-사이드' 등을 통해 안정적인 연기력을 보여준 하윤경은 홀로 하루하루를 불안하게 보내는 미지로 분해 작품의 한 축을 담당한다. 가정폭력에 노출됐고 자신을 보호해 줄 울타리가 없는 상황에 놓인 인물을 만난 그는 차갑고 메마른 얼굴 위에 복잡다단한 내면을 섬세하게 쌓아 올리며 몰입도를 높인다.
또한 '파란'은 한국 영화 최초로 클레이 사격을 소재로 다뤄 관심을 모았다. 다만 호흡이 중요한 여타의 스포츠와 달리 숨을 참아야 집중할 수 있고 높은 점수를 낼 수 있는, 클레이 사격의 특성을 살릴 뿐 비주얼적으로 신선하게 다가오는 장면은 그리 많지 않다.
작품의 제목에는 두 인물의 인생을 요동치게 만든 커다란 사건을 뜻하는 파란(波瀾)과 역경을 딛고 운명을 개척한다는 파란(破卵)의 의미가 담겨 있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평범했던 일상이 한순간에 무너지면서 각각 가해자이자 피해자의 가족으로 살게 된 태화와 미지가 우연한 계기로 만나 서로의 상처를 외면하지 않고 깊게 들여다보며 숨겨져 있던 진실을 마주하고, 벼랑 끝에서 다시 한번 살아갈 힘을 얻게 되는 이야기를 그린다. 이렇게 상처가 같은 서로만이 치유해 줄 수 있는 구원 서사를 미스터리하게 녹여낸 '파란'은 15세 이상 관람가이며 러닝타임은 105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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