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세월 같은 자리에서 뮤지션들에겐 설 자리를 만들어주고 음악 팬들에겐 다양한 음악을 소개하는 곳이 있다. 작지만 큰 존재감을 발휘하는 곳 롤링홀이다. 그 세월만 올해로 무려 30년. 공연 침체기인 코로나19 시기도 이겨내고 다시 뜨거운 에너지가 넘실거리는 롤링홀을 들여다 보고 얘기를 들어봤다. <편집자 주>
[더팩트 | 정병근 기자] "음악은 밴드가 지배할 세상이 올 거라는 생각으로 시작했어요. 지금까지 올 줄은 몰랐죠.(웃음) 굉장히 힘든 일도 많았어요. 특히 코로나가 왔을 땐 저도 그만두려고 했죠. 그런데도 버틴 건 그만두려고 해도 그만둘 수가 없더라고요. 뮤지션들이 롤링홀을 지키자고 나섰거든요. 그때 크게 느꼈어요. '롤링홀은 나만의 것이 아니구나'라고요."
1995년 6월 신촌 롤링스톤즈로 출발한 롤링홀은 언더그라운드 음악의 성지다. 김 대표의 형인 김영만 전 대표가 오픈했던 롤링스톤즈를 1997년 김 대표가 인수했고 2004년 지금의 서교동 자리로 옮기면서 제대로 틀을 갖췄다. 매년 평일 주말 가리지 않고 쉬지 않고 공연이 열렸고 지금까지 롤링홀 무대에 섰던 아티스트가 최소 1000팀이 넘는다.
그 과정에서 가장 큰 위기는 2020년 전 세계를 집어삼킨 코로나19다. 사회적 거리두기 등으로 인해 수년간 공연 업계가 문을 닫으면서 운영을 계속 한다는 게 불가능해졌다. 그때 뮤지션들이 나섰다. 힙합 뮤지션들이 롤링홀 운영 기금 마련을 위해 온라인 공연 '세이브 더 모먼트(Save the Moment)'를 진행했고 '세이브 아워 스테이지(Our Stage)'도 있었다.
30년 세월 동안 수많은 뮤지션들의 마음이 모이고 쌓인 곳이 롤링홀이고 이는 김 대표가 롤링홀을 자신의 것이 아니라 우리의 것이라고 말하는 배경이다.
롤링홀은 그야말로 '음악이 멈추지 않는 곳'이다. 매년 최소 200팀 이상이 무대에 오르는 이곳은 1년 내내 공연이 열린다. 그렇다 보니 "대한민국의 거의 모든 언더그라운드의 뮤지션들이 롤링홀에 섰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는 김 대표의 말이 결코 과장이 아니다. 그 중엔 이제 스타가 된 이들도 여럿 있고 스타가 돼서 이곳을 찾는 경우도 있다.
YB, 노브레인, 크라잉넛 등은 롤링홀 초창기부터 무대에 섰고 2010년대 들어선 잔나비, 실리카겔 등의 밴드가 거쳐 갔다. 최근 밴드 붐의 중심에 있는 데이식스도 첫 라이브 공연을 이곳에서 했다.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게 있는데 바로 방탄소년단(BTS) RM이다. 그는 이미 슈퍼스타였던 2022년 12월 이곳에서 첫 솔로 공연을 했다.
롤링홀 무대에 선 모든 뮤지션들이 김 대표에게 소중하지만 또 다른 의미들이 더해져 기억에 남는 경우가 있다. RM의 공연이 그렇다. 김 대표는 "RM이 롤링홀에서 공연을 한다고 할 때 깜짝 놀랐다. 스타디움에서 해야 할 친구가 어렸을 때 품었던 꿈의 무대라고 여기서 한다고 하니 믿기지 않았다"고 떠올렸다.
"RM이 롤링홀에서 공연을 한다는 것만으로도 이 신이 주목을 받았어요. RM이 앨범 작업을 할 때도 인디 뮤지션들이 많이 참여하는데 이 역시도 언더그라운드 신의 확장성에 기여를 하는 거거든요. 정말 잘 된 가수가 작은 공연장으로 온다는 게 쉽지 않다는 걸 잘 알아요. 그래서 더 대단한 거고 그런 의미가 더해져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 중 하나예요."
몸집이 커졌음에도 1년에 한 번씩은 꼭 롤링홀에서 공연을 하는 팀들도 있다. YB, 체리필터 등이 대표적이다. 김 대표는 그 마음들이 고맙다. 그는 "작은 공연장에서 하다가 인기가 많아지면서 규모를 늘리는 건 잘되면 다 할 수 있는 거다. 그런데 인기가 많아졌는데 다시 고향 같은 곳에 오는 건 아무나 못 하는 것"이라며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20대 시절 '밴드가 지배하는 세상이 올 거야'라고 믿었던 김 대표는 30년을 같은 마음으로 우직하게 걸어왔고 그 꿈에 한걸음 더 다가간 광경을 보고 있다. 지난해부터 밴드 붐이 일고 있는 것. 그 중심에 데이식스가 있는데 김 대표는 이들을 보면서 참 뿌듯하다.
"데이식스가 처음에 한 2년 롤링홀에서 기획 공연도 함께 하고 했어요. 데이식스는 확실히 달랐어요. 공연을 한 번씩 할 때마다 성장하는 게 눈에 딱 보일 정도였거든요. 정말 잘 될 거 같다고 생각했는데 얼마 전에 고척돔 매진시키는 걸 보니까 기쁘더라고요. 어렸을 때 밴드가 지배하는 세상을 꿈꿨는데 그 방법을 보여준 게 데이식스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 세월들을 지나 20대에 롤링홀의 터를 닦기 시작한 김천성 대표는 롤링홀이 개관 30주년을 맞은 지금 50대 중반이 됐다. 김천성 대표의 얼굴에도 긴 세월이 내려앉았지만 마음은 늘 한결 같다. 고마운 뮤지션들에게 가능한 최선의 환경을 제공하고 또 관객들에게 특별한 추억이 되도록 해야 한다는 것.
공연 때만 사람을 고용하는 게 아니라 아예 조명 음향 무대 영상 각 파트의 감독과 늘 함께 한다. 전문화와 관리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민간 소극장치고 장비 관리나 업데이트를 많이 한다"고 자신한다. 또 매년 100회 정도의 공연을 자체 기획 공연으로 채운다. 즉, 대관만 하는 게 아니라 다양한 카테고리를 만들어 더 다채롭고 풍성한 공연을 선사하는 것.
매년 한 달여 동안 기획 공연을 하는 게 대표적인데 올해는 30주년을 맞아 무려 6개월 동안 펼쳐진다. YB, 노브레인, 빅마마 이지영, 크라잉넛x킹곤즈, 허클베리피, 송소희, OGS 등 다양한 장르의 수십 팀이 참여한다. 뮤지션에 컬러를 입히자는 취지로 공연과 콘텐츠를 만들어주는 프로젝트도 있다. 작년부터 경연의 요소도 넣었고 올해는 분야도 확장한다.
김 대표는 "기획이 많아져야 많은 뮤지션들이 더 소개가 되고 신의 확장성은 분명 많은 기획에서 이뤄진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대화를 하는 내내 밴드 신, 언더그라운드 신에 대한 강한 애정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런 그의 바람은 "롤링홀이 뮤지션들이 언제라도 기댈 수 있는 공간. 잘하다가도 떨어질 때 다시 밟고 올라갈 계단, 신인에겐 높은 계단이 아니라 쉽게 밟고 올라갈 수 있는 계단"이다. 그는 "처음이나 지금이나 똑같은 마음"이라고 말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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