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박지윤 기자] 감독 하정우가 10년 만에 이상하면서도 재밌는 작품을 들고 돌아왔다. 어느 정도 마음을 열고 생각을 비운 채 그가 제대로 깐 '로비' 판에 몸을 맡긴다면 쉴 새 없이 쏟아지는 특유의 말맛과 티키타카에 결국 저항 없이 터지고 만다.
4월 2일 스크린에 걸리는 '로비'(감독 하정우)는 연구밖에 모르던 스타트업 대표 창욱(하정우 분)이 4조 원의 국책사업을 따내기 위해 인생 첫 로비 골프를 시작하는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롤러코스터'(2013)와 '허삼관'(2015)을 선보였던 하정우의 세 번째 연출작으로 제작 단계부터 많은 관심을 모은 작품이다.
창욱은 뛰어난 기술력으로 승부를 보려 하지만 과거의 친구이자 현재의 라이벌인 광우(박병은 분)의 뒷거래 때문에 기회도, 기술도 번번이 빼앗기기만 한다. 4조 원에 달하는 국책사업을 따내면서 한 방에 자본을 확보하는 것이 회사의 유일한 탈출구라는 걸 아는 창욱은 결국 김이사(곽선영 분)의 제안에 따라 로비 판에 뛰어들기로 결심한다.
그렇게 김이사는 창욱이 따내고자 하는 사업의 결정권자인 정치권 실세 최실장(김의성 분)과 비리 장관 조장관(강말금 분)을 소개하며 뒷거래가 성사되는 주된 장소가 골프장임을 전달한다. 하지만 로비에 있어서 한 수 위인 광우가 일찌감치 조장관을 포섭한 상황.
이에 창욱은 로비를 알선하는 박기자(이동휘 분)에게 뇌물을 주고 최실장이 좋아하는 프로골퍼 진프로(강해림 분)에게 스폰서쉽 계약을 제안하며 최실장과의 골프 라운딩을 성사시킨다.
그리고 광우는 조장관에게 로비하기 위해 골프장 사장의 아내 다미(차주영 분)와 배우 마태수(최시원 분)로 팀을 꾸려 접대 골프에 나간다. 이렇게 뒷거래가 이뤄지는 골프장에 한날한시 각자의 목적을 위해 모인 인물들의 진흙탕 로비가 펼쳐진다.
'롤러코스터'로 누적 관객 수 27만 명을, '허삼관'으로 95만 명을 동원하며 흥행 측면에서 다소 아쉬움을 남겼던 가운데 10년 만에 감독으로 관객들과 만나게 된 하정우다. '비운의 명작'으로 회자되는 '롤러코스터'의 정신과 계승을 이어받으면서도 현실적인 측면을 고려하며 보다 더 많은 대중에게 다가가고자 하는 고민의 흔적이 느껴진다.
제한된 공간이었던 비행기에서 광활하지만 은밀한 공간인 골프장으로 장소를 확대했다. 이는 사생활 보호를 받으며 플레이가 이루어지는 장소인 만큼, 블랙코미디적인 요소에 적합한 배경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하정우는 골프장에서 펼치는 게임보다 그 안에서 벌어지는 뒷거래에 초점을 맞추면서 각기 다른 목적을 갖고 경기에 임하는 여러 캐릭터의 욕망을 쉴 새 없이 몰아치는 대사로 유쾌하면서도 날카롭게 풀어낸다. 다만 한 순간의 웃음으로 휘발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인간군상을 입체적으로 그려내며 관객들에게 생각할 거리도 던진다.
창욱으로 분해 극의 중심을 잡는 하정우를 필두로 김의성 강해림 이동휘 박병은 강말금 최시원 등이 개성 넘치는 캐릭터들에 각자만의 색깔을 입혀 톡톡 튀는 재미를 선사한다.
이 중에서도 김의성의 활약이 돋보인다. 매 작품 비호감 캐릭터를 찰떡같이 소화해 관객들의 분노를 유발했던 그는 이번에 진프로에게 젠틀하고 친절한 척하지만 지나친 팬심과 음흉한 속마음을 숨기지 못하고 선을 넘는 최실장 그 자체가 되며 '역대급 비호감 캐릭터'를 탄생시킨다. 여기에 강말금은 차진 사투리로, 최시원은 모든 것을 내려놓은 듯한 열연으로 시선을 사로잡는다.
골프장에서 벌어지는 로비에 초점을 맞춘 작품이기에 골프를 몰라도 즐기는 데 어려움은 없지만, 골프 용어들이 생소하게 다가오는 지점은 있다. 또한 캐릭터들의 말맛과 티키타카가 휘몰아치는 만큼, 보는 이들이 숨을 고를 새가 없어 그 유머를 온전히 만끽할 수 없다는 점이 아쉽게 다가오기도 한다. 여기에 '롤러코스터'를 재밌게 봤던 관객들이라면 현실과 타협한 메가폰의 연출에 다소 낮은 웃음 타율을 기록할 수도 있다.
'로비'는 하정우 감독이 10년 만에 내놓는 작품이자 '비공식 작전' '보스톤 1947' '하이재킹' '브로큰' 등 줄줄이 흥행 참패를 겪고 있는 가운데 하정우 배우가 또다시 관객들과 만나게 된 신작이다. 그 어느 때보다 '로비'의 흥행이 중요한 가운데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으며 감독으로서 대표작을 탄생시키고 배우로서 부진에서 탈출할 수 있을지 이목이 집중된다. 15세 이상 관람가이며 러닝타임은 105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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