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박지윤 기자] 어렸을 때부터 일을 시작해 어느덧 성인이 됐다. 그동안 해보지 못했던 것들을 즐길 수 있다는 막연한 기대감과 설렘을 품기보다 연기를 잘하는 배우이자 단단한 사람으로서 우직하고 올곧게 나아가는 방법을 끊임없이 고민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이제는 '아역'이라는 수식어를 떼고 배우로서 새로운 챕터를 열 이레의 앞으로가 더욱 기대될 수밖에 없다.
이레는 오늘(26일) 스크린에 걸리는 영화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감독 김혜영, 이하 '괜괜괜')로 관객들과 만날 준비를 마쳤다. 개봉을 앞둔 지난 20일 서울 종로구 팔판동에 있는 카페에서 <더팩트>와 만난 그는 "해외에서 좋은 반응이 있었고 저희 팀끼리 좋았던 기억이 있는데 한국에서는 어떤 반응이 나올지 기대되고 무섭다. 사랑받고 싶은 마음"이라고 말문을 열며 작품과 관련된 다양한 이야기를 전했다.
'괜괜괜'은 혼자서는 서툴지만 함께라서 괜찮은 이들이 서로의 행복을 찾아가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으로, 드라마 '멜로가 체질'과 쿠팡플레이 '유니콘'으로 매력적인 연출력을 선보인 김혜영 감독의 첫 장편 영화 데뷔작이다. 또한 한국 최초로 제74회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수정곰상 제너레이션 K플러스 작품상을 수상하고 전 세계 50개국의 영화제에서 러브콜을 받으며 개봉 전부터 뜨거운 화제성을 입증하고 있다.
무대 위에서 가장 행복한 무한 긍정 소녀 인영으로 분한 이레는 당차고 솔직한 여고생 캐릭터를 찰떡같이 소화하며 밝은 에너지로 스크린을 장악한다. 특히 그는 교통사고로 엄마를 잃고 하루아침에 혼자가 됐지만, 환한 미소를 잃지 않고 씩씩하게 살아가는 인영을 입체적으로 그려내며 보는 이들에게 유쾌하면서도 뭉클한 감동을 선사한다.
앞서 김 감독은 기자간담회에서 이레를 주인공으로 캐스팅한 것에 대해 "인영이가 밝고 꿋꿋한 인물인 만큼, 이를 연기하는 배우에게도 밝음이 있길 바랐다. 또 연기를 많이 잘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이레는 제가 생각하는 이 나이대에 가장 훌륭한 배우"라고 말한 바 있다. 이렇게 배우로서 최고의 칭찬을 들은 이레는 이날 "감독님의 도움을 많이 받았고 주변 분들이 도와주셔서 인영이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칭찬해 주시는 말 안에서 감사함을 느끼고 있다"고 겸손한 면모를 드러냈다.
준비 기간부터 '인영이가 어쩌면 김혜영 감독님과 닮아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는 이레는 김 감독의 말투와 행동에서 힌트를 얻으면서 캐릭터를 구축해 나갔다고. 그러면서도 당시 드라마 '안녕? 나야!' 촬영과 병행하면서 연기와 춤 모두 준비해야 했던 만큼, 체력적 한계에 부딪히기도 했다는 그는 "감독님의 배려 덕분에 틈틈이 연습할 수 있었다. 인영이는 춤을 완벽하게 추기 보다는 춤을 사랑하는 인물이라서 기교보다는 행복한 표정을 짓는데 집중했다"고 연기 중점을 둔 부분을 밝혔다.
이를 연기하면서 자신에게도 변화가 생겼다는 이레는 "현장에 있을 때 제가 이 자리에 있다는 걸 증명하고 저에게 주어진 몫을 다 해내야된다는 큰 욕심이 있었고 불안함도 있었다"며 "춤추는 걸 좋아하는 인영이는 웃음으로 세상을 맞서는 느낌이었다. 저도 웃음이 많은 편이었는데 촬영하고 나서 인영이처럼 '아님 말고'라는 가벼운 생각을 할 수 있게 됐고 유해지는 시기가 왔다. 또 더 밝아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고 캐릭터를 향해 각별한 애정을 내비쳤다.
또한 이레는 개봉할 즈음이 되자 주연 배우의 책임감을 몸소 느끼고 있다고 솔직하게 털어놨다. 좋은 글을 자신만의 호흡으로 가져갈 수 있다는 것이 마냥 신났다는 그는 "점점 시간이 지나고 영화가 개봉할 때가 되니까 마냥 신나는 일이 아니라 책임감이 따르는 것 같다. 제 호흡으로 가져갔지만 더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받을 수 있을 것인가에 관한 고민이 든다. 새로운 감정을 많이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주인공으로서 극을 안정적으로 이끌어간 이레는 진서연과는 극과 극 성격을 지닌 사제 '케미'를, 이정하와는 사랑과 우정 그 어딘가에 있는 남사친(남자사람친구)·여사친(여자사람친구) 사이를, 괴짜 약사로 변신한 손석구와는 속마음을 솔직하게 터놓을 수 있는 동네 친구 같은 '케미'를 형성하며 대체 불가한 활약을 펼쳤다.
"진서연 배우님은 촬영 현장에서는 잘 못 느꼈었는데 홍보 일정이나 영화제를 함께 하면서 '이렇게 밝고 에너지와 사랑이 넘치는 분이구나'라는 걸 느꼈어요. 또 말씀은 캐릭터에 몰입해서 따뜻하게 다가가려고 하지 않으셨다고 하지만 애정을 느꼈고 챙김을 받았어요. 제가 어렸을 때부터 일을 하다 보니까 형식적이고 틀에 박힌 생각을 많이 하는데 만날 때마다 새로운 이야기를 많이 해주셔서 좋은 자극을 받고 있어요."
실제로 8살 차이가 나지만 친구처럼 편하게 호흡을 맞췄던 이정하에 관해서는 "촬영 전에 배우끼리 그룹으로 미팅을 진행했는데 그때 리딩하면서 인영과 도윤(이정하 분)이 아닌, 이레와 정하가 먼저 만난 것 같았다. 감독님이 이런 자리를 만들어주신 덕분에 저희가 '케미'를 만들어가야 할 필요성을 못 느꼈다"며 "우리 하던 대로 하자는 느낌이 강했다. 오빠도 낯을 가리는데 먼저 밝게 다가와 주셔서 빠르게 호흡이 트일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
이어 특별 출연으로 작품에 힘을 보탠 손석구도 잊지 않고 언급한 이레는 "원래 촬영이 이틀분이었는데 약국 유리창이 깨져서 그날 촬영을 취소하고 하루 만에 다 촬영해야되는 상황이 됐다. 제가 낯을 많이 가리는 편인데 손석구 배우님이 작품 외적인 이야기도 많이 꺼내면서 리드해주셨다"며 "드라마 촬영과 겹쳐서 신체적으로 많이 힘들었는데 밝게 잘 띄워주셔서 웃음기를 머금고 촬영했던 기억이 있다"고 덧붙였다.
2006년생인 이레는 어린이 모델로 활동하다가 2012년 드라마 '굿바이 마눌'의 민서 역을, '오자룡이 간다'의 별 역을 맡게 되면서 배우로서의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그는 영화 '소원'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 '오빠생각' '7년의 밤' '증인' '걸캅스' '반도' '사흘', 드라마 '육룡이 나르샤' '마녀의 법정'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 '스타트업' '안녕? 나야!' '무인도의 디바', 넷플릭스 '지옥' 시리즈 등 스크린과 브라운관 그리고 OTT 플랫폼을 오가며 탄탄한 필모그래피를 구축했다.
배우로서 다양한 장르와 캐릭터를 소화하며 폭넓은 연기 스펙트럼을 입증하고, 대중에게 자신의 존재감을 확실히 각인시킨 이레는 2023년 중앙대학교 연극영화과에 특별 전형으로 조기입학하며 학업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그리고 마침내 성인이 된 그는 "제가 학교에 일찍 들어갔기 때문에 뭐든지 턱걸이로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해가 지났을 뿐인데도 불구하고 마음의 여유가 생기는 기분"이라고 환하게 웃어 보였다.
일찍 배우의 길을 걷게 된 만큼 '아역'이라는 수식어를 떼야 한다는 고민을 늘 갖고 있었던 이레는 "어렸을 때부터 연기를 시작했으니까 넘어야 할 큰 허들이 있다고 생각했고 이제 그 지점이 다가온 것 같다"면서도 "하지만 이건 제가 아닌 대중에게 달린 거라고 생각해서 자연스럽게 흘러가도록 두고 싶은 마음이 크다"고 어른스러운 면모를 보여줬다.
오랫동안 기다려왔던 성인이 된 만큼, 배우이자 한 사람으로서 자신이 보여줄 폭이 넓어질 것에 관한 막연한 기대감이 클 줄 알았지만 이레는 달랐다. 배우로서의 그는 "사실 그런 건 크게 없다. 다만 주어지는 것들에 얼마나 몰두할 수 있는지를 더 고민하고 있다"며 "저는 혼자 있으면 힘을 못 낸다. 부스터 같은 사람이라서 주변 분들에게 기대서 흡수하는 것에 특화돼 있다. 그래서 주변 분들이 '너의 의견은 뭐야? 감정은 어때?'라고 물어보면서 저를 자유롭게 해주려고 한다. 이게 제 약점이자 강점이라 이를 중화시키는 게 제가 가고 싶은 길"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저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연습을 하고 있어요. 또 연기를 잘하는 것뿐만 아니라 제가 어떤 사람이 돼서 뿌리를 내려야 하는지가 중요한 것 같아요. 이제는 제가 선택하고 책임져야 하는 길에 접어든 만큼, 후회하는 선택을 하고 싶지 않고 최선을 다하는 저만의 방법이 있어야 된다고 생각해요. 더 올곧은 방법으로 사람과 소통하는 부분도 고민하고 있고요."
연기를 시작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변하지 않는 건 자신의 직업을 향한 진심과 애정이다. 이레는 "제가 영화나 드라마를 보는 이유가 저도 모르게 고민을 잊고 공감하고 위로받고 허심탄회해지는 순간들이 있는, 다른 세상에 들어온 것 같아서였다. 다른 사람들의 안식처이자 쉴 공간이 되는 배우가 되고 싶다"며 "공감받을 수 있고 재미를 줄 수 있는, 그런 쪽으로 방향성을 잡고 싶다. 배우라기 보다 좋은 사람이 되는, 너무 딱딱해지지 않는 선에서 기준을 잘 만들고 싶다"고 앞으로 가고자 하는 길을 강조했다.
끝으로 이레는 "저희 작품에는 악인이 없어서 보시는 분들의 피로감이 덜할 것이라는 확신이 있다. 되게 많은 캐릭터가 나오는데 개개인이 공감할 수 있는 인물들이 분명히 있을 것"이라며 "또 티키타카를 살리려고 노력한 만큼 이에 따른 재미도 있고, 한국 무용을 다루기 때문에 새로운 장면들을 많이 보실 수 있을 것"이라고 작품의 여러 매력 포인트를 자신하며 많은 관람을 독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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