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박지윤 기자] '기생충'으로 한국 영화의 위상을 드높였던 봉준호 감독이 6년 만에 돌아왔다. 전 세계의 관심 속에서 베일을 벗게 된 '미키 17'은 SF라는 외피를 쓴 채 인간 이야기를 펼쳐내는, 거대한 스케일의 볼거리와 직관적인 메시지로 극강의 영화적 체험을 선사하는 걸작의 탄생을 알렸다.
오는 28일 국내에서 개봉하는 '미키 17'(감독 봉준호)은 위험한 일에 투입되는 익스펜더블(소모품)로, 죽으면 다시 프린트되는 미키가 17번째 죽음의 위기를 겪던 중 그가 죽은 줄 알고 '미키 18'이 프린트되면서 벌어지는 예측불허의 이야기를 그린다. 2022년 발간된 에드워드 애시튼 작가의 SF 소설 '미키 7'을 원작으로 한다.
작품은 2054년 근미래를 배경으로 한다. 과거 친구 티모(스티븐 연 분)와 마카롱 가게를 차린 미키(로버트 패틴슨 분)는 사업 실패로 거액의 빚을 지며 사채업자의 손에 죽을 위기에 처한다. 목숨을 지키기 위해 지구를 떠나기로 결심한 미키는 수많은 추종자를 거느리고 있는 사령관 케네스 마셜(마크 러팔로 분)이 추진하는 얼음 행성 '니플하임' 개척단에 지원한다. 이렇다 할 능력이 없는 미키는 경쟁자가 없는 익스펜더블을 택하고, 끊임없는 죽음을 마주하는 극한 노동 환경에 놓인다.
익스펜더블이 된 미키는 목숨을 걸고 위험한 일을 도맡아 하지만, 죽으면 곧바로 새로 출력되기 때문에 모두가 그의 죽음을 당연하게 여긴다. 그렇게 미키는 얼음 행성으로 향하는 비행 도중 우주 공간에서 팔이 잘리는가 하면, 인류의 정착을 위해 맨몸으로 유독 가스에 노출되고 테스트 목적으로 개발 중인 신약 주사를 맞는 등 끝도 없는 고난을 마주한다.
죽음과 삶의 사이클을 반복하면서 모든 신체 정보와 기억을 저장한 채 17번째로 프린트된 게 바로 '미키 17'이다. 탐사 업무 도중 얼음 구덩이에 빠진 그는 얼음 행성의 생명체인 크리퍼를 만나 죽을 준비를 하지만, 크리퍼들은 힘을 합쳐 미키 17을 구해준다.
그렇게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 돌아온 그는 자신이 죽은 줄 알고 프린트된 미키 18과 마주하게 된다. 하지만 문제는 익스펜더블은 행성 단 한 명만 존재해야 하는 것. 의도치 않게 이 법칙을 어기고 '멀티플' 상황에 놓인 두 미키는 흥미로우면서도 위험한 공존을 시작한다. 그러면서 삶과 죽음을 반복하면서 단조롭게 흘러갔던 미키의 일상에 균열이 생기고,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확장된다.
거대한 스케일의 SF와 죽는 게 업무인 익스펜더블이라는 소재 안에 극한의 처지에 있는 노동자 계층의 시선에서 바라보는 계급 문제와 환경 문제를 향한 날카로운 시선, 정치 풍자 그리고 로맨스 등을 녹여내면서 인간 냄새가 물씬 나는 새로운 느낌의 SF 영화를 완성한 봉준호 감독이다.
특히 그는 원작보다 미키를 10번이나 더 죽이는 설정과 "죽는 건 어떤 기분이야?" "잘 죽고 내일 봐" 등과 같은 말을 아무렇지 않게 내뱉는 주변 인물들을 통해 인간을 소모품처럼 아무런 죄책감도 없이 교체하는 비인간적인 자본주의를 꼬집는다.
배우들의 활약도 빼놓을 수 없다. 사실상 1인 2역을 소화한 로버트 패틴슨의 열연은 그야말로 압도적이다. 직업이라는 이유로 죽음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며 어수룩하고 모든 것에 미안해하는 미키 17과 저돌적이고 어디로 튈지 모르는 돌연변이 같은 미키 18을 표정만으로 구분할 수 있을 정도로 차이를 두면서도, 과장되지 않게 표현해낸다.
그동안 영화 '트와일라잇' '더 배트맨' 등 멋진 캐릭터를 연기한 로버트 패틴슨이 익숙한 관객들이라면 그가 이렇게나 연기를 잘하는 매력적인 배우였다는 것을 새롭게 깨닫는 작품이 될 듯하다.
나오미 애키는 미키의 여자친구 나샤로, 스티븐 연은 미키의 친구 티모로 분해 작품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케네스 마셜을 연기한 마크 러팔로는 첫 악역에 도전해 위협적이면서도 우스꽝스러운 새로운 유형의 독재자를 탄생시키며 막강한 존재감을 발산한다.
장르는 SF지만 폐쇄된 공간에서 극명하게 나뉘는 계급 사회를 바라보는 날카로운 시선부터 얼음 행성의 생명체와 공존하는 이야기까지, '설국열차'와 '옥자' 등 봉준호 감독의 전작들을 떠올리게 하는 지점들이 존재한다. 그러면서도 최초로 로맨스가 등장하고 꽉 닫힌 해피엔딩으로 끝맺음이 돼 한층 더 확장된 봉준호 감독의 세계관을 즐길 수 있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감과 동시에 잔상에 남고 곱씹게 되는 장면들이 존재하지만, 숫자를 버리고 자신의 진짜 이름을 되찾는 주인공의 성장스토리는 보는 이들에게 희망을 선사한다. 기존 봉 감독의 영화를 좋아했던 관객들이라면 이러한 결말이 다소 아쉽게 다가올 수도 있다.
앞서 '미키 17'은 제75회 베를린국제영화제 비경쟁 부문 베를리날레 스페셜 갈라에 초청돼 월드 프리미어 시사회를 통해 첫선을 보였다. "영어로 만든 봉준호 최고의 작품"이라는 극찬과 "가장 실망스러운 영화"라는 혹평이 공존하는 가운데, 국내 관객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지 관심이 모아진다. 15세 이상 관람가이며 러닝타임은 137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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