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박지윤 기자] 전 세계적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던 '말할 수 없는 비밀'이 한국판으로 재탄생해 국내 관객들과 만나고 있다. 여기에는 또 다른 느낌의 영화를 만들 수 있겠다는 부담감과 자신감이 공존하며 리메이크에 뛰어들 결심을 내린 배우 원진아의 이유 모를 용감함이 가득 담겨 있다.
원진아는 지난달 27일 스크린에 걸린 '말할 수 없는 비밀'(감독 서유민)로 관객들과 만나고 있다. 개봉을 앞둔 22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 있는 카페에서 <더팩트>와 인터뷰를 진행한 그는 "언론시사회 때 처음 봤는데 주변 분위기를 살피다 보니 눈에 잘 안 들어왔다. 한 번 더 봐야될 것 같다"면서도 "촬영할 때의 상황들과 분위기가 생각나더라. 좋게 봤다"고 말문을 열며 다양한 이야기를 꺼냈다.
2008년 국내 개봉한 동명의 대만 영화를 원작으로 하는 '말할 수 없는 비밀'은 숨겨진 캠퍼스 연습실에서 유준(도경수 분)과 정아(원진아 분)가 우연히 마주치면서 시작되는, 기적 같은 마법의 순간을 담은 판타지 로맨스를 그린 작품이다.
많은 사랑을 받은 원작이 있는 만큼, 다른 작품과 또 다른 부담감과 책임감이 따랐을 것으로 짐작됐다. 이를 누구보다 예상했을 원진아가 그럼에도 작품을 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해피 뉴 이어'(2021)를 함께했던 제작사의 대표로부터 출연 제안을 받았다는 그는 "저도 원작 팬이라 걱정했는데 감독님이 차이를 두고 각색할 거라는 믿음이 있었고 상대 배우가 도경수라는 걸 듣고 원작과 이미지가 달라서 또 다른 영화가 나올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고 답했다.
원진아는 말할 수 없는 비밀을 간직한 음대생 정아로 분해 극의 한 축을 담당했다. 원작의 팬이지만, 무의식적으로도 기억을 따라가는 것을 막기 위해 촬영하면서 일부러 원작을 더 멀리했다는 그는 "미묘하게 원작과 차별을 두고 대본을 바꾸면서 촬영하는데 원작을 보면 혼란이 왔을 것 같았다"며 "이미 있던 작품을 저만의 것으로 창조하려고 했다. 하나의 정답을 놓고 갈 수 있기 때문에 기억도 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고 힘주어 말했다.
"저는 오히려 똑같이 만드는 걸 더 걱정했을 것 같아요. 감독과 배우는 창작자인데 원래 있는 걸 그대로 가져다 옮길 거면 '우리는 어떤 창작을 해야되지?'라는 고민을 더 했을 것 같고요. 분명히 가고자 하는 방향이 정확하게 있어서 오히려 더 즐거운 마음으로 하겠다고 했죠. 도경수의 출연 소식을 듣고 되게 새로울 것 같았고, 정아도 내가 다르게 표현하면 되는 거 아닌가라는 이유 모를 용감함이 생겼어요."
그러면서 원진아는 피아노 연주와 음악에 집중한 원작과 차별화된 한국판 '말할 수 없는 비밀'의 매력을 자신했다. 20대 풋풋한 청춘 남녀가 사랑을 느끼는 감정에 더 초점을 맞췄다는 그는 "캐릭터들의 성격도 지금 시대에 맞게 솔직하게 바뀐 부분들이 있다. 음악도 '고양이 춤' 등 한국에서 공감할 수 있을 만한 곡들로 채워졌다"고 강조했다.
극 중 정아는 유준과 사랑에 빠지며 밝고 행복한 모습을 보여주다가도 그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비밀을 간직한 채 유준에게 더 이상 다가가지 못해 보는 이들의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이를 연기한 원진아는 주체적이고 적극적으로 변주하면서 통통 튀는 발랄한 매력과 함께 인물의 양가적인 감정을 탁월하게 풀어내며 원작과 또 다른 매력의 여주인공을 탄생시켰다.
"정아는 본인이 살고 있는 시대에서는 처음 보는 남자한테 귓속말하는 등의 행동을 하지 못했을 거예요. 저희도 해외여행을 가면 또 다른 나의 자아를 꺼내면서 현실에서 잘 못하는 행동을 하잖아요. 새로움에서 오는 용감함으로 솔직히 표현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나중에 이루어질 수 없는 상황을 마주했을 때 즐거움만 생각했던 솔직한 감정들 때문에 더 많이 아파하는 감정 변화를 신경 쓰면서 연기했어요."
원진아는 시간을 오가면서 변화하는 인물의 감정에 집중하면서 외적 비주얼도 신경 썼다. 특히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걸 아무도 눈치채지 못할 정도의 스타일링을 위해 적극적으로 의견을 냈다는 그는 "촌스럽지 않은 단발머리를 하고 로퍼 셔츠 니트 등 단정하게 입었다. 메이크업도 시대가 잘 보여서 최소화했다"며 "정아는 엄마랑 둘이 산다. 그 시대의 음악과면 돈이 많이 들었을 텐데, 어려운 집안에서 태어나 음대를 다니는 아이라면 화려한 건 사치라고 느꼈을 것 같다. 수수한 느낌을 살리면서 큰 힌트를 주지 않으려 했다"고 설명했다.
무엇보다 원진아가 이번 작품을 하면서 가장 많은 시간을 쏟은 건 바로 피아노 연습이었다. 출연을 결심하자마자 피아노를 대여하고 레슨을 시작했다는 그는 "눈 뜨면 피아노를 치고 어디 가다가도 피아노가 보이면 앉아서 쳐봤다. 정아가 전공생이니까 피아노 앞에 앉아 있는 게 어색해 보이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완벽한 연주는 어렵지만 가까워지려고 노력했다"며 "복기해보니까 아침저녁으로 3시간씩 연습했더라. 지방 촬영 때는 숙소에 피아노 건반을 넣어주셨다. 촬영 끝나는 날 바로 '피아노 가져가세요'라고 말한 기억이 있다"고 웃어 보였다.
그렇다면 도경수와의 로맨스 호흡은 어땠을까. 대본 관련된 것뿐만 아니라 일상 이야기도 많이 나눴다는 원진아는 "선배고 워낙 활동을 오래 했기 때문에 벽이 느껴질까 봐 걱정했는데 마음이 열려있는 친구였고 주변 사람들에게 예의 바르고 되게 솔직하더라. 어색함이 금방 풀렸다"며 "평소에도 눈빛이 강렬하다. 동그란 눈과 솔직한 표정으로 사람을 바라봐서 촬영에 들어가서도 설레고 즐기면서 연기했다"고 환하게 웃어 보였다.
그동안 배우로서 여러 멜로를 선보였지만, '말할 수 없는 비밀'은 또 다른 느낌이라서 대리만족을 할 수 있었다고.
"그동안 제 나이대에 할 수 있는, 현실과 가까운 연애 감정을 느끼는 멜로였다면 이번에는 저에게도 판타지였어요. 스무 살에 느꼈던 감정을 기억하고 또 경험하지 못했던 부분을 상상하면서 만드는 순수한 멜로는 처음이어서 같이 도전하는 마음이었죠. 풋풋함이 묻어 나올지 걱정도 됐어요. 사실 저는 겁이 많고 좋아도 티를 못 내고 부끄러워하는 성격인데 정아를 만나 애정 표현을 솔직하게 하면서 만족하면서 연기했어요."
2015년 영화 '캐치볼'로 데뷔한 원진아는 영화 '강철비' '돈' '롱 리브 더 킹: 목포 영웅', 드라마 '그냥 사랑하는 사이' '라이프' '날 녹여주오' '선배, 그 립스틱 바르지 마요', 넷플릭스 '지옥', 쿠팡플레이 '유니콘' 등 스크린과 브라운관 그리고 OTT 플랫폼까지 오가며 탄탄한 필모그래피를 구축했다. 또한 그는 연극 '파우스트'를 통해 무대에서도 성공적인 활약을 펼치며 활동 스펙트럼을 넓혔다.
데뷔 이후 다양한 장르와 캐릭터를 소화하며 끊임없이 변주하고 있는 원진아는 "오히려 역할이 바뀌지 않으면 두려울 것 같다. 다양한 연기를 할 수 없다는 게 자괴감이 들고 이 일을 사랑할 수 없을 것 같다. 다른 역할을 할 때 두려움보다 신나고, 제가 어떤 얼굴을 꺼낼지 기대감이 생겨서 늘 전작과 다른 걸 하려고 한다"고 자신만의 소신을 밝혔다.
"10년이 됐다는 걸 오늘 인터뷰를 하면서 알게 됐어요. 체감상 약 4~5년 지난 것 같아요. 이제 좀 알 것 같으면서도 헤매고 있는 단계죠. 이제 막 정규직이 된 기분이에요. 솔직히 말하면 요즘 제작되는 작품의 수가 많이 줄고 있어서 마냥 좋은 상황은 아닌데 제가 운이 좋은 것 같아요. 다른 걸 해보고 싶을 때 운명처럼 만나게 되더라고요. 무언가가 또 운명처럼 찾아와주지 않을까 싶어요. 해보지 않았던 거라고 겁내기보다 다시 없을 기회라고 생각하고 하는 편이에요."
이렇게 '말할 수 없는 비밀'과 관련된 이야기부터 어느덧 10년 차가 된 배우로서의 소회도 밝힌 원진아는 이번 작품을 통해 얻은 것을 전하면서 많은 관람을 독려했다.
"모든 경험이 저에게 플러스로 남겠지만 조금 더 어렸을 때 할 수 있는 풋풋한 연애를 남겼다는 게 장점인 것 같아요. 또 스스로 선택하지 않았을 연주를 배워볼 수 있는 기회도 얻었고요. 작품을 하면서 행복을 느꼈어요. 요즘에 사건사고가 많고 자극적인 장르들로 도파민을 느꼈다면 저희 작품과 함께 한 템포 쉬어가면서 가족들과 함께 잔잔하게 입에 미소를 머금고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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