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강일홍 기자] "나훈아 형님의 살아온 이력과 철학을 존중합니다. 아마도 두 번 다시 돌아오시지 않을 겁니다. 식언을 밥먹듯이 하는 정치인들과 다르죠. 눈물이 나지만 한번 뱉은 말은 절대 번복하지 않는다는 걸 너무나 잘 알기에 투정을 부릴 수가 없어요. 무대에서는 떠날지언정 늘 건강한 모습으로 노래와 함께 우리들 가슴에 영원히 남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가수 나훈아 팬들의 믿음은 굳건했다. 라스트 콘서트 현장에서 만난 팬들은 안타까움에 착찹한 심정을 내비쳤지만 그의 굳은 은퇴 의지를 번복하지 않는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경기 시흥에서 아내와 함께 공연장을 찾은 한 남성 팬은 "50년간 팬이었다, 마지막 무대를 지켜보고 싶어 작년 4월 인천에서 가진 첫 번째 고별콘서트에 이어 만사를 제쳐두고 달려왔다"고 말했다.
가수 나훈아가 '가황'으로 살아온 58년 가요인생을 마무리하고 자연인으로 돌아갔다. 나훈아는 지난 12일 저녁 서울 송파구 방이동 케이스포돔에서 가진 자신의 마지막 '라스트콘서트'를 끝으로 공식 은퇴했다. '박수칠 때 떠난다'는 스스로 정한 원칙과 규칙에 따라 그는 수많은 팬들의 아쉬움과 허탈함에도 단호히 '마지막 약속'을 이행했다.
◆ 2500년 전 사람 소크라테스한테 묻는 발상, 기발하다 못해 감탄
나훈아의 은퇴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다. 그가 70대 후반의 나이지만 꾸준한 운동을 통한 왕성한 체력으로 왕성한 음악활동을 해왔고, 여전히 대를 이어 내려오는 두터운 팬층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알고 보면 이런 과감한 결행은 나훈아이기에 가능하다는 말로도 설명할 수 있다. 최고 정점에 선 '가황'답게 조금이라도 명성을 훼손하고 싶지 않은 자존심이 이런 통큰 결단을 내렸다고 할 수 있다.
'긴가민가하면서 조마조마하면서 설마설마하면서 부대끼며 살아온 이 세상을 믿었다. 후회 역시도 없다. 훈아답게 살다가 훈아답게 갈 거다.'
나훈아는 자신의 노래 '사내'의 가사에 본인 이름을 넣어 개사곡으로 불렀다. 매 콘서트 때마다 다양한 퍼포먼스로 관객의 마음을 흔들어 놓기로 정평이 나 있지만, 그는 이 곡을 마지막으로 어디선가 날아온 드론에 마이크를 실어 떠나보냈고, 상징적으로 이제 마이크가 없어 노래를 더 부르고 싶어도 할 수가 없다. 과연 '훈아답게 살다가 훈아답게' 무대를 떠난 셈이다.
그는 대중스타로서 대중의 아픈 데 가려운 데를 보듬고 긁어주는 해학가였고 위정자들에게 따끔한 일침을 놓을 만큼 배짱도 두둑하다. 대중 인기에 영합하지 않고 흔들림없이 살아온 이력 만큼이나 세상을 바라보는 접근법도 달랐다. 그의 노래 '테스형'에서 보듯 "이 놈의 세상이 도대체 왜 이러느냐"고 2500년 전 사람인 소크라테스한테 묻는 발상은 기발하다 못해 감탄이 절로 난다.
◆ "마이크를 놓는다는 이 결심이 지금까지 살면서 가장 잘한 결심"
"나는 대중예술가다. 나는 내 공연을 보기 위해 표를 산 대중 앞에서만 공연하겠다. 내 노래를 듣고 싶으면, 표를 끊어라." "꿈을 찾아, 전 세계 오지를 돌아다녔다. 저의 꿈과 영혼을 되찾는데 11년이 걸렸다." "국민 때문에 목숨을 걸었다는 왕이나 대통령은 단 한 사람도 본 적이 없다." "왼쪽이 오른쪽 보고 잘못했다고 생난리, 니는 잘했나."
그는 사안이 있을 때 마다 바른소리 쓴소리를 해왔고, 대중은 그의 거침없는 '사이다 발언'에 대체로 공감했다. 그는 수많은 어록을 남겼고, 그 말 속에서 그가 살아온 이력과 인생관을 찾아볼 수 있다. 나훈아가 이번 라스트 무대를 진행하면서 느꼈을 소회는 필설로 다할 수 없었을 것이다. 다만 은퇴를 결심할 때부터 한결같았을 그 마음은 마지막 언급으로 짐작을 할 뿐이다.
나훈아는 지금껏 단 한 번도 자신이 내뱉은 말을 번복한 일이 없다. 사소한 약속, 설령 실언을 했더라도 대중과의 약속은 반드시 지키는 걸 원칙으로 살아온 가수다.
"저는 구름 위를 걸으며 살았습니다. 별, 스타니까, 그게 좋을 것 같아 보여도 저도 사람이라 사는 게 별로 쉽지 않았습니다. 이제 땅에서 걸으며 살려고 합니다. 마이크를 놓는다는 이 결심이 지금까지 살면서 가장 잘한 결심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 그동안 고마웠고, 진심으로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