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리뷰] 연극 '타인의 삶', 스크린과는 또 다른 여운
  • 박지윤 기자
  • 입력: 2025.01.17 00:00 / 수정: 2025.01.17 00:00
이동휘·김준한, 데뷔 첫 연극 도전 성공적
1월 19일까지 LG아트센터 서울에서 공연
타인의 삶은 베를린 장벽 붕괴 전 동독에서 벌어진 예술가들에 대한 정부의 감청과 감시를 소재로 한 작품이다. /프로젝트그룹일다
'타인의 삶'은 베를린 장벽 붕괴 전 동독에서 벌어진 예술가들에 대한 정부의 감청과 감시를 소재로 한 작품이다. /프로젝트그룹일다

[더팩트|박지윤 기자] 많은 관객에게 사랑을 받은 영화가 연극으로 재탄생했다. 원작에 담긴 묵직한 메시지는 고스란히 담으면서 한계로 작용할 것 같았던 무대를 영리하게 활용하고, 배우들의 호흡과 감정을 더 가까이 전달하면서 말이다. 그렇게 스크린과는 또 다른 여운과 감상을 안겨주고 있는 '타인의 삶'이다.

'타인의 삶'은 도너스마르크 감독의 동명 영화를 손상규 연출이 연극 버전으로 직접 각색한 작품이다. 베를린 장벽 붕괴 전 동독에서 벌어진 예술가들에 대한 정부의 감청과 감시를 소재로, 비밀경찰 비즐러가 동독 최고의 극작가 드라이만과 인기 배우 크리스타 커플을 감시하게 되면서 겪는 심리 변화를 다룬다.

작품은 독일을 동독과 서독으로 분단시킨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기 5년 전, 국가에 대한 깊은 신념과 충성심을 가진 탁월한 심문관이자 동독 비밀경찰 게르트 비즐러(윤나무·이동휘 분)가 한 남자를 잠도 재우지 않고 고문하면서 집요하게 자백을 받아내는 모습으로 시작한다.

일상에서도 국가의 신념과 사회주의를 실천하는 냉철하고도 고독한 인물인 비즐러는 극작가 게오르그 드라이만(정승길·김준한 분)과 그의 연인인 배우 크리스타-마리아 질란트(최희서 분)를 도청 및 감시하는 임무를 맡게 된다. 그렇게 드라이만의 집에 도청기를 설치한 비즐러는 두 사람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기 시작한다.

이동휘(위쪽 사진의 두 번째)는 동독의 비밀경찰 게르트 비즐러 역을, 김준한(위쪽 사진의 네 번째)은 동독 최고의 극작가 게오르그 드라이만 역을 맡아 데뷔 첫 연극 무대에 도전했다. /프로젝트그룹일다
이동휘(위쪽 사진의 두 번째)는 동독의 비밀경찰 게르트 비즐러 역을, 김준한(위쪽 사진의 네 번째)은 동독 최고의 극작가 게오르그 드라이만 역을 맡아 데뷔 첫 연극 무대에 도전했다. /프로젝트그룹일다

동독의 주류 예술가인 드라이만과 크리스타는 그들의 체제에 핏발선 저항도 무력한 순응도 하지 않으며 자신들의 무대가 지속되기를 바란다. 하지만 두 사람에게도 선택의 순간이 찾아온다. 그리고 예술을 향한 드라이만과 크리스타의 순수한 사랑과 열정은 비즐러의 내면에 균열을 가져오는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사회주의에 대한 견고한 믿음을 가진 비즐러는 드라이만과 크리스타에 대한 감시가 진행될수록 자신의 신념과 실제의 괴리를 갖게 되고, 피감시인의 삶에 동화되면서 급기야 자기가 충성을 바쳤던 조직에 반하는 선택을 한다.

영화 '타인의 삶'은 2007년 미국 아카데미와 2008년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외국어영화상을 받았고, 이 외에도 런던 비평가 협회상과 유럽영화상 등 발표 당시 각국의 영화상을 휩쓸었다. 독일 영화로서는 이례적으로 국내에서도 영화 팬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다.

이렇게 영화의 전개를 대부분 따르는 연극은 타인의 삶을 주의 깊게 들여다보는 비즐러의 변화에 집중해 타인에 대한 연민으로 향하는 인간의 자연스러운 본성을 주목한다. 또 시대 앞에 놓인 인물들 각자의 결단을 통해 인간의 선한 의지는 어디에서 오는지를 들여다본다.

배우들은 공연이 시작되기 직전 무대의 양 끝에 놓인 의자에 앉아 각자의 방식대로 캐릭터와 극에 몰입하는 시간을 보내 시선을 사로잡는다. 또 한정된 무대에서 최소한의 소품으로만 변화를 꾀하며 비즐러의 도청실과 드라이만의 집, 극장 등 다양한 장소를 구현해 내는 연극 무대 연출은 흥미를 안긴다.

특히 비즐러의 도청실과 드라이만의 집이 하나의 무대 위에 올려지면서 드라이만과 크리스타의 삶에 동화될 수밖에 없는 비즐러의 심리 변화가 더욱 이해된다. 여기에 천장에서 떨어지는 도청 장치 등 무대의 한계를 극복한 연출도 깊은 인상을 남긴다.

타인의 삶은 2025년 1월 19일까지 LG아트센터 서울, U+ 스테이지에서 공연된다. /프로젝트그룹일다
'타인의 삶'은 2025년 1월 19일까지 LG아트센터 서울, U+ 스테이지에서 공연된다. /프로젝트그룹일다

동독의 비밀경찰 게르트 비즐러 역을 맡은 이동휘와 동독 최고의 극작가 게오르그 드라이만으로 분한 김준한의 열연도 빼놓을 수 없다. 두 사람은 데뷔 첫 연극 무대에 도전해 열연을 펼치며 극을 안정적으로 이끈다.

그동안 주로 코믹 연기에서 두각을 드러냈던 이동휘는 정확한 딕션으로 무대의 막이 오름과 동시에 관객들을 압도한다. 이후 그는 피감시인에게 동화되는 인물의 감정 변화를 설득력 있게 그려내고, 드라이만이 비즐러에게 보내는 빨간 표지의 책을 발견하자 감정을 가감 없이 분출하며 지금껏 본 적 없는 새로운 얼굴을 꺼낸다.

무대가 끝나도 쉽게 눈물을 멈추지 못하고 감정을 추스르지 못하는 이동휘의 얼굴은 잔상처럼 남는다. 김준한은 과하지 않으면서도 관객들의 감정을 깊게 파고드는 연기를 보여준다.

여기에 최희서는 동독 최고의 배우 크리스타-마리아 질란트로, 김정호는 동독의 예술가들을 압박하는 브루노 햄프 장관으로, 박성민은 비즐러의 동료 그루비츠로 분해 극의 몰입도를 한껏 끌어올린다. 특히 1인 다역을 소화한 김정호와 박성민은 다른 외투를 걸침과 동시에 다른 배역에 이입하며 이질감 없이 작품에 녹아든다.

'타인의 삶'은 인터미션없이 110분 진행되며 1월 19일까지 LG아트센터 서울, U+ 스테이지에서 공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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