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승'에서 배구 선수 출신 감독 김우진 役
"숨겨져 있던 자신감을 건진다면 그것만으로 가치 있어"
배우 송강호가 영화 '1승' 개봉을 기념해 인터뷰를 진행했다. /㈜키다리스튜디오 |
[더팩트|박지윤 기자] '국민 배우' 송강호가 이번에는 백전백패 배구 감독으로 돌아와 각자의 아픔을 갖고 있는 선수들과 우승이 아닌 단 '1승'을 거두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칸과 아카데미를 모두 사로잡았지만 최근 몇 년간 국내 극장가에서 다소 저조한 성적을 거둔 그가 관객들의 삶을 응원하고 용기를 불어넣으면서 배우로서도 웃을 수 있을지 이목이 집중된다.
송강호는 4일 스크린에 걸린 영화 '1승'(감독 신연식)에서 손 대면 망하는 백전백패 배구 감독 김우진 역을 맡아 관객들과 만나고 있다. 개봉을 앞둔 지난 2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 있는 카페에서 <더팩트>와 인터뷰를 진행한 그는 작품과 관련된 다양한 이야기를 전했다.
작품은 이겨본 적 없는 감독과 이길 생각 없는 구단주 그리고 이기는 법을 모르는 선수들까지 승리의 가능성이 1도(하나도) 없는 프로 여자배구단이 1승을 위해 도전에 나서는 이야기를 그린다. 영화 '동주'로 유수의 시상식에서 각본상을 휩쓴 신연식 감독이 각본과 연출을 맡았다.
송강호는 손 대면 망하는 백전백패 배구 감독 김우진 역을 맡아 관객들과 만나고 있다. /㈜키다리스튜디오 |
먼저 송강호는 신 감독이 각본을 맡은 영화 '거미집'(감독 김지운)부터 디즈니+ '삼식이 삼촌'에 이어 '1승'까지 세 작품을 연달아 함께하고 있는 신연식 감독을 언급했다. 신 감독이 집필한 이준익 감독의 '동주'를 보고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는 그는 "윤동주 시인의 시는 알지만 그분이 어떻게 살아왔고 어떤 아픔의 시대를 거쳤는지 몰랐잖아요. 신연식 감독이 작가로서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신선하게 다가왔을 때 마침 연락이 왔어요"라고 회상했다.
그렇다면 실제로 만난 신연식 감독은 어땠을까. '심심한 사람'이라고 표현한 송강호는 "현장에서 차분하게 진두지휘해요. 선비 같은 사람이랄까요. 저보다 9살이 어린데 세상을 바라보는 철학을 들으면 놀라울 때가 있어요. 제가 나이가 더 많지만 신연식 감독이 더 선배 같을 때가 있죠"라고 설명했다.
극 중 김우진은 인생도 커리어도 백전백패인 배구 선수 출신 감독이다. 근근이 운영하던 어린이 배구 교실마저 폐업 수순을 밟고 있던 그는 한 시즌 통틀어 1승만 하면 된다는 구단주 강정원(박정민 분)의 제안을 덥석 물어 해체 직전의 프로 여자배구단 '핑크스톰'의 감독을 맡게 된다.
이를 연기한 송강호는 현실감을 자아내는 웃픈(웃긴데 슬픈) 면모부터 선수 개개인의 개성과 강점을 알아주고 도전하며 '핑크스톰'의 1승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까지 섬세하고 세밀하게 그려냈다.
그는 "김우진에 관한 숨겨진 이야기는 없었어요. 루저의 모습을 담다 보니까 김우진에게 그런 설정들이 주어진 것 같아요. 그리고 또 다른 아픔을 갖고 있는 선수들을 만나 좌충우돌하면서 한 팀이 되는 과정을 겪는 거죠. 김우진에게 선수들은 자기 자신이라서 더 동질감을 느끼죠. 자신을 야단치고 질책하면서 또 자신을 안을 수 밖에 없는 거죠"라고 바라봤다.
송강호(위쪽 사진의 오른쪽)는 "박정민은 타고난 재능도 있지만 스스로를 성장시키는 배우"라고 극찬했다. / ㈜키다리스튜디오 |
또한 송강호는 이번 작품을 통해 처음으로 연기 호흡을 맞춘 박정민을 향한 남다른 애정을 드러냈다. 앞서 박정민은 '1승' 기자간담회에서 참석해 송강호를 향한 무한한 존경심을 표했고, 이를 들은 송강호는 "보통 상대 배우를 위해서 그렇게 말하는 경우가 있는데 박정민은 진짜입니다"라고 강조해 웃음을 안긴 바 있다.
이날 송강호는 박정민의 데뷔작 '파수꾼'을 인상 깊게 봤다고 밝히며 "연기를 너무 잘하더라고요. 물론 타고난 재능도 있겠지만 제가 봤을 때 박정민은 스스로를 성장시키는 것 같아요. 자기 소양을 하나씩 만들어가는 배우라서 더 놀라워요. 세상을 바라보는 자기만의 철학을 자기가 만들어가는 거죠. 그래서 입체적이고 타고난 해석력이 나오는 것 같아요. 어떻게 저렇게 훌륭하게 연기를 하는지 지켜보면서 놀라웠어요"라고 덧붙였다.
뿐만 아니라 송강호는 김연경을 비롯해 전 국가대표 배구선수이자 현재 해설가로 활약 중인 한유미와 이숙자 해설위원, 1990년대 남자배구 전성기를 주도했던 김세진과 신진식 감독 등 작품에 힘을 보탠 배구계 레전드 인사들에 관한 이야기도 꺼냈다.
이들이 극 중 선수들로 등장하는 배우들에게 혹독한 훈련을 시켰기에 작품에 생생한 배구 경기가 담길 수 있었다는 그는 "이렇게 배구인들의 응원을 받은 만큼 폐를 끼치면 안 된다는 개인적인 부담감이 있었어요. 대중영화로서 사랑받으면서 배구가 재밌고 매력적인 스포츠라는 걸 알려주는, 배구 발전에 힘이 되는 작품이 됐으면 좋겠어요"라고 바람을 전했다.
송강호는 "자신의 숨겨져 있던 자신감을 건질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 가치가 있는 영화"라고 강조했다. /㈜키다리스튜디오 |
1990년 연극 '최선생'으로 데뷔한 송강호는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 '복수는 나의 것' '살인의 추억' '박쥐' '설국열차' '비상선언' '거미집' 등 꾸준한 작품활동을 통해 대중과 만났다. 특히 그는 '기생충' '택시운전사' '변호인' '괴물' 등 총 4편의 천만 영화를 보유하고 있고, '브로커'로 국내 최초 칸 국제영화제 남우주연상을 받으며 대체 불가한 기록을 세웠다.
이렇게 34년 동안 우직하게 연기의 길을 걸어온 송강호는 "어떤 목표를 갖고 작품을 선택하고 도전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난 꼭 이런 영화나 캐릭터를 해야지'라는 게 없었어요. 제일 금상첨화는 제 심장의 고동을 뛰게 하면서 굉장히 사랑받을 수 있는 작품을 선택하는 거죠. 하지만 세상일이 그렇게 쉽지 않잖아요. 그럼에도 둘 중 하나를 선택하자면 심장의 고동을 치는 그런 작품을 택했던 것 같아요"라고 되돌아봤다. 이어 "'1승'은 심장의 고동을 쳤다"고 덧붙여 웃음을 안겼다.
그러면서 할리우드 진출에 관한 솔직한 생각도 꺼내 이목을 집중시켰다. 그는 "특별출연 등 한국어로 연기할 수 있다면 마다할 이유가 없지만 다른 나라의 언어를 사용하면서 연기할 능력이 안될 뿐더러 관심도 없어요"라고 말을 이어갔다.
"배우나 예술가들에게 '진출'은 어울리지 않는 수식어에요. 예전에 어떤 기자가 양조위 배우에게 '드디어 할리우드에 진출했다'고 했는데 '연이 이제 닿은 것'이라고 말했어요. 저도 연이 닿고 능력이 된다면 얼마든 지죠. 물론 할리우드 영화나 해외 영화 모두 굉장히 존경스럽고 존중해요."
끝으로 송강호는 '소방관' '대가족' '하얼빈' 등 다양한 한국 영화가 출격하는 12월 극장가에 '1승'을 걸게 된 것과 관련해 "다 잘됐으면 좋겠어요. 각자의 매력이 있는 작품들이니까요"라면서 '1승'이 가진 재미를 강조했다.
"'1승'은 스포츠 영화가 갖고 있는 전형적인 패턴이 없을 수는 없겠지만 실제 스포츠를 볼 때와 또 다른 열기와 희열을 분명히 얻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미술과 음악, 카메라 등이 더해지면서 영화에서만 줄 수 있는 감동이 또 있다고 생각해요. 또 보면서 자신의 숨겨져 있던 자신감을 건질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 가치가 있는 영화에요. 가상의 이야기지만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