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신애 대표는 영화 '기생충'으로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최고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국제장편영화상을 받았다. /CJ엔터테인먼트 제공 |
"'기생충', 영화 인생에 가장 큰 변화"
[더팩트|박슬기 기자] "제가 어쩌다가 제일 바쁜 사람이 됐는지..."
영화 '기생충'을 제작한 곽신애 바른손이앤에이 대표가 헐레벌떡 인터뷰 장소에 등장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이날도 문재인 대통령과 오찬을 하고, 언론과 인터뷰에 참석한 그는 정신없어 보였다.
곽신애 대표와 만남은 20일 오후 서울 종로구 삼청동 한 카페에서 이뤄졌다. 지난 9일(현지 시간)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최고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국제장편영화상 등 4관왕을 차지하고, 한국으로 금의환향한 그는 쉴 새 없이 바쁘게 지내고 있었다.
"제 휴대전화에 모르는 번호로 전화 올 일이 없는데 요즘 전화가 미친 듯이 많이 와요. 이런 경험이 처음이네요. 전화도 너무 많이 와서 다 못 받고, 몇몇 답변이 가능한 분들에게 문자만 겨우 보내는 정도죠."
한국영화사 101년, 아카데미사 92년 만에 새로운 역사를 쓴 곽 대표인 만큼 그럴 만도 했다. 그는 "요즘 매일 새벽 4시에 눈이 떠진다"며 "회사 소파에 누웠다가 눈을 뜨고, 밤에는 또 10시부터 졸린다"고 말했다.
곽신애 대표는 영화잡지 '키노'의 기자로 시작해 제작사 기획마케팅팀을 거쳐 바른손이앤에이의 대표가 됐다. 그의 오빠는 영화 '친구'로 유명한 곽경택 감독이다. /CJ엔터테이먼트 제공 |
곽 대표는 이색 이력을 가지고 있다. 영화잡지 '키노'의 기자로 활동하다가 제작사 청년필름, LJ필름의 기획마케팅실을 거쳤다. 이후 바른손이앤에이의 대표이사가 되던 무렵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과 연을 맺게 됐다.
"'기생충' 이전 작품들에선 제작 총괄을 맡았어요. 그래서 '기생충'을 만났을 때 내가 제작을 해서 민폐를 끼치는 거면 '제작자를 하면 안 되지 않나'라는 고민을 했죠. 다른 제작자라면 '이 작품을 쥐고 더 좋게 만들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어서였어요. 하지만 봉준호 감독 작품인데, 누가 그만두겠어요. 그만두더라도 '하고 그만두자'라는 생각을 하고, 2017년에 이 작품에만 올인했죠. 하하. 지금은 누군가 '영화 그만 둘 생각 있어?'라고 묻는다면 '아니. 5년에서 10년은 더 해봐야하지 않겠어?'가 제 대답이에요."
그렇게 제작자로서 처음 연을 맺게 된 '기생충'은 곽 대표에게 많은 변화를 줬다. 특히 그는 이 작품으로 아시아 여성 제작자 최초로 아카데미에서 상을 받았고 한국 영화 101년, 아카데미 92년 역사에 새로운 기록을 썼다.
"제가 최초라고 하니까 좋은 일이라고 생각해요. 사실 여러 해외 영화제를 다니면서 우리나라 여자들이 영화계에서 덜 차별 받는 것 같다고 느꼈어요. 어떻게 보면 차별을 대놓고 하지 않는다는 거죠. 그런데 미국이나 다른 나라에서는 여성 영화인들이 체감하는 차별은 더 심한 것 같더라고요. 저도 느낀 게 봉준호 감독이 '우리 프로듀서'라면서 저를 소개하면 대부분 반응이 '헉'하는 모습이었어요. 그래서 제가 장난식으로 이야기했어요. '10년 뒤엔 우리나라 여자 감독들이 여기 와있을걸?'이라고요. 하하."
제작사 바른손E&A 곽신애 대표(왼쪽)와 봉준호 감독이 아카데미 상을 받고 카메라를 향해 환한 미소를 짓고 있는 모습이다. /로스앤젤레스(미국)=AP.뉴시스 |
곽 대표는 아카데미 시상식의 뒷이야기도 풀어놨다. 수상 예감부터 세계 각국의 유명 감독과 만남까지. 그는 당시 있었던 일들을 떠올리며 추억에 젖었다.
"시상식 일주일 전에 저희 팀끼리 어떤 상을 받을지 내기를 했어요. 사실 국제장편영화상을 받을 거라고 예상하긴 했죠. 그래서 나머지 상을 두고 얘기를 했는데 저와 송강호 선배는 '못 먹어도 GO'라는 생각으로 작품상에 걸었고, 다른 분들은 각본상에 제일 많이 걸었죠. 사실 현지 영화인들이나 동료들의 분위기를 보면 '안 주는 게 이상하겠는데?'라는 생각이었어요. 봉 감독님과 송강호 선배님만 보면 뛰어와서 안고 악수하고 좋았죠. 어떤 외신에서 봉 감독님의 인기가 '록스타 같다'라고 표현했는데 그 말을 실감했습니다."
곽 대표의 예상은 맞아떨어졌다. 국제장편영화상에 이어 각본상, 감독상, 최고 작품상까지. 그 상을 받기까지 과정은 그에게 "가장 잊지 못할 순간이었다"고 했다. 이후 아카데미 시상식 무대에 오른 그는 '시의적절'한 수상소감으로 관심을 받았다.
"무대에 올라갔을 때 긴장은 안 됐어요. 입이 말라서 움직이는 게 좀 힘들었죠. 사실 수상 소감은 받을 거라고 던져놨기 때문에 미리 준비를 좀 했거든요. 하하. 봉 감독님이 너무 많은 수상소감을 남겨서 좀 다른 걸 하면 어떨까 해서 우리 영화의 대사 '시의적절하고 변화를 만들어줘서 고맙다'라는 수상소감을 했죠. 떨리거나 그러진 않았어요. 정말이에요!"
곽신애 대표는 2015년,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으로 처음 제작에 나섰다. 당시 그는 "내가 맡아서 영화를 망칠까봐 고민이 많았다"고 털어놨다. /로스앤젤레스(미국)=AP.뉴시스 |
곽 대표에게 미국에 있었던 지난 두 달 간의 시간은 드라마틱한 순간들의 연속이었다. 그에게 "그동안 영화했던 세월이 떠오르진 않았나"라고 묻자 "그런 건 없었다"라고 웃으며 말한 뒤 "그동안 세월을 떠올리기엔 지난해 봉 감독님을 대신해서 대리 수상을 너무 많이 했다"고 덧붙였다.
어린 시절부터 영화인의 꿈을 꿔 온 그는 세계적인 거장 감독들과 만났을 때가 인상 깊었다고 했다. 곽 대표는 "브래드 피트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를 봤을 때는 '잘생겼다'가 끝이었는데 감독들을 만났을 때는 너무 좋았다"며 웃었다.
아카데미상을 받은 '기생충'은 현재 제2의 흥행 신화를 써 내려가고 있다. 국내에서도 박스오피스 역주행을 하는 것은 물론, 미국에서 상영관도 무려 1000여 개가 확대됐다.
"아카데미가 '기생충' 흥행에 기름을 부어주는 효과를 한 것 같아요. 사실 이미 잘되긴 했거든요. 해외에서도 역대 한국 영화 흥행 1, 2위를 할 정도로 관심을 받았고요. 또 북미에서도 상영관이 2000개 이상 확대될 거라고 하니까 '오스카가 이런 거구나' 싶었어요. 사실 미국 사람들에게 이 상은 명예가 아니라 상업적인 측면을 더 크게 생각하는 것 같아요."
인터뷰 내내 곽 대표는 오스카 캠페인 당시를 떠올리며 기뻐 보였지만 이내 "이제 끝이라고 하니 아쉬울 뿐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한국 영화의 큰 획을 그은 인물인 만큼 앞으로 걸어갈 길은 밝았다.
"앞으로 '기생충'을 뛰어넘는 건 힘들 것 같아요. '기생충'은 봉 감독님의 20년 이상 노고의 도착 지점이라는 생각을 해요. 이게 4~5년 만에 될 일은 아니잖아요. 20년의 인생을 바쳐서 이룬 성과인 거고, 다른 감독님들도 그럴 거라고 생각해요. 저는 많은 감독님을 지지하고, 서포트하며 그렇게 영화를 만들어나가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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