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인터뷰] 최동훈 감독 "암살? 내 꿈을 관객에게 보여주는 작업"
  • 오세훈 기자
  • 입력: 2015.08.02 05:00 / 수정: 2015.08.01 20:58

영화 암살 개봉. 최동훈 감독이 도둑들에 이어 암살로 3년 만에 관객들을 만났다. /남윤호 기자
'영화' 암살 개봉. 최동훈 감독이 '도둑들'에 이어 '암살'로 3년 만에 관객들을 만났다. /남윤호 기자

9일 만에 500만 돌파…올해 상반기 韓 영화 신기록

'범죄의 재구성' '타짜' '전우치' '도둑들'에 이어 '암살'까지. 그를 설명하는 핵심 키워드다. 어느 순간 나타나 한국 영화 시장에서 빼놓을 수 없는 한 축이 된 그는 담배 연기 없이도 담배 냄새가 가득한 회의실에서 나와 인사를 건넸다. 흰머리가 섞인, 뿔테의 두꺼운 안경알 뒤로 보이는 눈, 그 눈에서 느껴지는 피곤함과 고집스러움이 그의 말보다 먼저 취재진을 반겼다. 검은색 남방에 검은색 뿔테, 관리 안 한 듯한 수염, 고가의 메탈 시계가 전하는 분위기가 '나는 영화감독이다'라고 한 발 먼저 인사를 건네왔다.

"영화감독은 담배 없이는 힘들 것 같다"는 그는 말을 하면서도 담배를 꺼내 입으로 가져갔고 양해를 구한 뒤 비흡연자 앞에서 담배를 피우는 것이 실례라며 회의실 한쪽 창문을 열고 틈새로 연기를 연거푸 뿜어냈다. 그 연기가 그의 입에서 폐를 지나 다시 입으로 나오는 과정과 함께 영화 '암살'이 만들어졌을 것이 분명했다. 그가 내뱉은 연기가 공기 중에서 사르르 녹듯 그가 꺼내 놓은 영화 이야기가 노트북에 스며들었다.

그는 "사진을 찍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지만, 기자들과의 인터뷰는 필수"라며 긴 이야기 보따리를 풀었다. 이하는 대학로 인근 작업실에서 만나 긴 이야기를 나눈 최동훈 감독과의 일문일답.

믿고 보는 감독. 최동훈 감독은 빠르고 긴장감 넘치는 편집과 촘촘한 스토리로 영화 팬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남윤호 기자
믿고 보는 감독. 최동훈 감독은 빠르고 긴장감 넘치는 편집과 촘촘한 스토리로 영화 팬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남윤호 기자

-드디어 '암살'이 개봉했고, 반응도 좋다.
"'범죄의 재구성' 개봉 때는 다 같이 짜장면을 먹으며 개봉하는 것을 지켜봤는데 이제는 그런 문화가 사라졌다. 최선을 다해 찍었지만 언제나 불안하다. 개봉한 순간 영화가 더는 내 것이 아니다. 관객의 것이다."

-관객이 '암살' 어떻게 보고 느끼길 바라나.
"무조건 재미있게. 영화는 재미있어야 한다. 집에 가서도 생각이 난다면 더할 나위 없다. 하하."

-'암살'의 등장과 함께 최동훈 감독의 영화가 변했다고들 한다.
"변했다기보다는 변화하는 과정에 있다. 관객들은 감독을 카테고리화 시켜 정의하지만 감독은 수많은 변화를 꿈꾼다. 계속 빠른 영화를 하다 보니 긴박함 속에서 어느 순간 천천히 느려지는 영화를 해보고 싶었다. 애초에 그런 의도를 두고 만들었다. 열심히 달려가다가 서서 주변을 둘러보는 기분을 주는 서사를 영화로 표현하고자 했다."

-'도둑들' 이후 3년이 걸렸다. 창작의 고통을 어떻게 이겨냈나.
"언제나 긴장의 연속이다. 이야기를 쓴다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기에 충실히 이행했다. 중간에 1년간 쓴 시나리오를 모두 삭제하고 다시 썼다. 열심히 달리다가 잠깐 서서 주변을 지켜보는 그런 특별한 순간순간을 담기 위해서다. 속사포 캐릭터도 다시 쓰며 만들어진 인물이다. 스토리에는 큰 차이가 없다."

-항일 무장투쟁 영화는 감독들이 꺼린다고 들었다. 어렵고 또 잘 만들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왜 당시 영화가 만들어지지 않는지 궁금했다. 1960년대가 거의 마지막인 것 같다. 막상 해보니 현실적으로 만들기가 어렵더라. 그래서 항일 무장투쟁 영화를 재미있게 만들어 관객에게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컸다."

-민감한 주제고, 또 가슴을 끓게 하지만 그만큼 뻔하고 지루한 이야기일 수 있다. 어떤 점을 경계했고 또 강조하고자 했나.
"그때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그들의 얼굴이 기억했으면 좋겠다. 잊혀진 선조와 그들의 업적을 모두가 기억해줬으면 한다. 그래서 1930년대를 제대로 재현하고 싶었고 서스펜스를 잘 만들었으면 좋겠다 생각했다. 경계했던 것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너무 커지는 것이다. 작품의 밸런스를 유지하는 게 어려웠는데 지나친 메시지와 감동은 지양했다."

개봉 9일 만에 500만 돌파. 영화 암살이 상반기 개봉한 한국 영화 가운데 독보적인 흥행을 기록하며 새로운 기록들을 만들어 내고 있다. /남윤호 기자
개봉 9일 만에 500만 돌파. 영화 '암살'이 상반기 개봉한 한국 영화 가운데 독보적인 흥행을 기록하며 새로운 기록들을 만들어 내고 있다. /남윤호 기자

-최동훈 감독에게 '재미'란 무엇인가.
"영화를 끝까지 집중해서 보게 하는 힘이다. 당겼다 싶으면 풀어주고 풀어주다가도 쭉 당겨주고. 당기다 예상치 못한 이상한 감정을 전달하고 또 아무렇지 않게 넘기기도 하고. 영화는 반드시 '재미'가 있어야 한다."

-전지현 등 출연진들이 당신이 천재라고 입을 모으더라.
"영화만 생각하고 열심히 하니까. '짜식 열심히 하는구나'라고 인정해주는 게 아닐까. '타짜'를 찍으며 내가 감독으로 가진 역량을 넘어선 영화라고 느껴 힘들었다. 잠을 못 잤다. 그때 배웠다. 모든 일은 열심히 하려 하는 순간 어려워진다는 것을. (웃음) 즐겨야 한다."

-영화만 본다면 최 감독은 정말 유쾌한 사람 같다.
"(웃음) 그렇다. 난 긍정적인 사람이다. 재미도 조금 있다. 힘들어도 긍정적으로 해석하려 노력하는 사람이고자 한다."

-어느새 충무로를 대표하는 감독이 됐다. 감독이라는 직업의 매력은 무엇인가.
"꿈을 꾸고 그 꿈을 만들어 대중에게 보여주는 사람이 감독이다. 이거면 충분하지 않을까. 존재하지 않는 걸 생각하는 게 정말 재미있다. 물론 평생 스트레스와 팔짱을 끼고 살아야 한다. 부담감이 직업병인, 하지만 어느 정도의 스트레스는 사람을 발전시킨다고 믿는 그런 직업."

-전지현 하정우 이정재, 모두 색 짙은 배우다. 인기도 엄청나다. 그런 배우들과의 작업이 어렵고 부담되지 않았나.
"영화에 대한 감독과 배우의 생각이 같아야 한다. 비슷해야 더 좋은 작품이 나온다. 그걸 조율하는 것은 모든 배우가 똑같이 힘들다. 물론 유명한 배우들이 조금 더 까다롭다. 하지만 근본은 늘 같다. 그걸 조율하는 게 감독의 역할이다."

영화는 재미가 있어야 한다 최동훈 감독이 하반기 한국 영화의 활약과 선전을, 관객들의 사랑과 관심을 당부했다. /남윤호 기자
"영화는 재미가 있어야 한다" 최동훈 감독이 하반기 한국 영화의 활약과 선전을, 관객들의 사랑과 관심을 당부했다. /남윤호 기자

-함께 작업한 전지현 이정재 하정우는 어떤 배우인가.
"'도니 브래스코' 마이크 뉴웰 감독이 '스타는 항구에 정박한 큰 배와 같다. 감독이 그 배를 잘 밀어줘야 하는데 배를 민 자국이 남아선 안 된다. 감독의 역할 중 가장 중요한 건 배우들이 열정을 갖고 바다로 향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다'라는 말을 했다고 하더라. 정말 공감한다. 그런 면에서 세 배우를 좋아할 수밖에 없다. 이정재는 감독인 나보다 준비가 더 돼 있는 배우다. 생각도 비슷했다. 전지현에게는 준비 없이 즉흥적으로 나오는 첫 연기의 매직을 꿈꿨다. 그는 그걸 충분히 보여주는 배우다. 하정우는 감독이 원하는 것 이상을 늘 보여주는 배우다. 바랄 게 더는 없다."

-영화의 실질적인 원톱은 전지현이다. 전지현은 최동훈 감독의 뮤즈가 되고 싶다고 밝히기도 했다. '도둑들'에 이어 두 번째 작업은 어땠나.
"배를 밀어주는 쇠 지렛대가 중요한데 전지현은 찰나의 교감이 좋은 배우다. 배를 민 자국이 남지 않는 배우랄까. 전지현은 술을 못 마신다. 그런데도 대화가 부족하지 않다. 안옥윤은 예쁘게 보이고 싶은 여성이 아니기에 그런 티가 나면 안 됐다. 그러면서도 멋진 여성이어야 한다. 그래서 영화를 보면 안옥윤이 아름답다고 느껴지길 바랐다. 그런 안옥윤은 전지현만이 표현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180억 원은 정말 큰돈이다. 돈을 벌 상업 영화를 만들 요량이었다면 이렇게 정교할 필요가 있었을까.
"영화를 보는 관객에게 1930년을 그대로 보여주고 싶었고, 인물을 제대로 느끼게 하고 싶었다. 여성 배우가 극 전체를 장악할 때 발산하는 서스펜스를 좋아한다. 영화를 이해하려는 관객의 자발성은 그 서스펜스에서 온다고 믿는다. 그러기 위해서는 디테일이 살아있어야만 한다."

-상반기 영화계가 위기라고들 한다. '암살'은 한국 영화 시장의 분위기 반전을 위한 '열쇠' 같은 영화로 꼽힌다.
"한국영화는 언제나 위기였다. 하지만 하반기는 낫지 않을까. 좋은 영화가 대거 개봉을 준비하고 있다. 과거 한국 영화의 전성기라고 하던 때와 비교하면 사정없이 몰아치는 느낌이 아닌 것은 확실하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고 무조건 위기라고 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앞으로의 계획은? 어떤 감독이 되고 싶은가.
"구상 중인 2~4개의 이야기가 있다. 일단 '암살'에 매진한 후 천천히 생각해 볼 계획이다. 얼마 전 '매드맥스'를 봤는데 조지 밀러(70) 감독이 나이가 많더라. 임권택 감독도 그렇다. 그분들처럼 나이가 들어서도 현역 감독으로 활동하고 싶다. 걸작은 아니더라도 꾸역꾸역 계속해서 영화를 만들고 싶다. 그게 내 최고의 꿈이다."

[더팩트ㅣ오세훈 기자 royzoh@tf.co.kr]
[연예팀ㅣ ssent@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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