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인턴수첩] '화정', 너는 내 운명♥…첫 연예 현장 취재기
  • 강희정 기자
  • 입력: 2015.04.13 09:27 / 수정: 2015.04.13 09:27
화정의 호화 라인업. 지난 7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 MBC 사옥에서 새 월화드라마 화정의 제작 발표회가 열렸다. /김슬기 기자
'화정'의 호화 라인업. 지난 7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 MBC 사옥에서 새 월화드라마 '화정'의 제작 발표회가 열렸다. /김슬기 기자

'어서 와. 제작 발표회는 처음이지?'

솔직히 말하자면 지난 7일 제작 발표회에 참석하기 전까지 드라마 '화정'에 대해 모르는 상태였다. "MBC 화정 갈 거니 1시까지 준비하라"는 선배의 메시지에 'MBC 화정이 어딘가, 상암동 사옥 말고 또 다른 곳이 있는 건가'하고 지도 애플리케이션에서 '화정동' 따위를 검색하고 있었으니 그 수준 말 다 했다.

본래 드라마를 잘 보지 않는 편인 건 차치하더라도 인턴기자로 입사한 이래 드라마를 볼 여유도 잘 없었다. 급하게 전달받은 현장 취재 일정이기에 지하철과 택시를 타고 가며 속성으로 '화정'에 대해 공부하고 기록했다. 멀미가 났다.

오후 1시 40분쯤 상암동 MBC 사옥에 첫발을 내디뎠다. 방송국 안에 들어가는 절차부터 제작 발표회 현장까지 어느 하나 신기하지 않은 게 없었다.

취재진으로 빼곡히 들어선 제작 발표회장에 겨우 자리를 잡고 앉았다. 배우 차승원부터 이연희, 김재원, 서강준 등 호화로운 라인업. 배우들이 차례로 나와 포토타임을 가졌다. 사진 기자를 제외하고는 취재진 중에 플래시를 터뜨리는 사람은 드물었다. 업으로 삼는 이들이라 그런가. 연예인이 앞에 나와도 다들 노트북에 시선을 꽂고 저마다 준비에 한창이다.

실은 본인도 굉장히 이런 일에 익숙한 사람인 척 배우들을 쳐다보고 있던 와중에 불현듯 어머니가 떠올랐다. 얼마 전 본가로 내려갔을 때 어머니가 '차승원, 차승원' 노래를 부르며 요리하던 기억이 난 것이다.

"차승원이 이렇게 만들면 맛있다고 가르쳐주더라"던 어머니. 아무래도 tvN '삼시세끼'를 보신 모양인데, 누가 들으면 친한 친구 이름으로 착각할 정도로 친근한 어조였다. 거기까지 생각이 닿으니 더는 차승원을 맨눈으로만 볼 수가 없었다.

첫 연예부 현장 취재, 첫 제작 발표회, 그리고 차승원이 담긴 '인증샷'을 찍었다. 일과가 끝나고 어머니에게 전송했더니 뭐 꼬치꼬치 캐묻지도 않고 짧은 감탄사만 돌아온 것은 기대 이하의 반응이었지만 말이다.

화정에서 광해 역을 맡은 차승원 차승원은 삼시세끼에서 보여준 것처럼 유머러스한 매력이 있었다. /김슬기 기자
'화정'에서 광해 역을 맡은 차승원 차승원은 '삼시세끼'에서 보여준 것처럼 유머러스한 매력이 있었다. /김슬기 기자

드라마 '화정' 소개와 하이라이트 영상이 지나간 후 본격적으로 토크 타임이 다가왔다. 같이 간 선배는 '아무것도 모르는 후배를 어떻게 하나' 불안한 마음이었겠지만 앞자리에 앉은 본인은 경험한 적이 없으니 두려운 것도 없이 시작을 기다릴 뿐이었다. 이후로 어떤 일이 닥칠지도 모른 채 말이다.

그렇다. 혼자만 혼이 빠져 있을 때 '쓰나미'가 닥쳤다. 스스로 멀티태스킹에 '좀' 약한 축이라고 생각했는데 오산이었다. 실은 '좀'이 아니라 '엄청나게' 약한 편이었나 보다. 주변 기자들은 배우들이 하는 말을 깨알 같이 받아적으면서도 곧잘 기사를 완성한다. 것도 몇 개나 말이다. 이 복잡한 두 가지 일을 한 번에 하는 사람들이 괴물처럼 보이기 시작한다.

뭔가 쓰긴 써야 하는데 인턴기자가 보기엔 기사로 쓸 만한 이야기가 나오지 않았다. 김상호 PD는 열정적으로 드라마의 배경을 설명했지만 대체 코멘트의 어떤 부분을 써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았다. 사방에 앉은 기자들의 노트북으로 자꾸 시선이 간다. 괴물 맞다. 기사를 적어 올린 후 '작업 완료' 메시지를 띄우는 이들의 모니터를 흘긋 대며 본격적으로 '멘붕'이 닥쳤다. '나 여기서 뭘 할 수 있기나 할까.' 빼곡한 타자 소리 속 홀로 외딴 섬이 된 기분이었다.

겨우 완성한 스트레이트 기사는 선배들의 손에서 마치 새로 태어난 것처럼 대폭 수정을 거쳐야 했다. 고작 3개를 쓴 후 파김치가 된 머릿속엔 물음표만 가득했다.

정신없이 키보드를 두드리는 사이 제작 발표회가 끝을 알렸다. 벌써 일을 끝낸 기자들이 하나둘씩 자리를 떴고 환했던 무대도 정리되기 시작했다. 포털사이트를 검색해보니 벌써 '화정' 제작발표회에 대한 기사가 수두룩 빽빽하게 들어찼다. '이렇게 스트레이트 기사가 탄생하는구나' 같은 공간에 있던 이들의 결과물들을 보며 경외심마저 느껴졌다.

단순히 말을 옮겨적는 것이 기사가 아니라는 걸 마음 깊은 곳에서 깨닫는다. 몇 줄짜리 짧은 스트레이트를 빠르게 전달하려면 내공이 필요한 것 같다. 그게 없으면 본인처럼 헤맨다. 타인의 음성을 부드럽게, 쉽게, 누구나 이해할 수 있게 텍스트로 전달하는 건 보통 일이 아니다. 1분 안에 스르륵 읽는 기사, 그건 1분 안에 소화할 수 있도록 공들여 쓰니까 가능한 얘기 아닐까.

화정 6인 6색 포스터 조성하 서강준 차승원 이연희 김재원 한주완(왼쪽부터) 등이 화정에서 열연을 펼친다. /김종학 프로덕션 제공
'화정' 6인 6색 포스터 조성하 서강준 차승원 이연희 김재원 한주완(왼쪽부터) 등이 '화정'에서 열연을 펼친다. /김종학 프로덕션 제공

제작 발표회가 끝난 후에도 근처 카페에서 한참 현장을 되새기며 기사를 작성했다. 기사는 써야 하는데 현장 분위기가 도통 떠오르지 않고 당시 너저분하게 널려 있던 걱정들만 기억이 난다. 받았던 드라마 팸플릿을 괜히 뒤적였다. 아까까지만 해도 깔끔하게 옷을 차려입고 무대에 섰던 배우들이 팸플릿에서 조선 시대의 큰 인물들로 변신해 있었다.

그 순간, '시작을 알린다'는 것의 의미가 뭉클하게 와 닿았다. 이제 배우들은 드라마가 끝날 때까지 '화정' 속 인물로 사는 것이다. 드라마의 시작을 알리는 제작 발표회에서 연예부 첫 현장 취재 임무를 수행했다. 마치 태어난 날이 같은 운명적 친구를 길목에서 맞닥뜨린 느낌이다.

그래서 '화정'을 애청하기로 마음먹었다. 지난 2002년 MBC 드라마 '내 사랑 팥쥐'의 흐지부지한 결말을 본 이후 13년 만에 드라마를 완주하기로 결심했다. 열을 가르쳐도 아직 하나밖에 못 알아듣는 초짜 인턴기자는 앞으로 '화정'을 볼 때마다 첫 취재 현장을 떠올리게 될 것이다.

[더팩트 | 강희정 인턴기자 khj@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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