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명탐정2' 오달수 "코믹 연기가 제일 어려워"
"쥐뿔도 없는 남자예요."
'1억 관객'을 가진 배우 오달수(47)의 첫 마디다. 그는 자신을 이렇게 자평했다. 최근 국내 최초 '1억 배우'로 당당히 이름은 올린 그는 시골집 아랫목처럼 뜨끈뜨끈했고 사랑방 목침처럼 견고했다.
위트가 있지만 과한 몸집이나 과장은 없었다. 'Simple is the best'라는 말처럼 그는 정갈했지만 동시에 충분했다. 지난 11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옆집 아저씨가 집 앞으로 나와 볕을 쬐듯 편안하게 의자에 앉아 소탈하게 이야기를 꺼냈다. 오달수와의 인터뷰는 잔잔했다. 큰 파장은 없었지만, 조용히 그리고 강렬하게 메시지가 오갔다.
"움직이지 않고 집에 가만히 있는 걸 좋아해요. 싸돌아다니는 체질 아니죠. 일주일 동안 가만히 있으라고 하면 가만히 있을 수 있지만 사실 그럴 시간은 또 별로 없어요. 모든 시간이 연기와 닿아 있어요. 연기가 없다면 아무것도 없을 걸요."
1990년 극단 연희단거리패 입단해 연기 생활을 시작해 올해로 26년 차를 맞이한 오달수는 배우 말고 다른 삶을 생각하지 못했다. 그는 "배우가 되지 않았다면 노숙자가 됐을 것"이라며 "연기 이외에 다른 삶에 대한 생각은 없다. 내일 개봉할 영화와 어제 찍은 장면에 빠져 살 뿐이다"라고 담담하게 말했다. 예상 밖의 말을 꺼낼 때도 오달수는 침착하다. 웃겨야 한다고 의무감도 전혀 없다.
영화 속 오달수는 유쾌하거나 웃음을 유발하는 캐릭터를 주로 소화하지만, 실제 오달수는 캐릭터보다 조용하다. 그리고 내뱉는 '말'이라는 것에 매우 신중하다. 그는 다 가훈 때문이라고 했다.
"'말을 더듬어라!' 이게 우리 집 가훈입니다. 생각하며 이야기 하라는 뜻이죠. 30대 중반의 어느 설에 아버지께 세배하자 '이젠 네 말에 책임질 나이가 됐다'며 덕담을 해줬어요. 그 말이 참 와 닿았죠. 그래서 우리 집 가훈으로 정했어요. 매력 있지 않나요? (웃음)"
오달수의 유쾌함이 느껴지는 일화다. 그렇게 남들과는 조금 다르게 웃기고 또 신중한 오달수는 11일 개봉한 영화 '조선명탐정: 사라진 놉의 딸'(이하 '조선명탐정2', 감독 김석윤 제작 청년필름 배급 쇼박스)에서 탐사관 김민(김명민 분)의 조수 서필을 연기했다. 그는 "이번 영화가 전편보다 전체적으로 깔끔해졌고 이야기전개도 탄탄해졌다"고 자신 있게 소개했다.
그는 김명민과 조선 경제를 뒤흔드는 불량 은(銀) 유통사건 배후에 있는 거대한 범죄조직과 맞선다. 두 사람은 티격태격하면서도 쿵짝이 잘 맞는 콤비로 남다른 '브로맨스'를 자랑했다.
김명민은 "오달수는 소비되지 않는 대체불가 배우다. 그가 있었기에 코믹 연기를 할 수 있었다"고 극찬했다. 오달수에게 이 말을 전하자 그는 "김명민 말 참 잘한다. 서로에게 힘이 됐다. 현장에서 기댈 수 있는 건 오로지 옆에 있는 김명민뿐이었다"면서 "촬영 끝나면 옆에 있는 인간에게 전화해서 술 마시고 이야기하며 피로를 풀었다"고 찰떡 호흡 비결을 공개했다.
이어 김명민에 관해 "김명민 하면 자신을 혹사하며 연기하는 배우라는 느낌이 먼저 들었다. 무시무시한 배우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만나보니 아니더라. 이렇게 망가지는 연기를 잘하는 배우를 본 적 없다. 그를 보고 누가 이순신이라고 그러겠나. (웃음) 듣고 보니 그는 무명이 길어서 안 해본 역할이 없다고 하더라. 내가 본 그는 제대로 한 코미디 하는 배우다"고 설명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오달수는 가장 어려운 연기로 "남을 웃기는 것"이라고 말했다. 질문을 던지자마자 반사적으로 답이 튀어나왔다. 그는 "정말 어렵다. 웃어야 하는데 관객이 웃지 않으면 그 민망함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고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등장하는 영화마다 '웃음 제조기' 역할을 한 것과는 대조되는 이야기다. 다만 그는 "일상과 영화 속 캐릭터는 다르다. 똑같으면 재미없는 게 배우다. 난 몽타주 기법으로 완성된 그림의 극히 일부분일 뿐"이라고 자신을 낮췄다.
그는 25년 넘게 연기하며 "이제야 어떤 배역을 보면 감독이 무엇을 요구하더라도 대충 알 것 같다. 정확하게는 모르지만, 대충은 알게 된 것 같다. 그것을 바탕으로 캐릭터를 내게 데려와 연기한다"고 자신만의 연기법을 소개했다.
그렇게 오달수는 국내 유일무이한 '1억 배우'가 됐다. 다들 1000만 타이틀이라도 얻기 위해 애쓰지만 정작 그는 숫자에 의미를 두지는 않았다.
"건방지게 들릴까 봐 조심스럽지만 사실 1억 배우란 타이틀도 내겐 큰 의미가 없어요. 사람들이 재미있자고 통계를 내고 알리는 것 같아요. 사실 누가 '1억 배우'라고 할 때마다 '1억25만 배우'라고 말합니다. 연극 하는 놈에게 '1억'은 사치스러운 숫자니까요. 25년 연극을 했고 넉넉히 셈해 1년에 1만 명의 관객이 내 연극에 왔다고 계산하면 25만 명이 되죠. 그래서 1억25만이에요."
웃길 수도 있지만 꽤 뼈가 담긴 이야기다. 그는 "약 4년 전 대학로 연극판의 1년 관객 수가 25만 명이었다. 25년, 대학로 1년 관객 수 등이 우연히 맞아 떨어져 하는 말이지만 씁쓸하다. 영화는 지난해 1년 2억 관객 시대를 맞이했다"면서 "어떻게 이럴 수 있나 싶다. 다 연극 하는 사람들의 잘못이다. 나부터도 잘못했다. 제발 연극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늘었으면 좋겠다"고 한탄했다.
그는 '1억 배우'로 알려졌지만, 시작과 본바탕은 연극에 있다. 황지우 시인의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라는 시를 각색한 작품에 출연해 배우의 꿈을 키운 그는 연극 '오구'로 데뷔했지만 10년 넘는 무명 생활을 견뎌야 했다. 힘들게 세상에 얼굴을 알린 뒤에는 15년째 극단 신기루만화경 대표로 살고 있다. 돈 없고 힘들고 외로워 힘이 돼 준 연극인들의 고충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극단을 차려 배고픈 연기자들에게 기회를 주고, 연극 자체의 발전을 도모하기 위해 매년 쉬지 않고 연극 작품에 출연하고 있다.
오달수는 천상 배우다. 생각하는 것부터 생활 자체가 연기와 영화, 연극과 맞닿아 있다. 불혹을 한참 넘긴 오달수지만 열정은 여전한 열혈 청년이다.
설 연휴 기대작 '조선명탐정2'로 이번 달과 다음 달까지 바쁘게 스크린을 누빌 오달수는 올해 류승완 감독의 '베테랑', 최동훈 감독의 '암살', 정기훈 감독의 '열정 같은 소리 하고 있네'로 영화 팬들을 만날 계획이다.
[더팩트ㅣ오세훈 기자 royzoh@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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