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쎄시봉', 청춘에겐 사랑을 위한 용기를-그 시절 그들에겐 추억이란 낭만을
기자의 첫사랑인 A 군은 MP3가 한창 유행하던 시절, 학교에서 유일하게 콤팩트디스크로 음악을 듣던 외골수였다. 가끔 강당에서 길죽한 손가락으로 피아노를 연주했는데 손가락이 짧은 기자가 보기엔 A 군이 굉장히 멋진 뮤지션같았다.
호감으로 시작된 마음의 크기가 사랑으로 변하는 시간은 얼마 걸리지 않았고 도저히 진심을 숨길 자신이 없던 기자는 단숨에 A 군에게 달려가 사랑을 고백했다. 그리고 보기 좋게 차였다.
결국, 밤낮을 눈물로 지새우며 실연의 아픔을 달랬지만, 유년시절 무모하리만치 용감했던 첫사랑의 기억은 기자에게 많은 것을 남겼다. A 군이 즐겨듣던 노래가 현재 기자가 즐겨듣는 노래 1순위가 됐고 순수했지만 무모했던 고백은 예쁘게 포장돼 추억으로 남았다.

갑작스럽게 사랑타령을 한 이유는 영화 '쎄시봉'(감독 김현석, 제작 제이필름, 배급 CJ엔터테인먼트)이 대부분 한 번쯤 경험해본 이야기. 첫사랑에 관해 다룬 작품이라서다.
영화는 1960~1970년대 서울 무교동 음악감상실 쎄시봉을 배경으로 그 안에서 벌어지는 청춘남녀의 사랑을 다뤘다. '쎄시봉'은 음악감상실의 배경과 출신 가수의 이름, '명곡'의 힘을 빌렸지만, 남녀 사이의 사랑이야기를 주제로 했다고 해도 무리는 없다.
'쎄시봉'엔 조영남(김인권 분) 이장희(장현성·진구 분) 윤형주(강하늘 분) 송창식(조복래 분) 오근태(김윤석·정우 분) 등 다양한 인물이 등장한다. 영화는 실존인물인 포크 듀오 트윈폴리오(윤형주-송창식)가 만들어진 비화부터 음악감상실 쎄시봉의 흥망성쇄를 전반적으로 훑는다.
하지만 굳이 주연배우와 굵직한 가지를 이야기하자면 가상인물 오근태와 쎄시봉 멤버들의 뮤즈로 불리던 민자영(김희애·한효주 분)이 주인공이고 두 사람의 로맨스가 주된 이야기다.

오근태로 분한 정우와 젊은시절 민자영 역의 한효주가 보여준 연기는 기대 이상의 '케미'를 자랑한다. 특히 여주인공을 더욱 돋보이게 만드는 정우의 능력은 '쎄시봉'에서 100% 발휘된다. 세련되지 못해서 더욱 애처로운 근태의 순애보 또한 본능적인 '생활 연기'에 의존하는 그를 만나 제 옷을 입은 듯 하다. 한효주 또한 아름다운 외모를 스크린 안에서 마음껏 뽐내며 남자 세 명의 '뮤즈'다운 매력을 보여준다.
두 남녀의 로맨스를 러닝타임 내내 지루한 느낌없이 관람할 수 있는 이유는 극을 풍성하게 하는 윤형주와 조복래(트윈폴리오)의 탄탄한 가창력과 자연스러운 캐릭터 소화능력이 뒷받침 된 덕이다.

연극 무대를 고향으로 스크린에서 존재감을 발휘 중인 두 명의 '라이징 스타'는 다소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는 이장희 송창식 캐릭터를 매끄럽게 소화했다.
특히 한국을 대표하는 뮤지션을 연기하며 부른 노래는 관객들의 시선을 단숨에 사로잡을 만큼 훌륭하다. 트윈폴리오와 오근태-민자영을 한 발자국 떨어져 지켜보는 3인칭 시점의 20대 이장희, 진구가 보여주는 독특한 표정 연기와 다채로운 감정표현도 볼거리다.

아쉬운 부분은 40대로 넘어간 '쎄시봉' 멤버들. 충무로 최고의 배우인 김윤석 김희애 장현성이 모두 뭉쳤지만, '왜 이 정도밖에'란 물음표를 남긴다. 재빠르게 마무리되는 허술한 결말 탓이다. 더불어 어색한 노인 분장이 당황스럽다. 하지만 40대 오근태를 연기한 김윤석의 외롭고 쓸쓸한 눈빛과 주저앉아 오열하는 장면에서 그나마 위안을 찾는다.
'쎄시봉'은 그때 그 시절을 잊고 현재만 사는 중년에게, 그리고 지금만 보는 청춘에게 '당신은 잘 살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뜨거운 사랑을 경험한 중년이라면 그때의 추억을 곱게 보관할 줄 아는 로맨티스트로 남으라 말하고, 경험하지 못한 청춘이라면 사랑을 위해 용기낼 줄 아는 무모함을 가지라고 말한다. 사랑하는 사람은 늙지 않기 때문이다. 영화는 5일 개봉, 122분. 15세 이상 관람가.
[더팩트ㅣ성지연 기자 amysung@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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