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포커스] 배급사가 만드는 '흥행작', 관객에게 선택권은 없다
  • 성지연 기자
  • 입력: 2015.01.06 06:00 / 수정: 2015.01.05 23:15

굵직한 배급사를 끼고 개봉한 영화들이 멀티플렉스 극장 상영관을 대부분 장악하고 있어 관객들의 불만이 거세지고 있다./영화 포스터
굵직한 배급사를 끼고 개봉한 영화들이 멀티플렉스 극장 상영관을 대부분 장악하고 있어 관객들의 불만이 거세지고 있다./영화 포스터

[더팩트 | 성지연 기자] 지난 주말 서울에 있는 멀티플렉스 극장을 찾은 이모 씨(29)는 애초 자신이 보려 했던 영화 대신 '국제시장'을 선택했다.

상영 시간표를 꼼꼼히 따지며 주변에 있는 극장을 모두 뒤졌지만, 자신이 보려 했던 영화를 상영하는 곳은 한 군데도 없었기 때문이다. 어렵사리 한 군데를 찾았지만, 상영 시각은 새벽 1시. 직장에 다니는 이 씨에겐 도무지 불가능한 시간이다.

비단 '국제시장' 하나를 놓고 하는 이야기는 아니다. 굵직한 배급사를 끼고 개봉한 영화들이 황금 시간 극장가를 점령하고 관객들의 선택을 대신하고 있다. '울며 겨자 먹기'로 극장 시간표에 맞춰 영화를 관람하는 이상한 문화생활이 부지기수다.

CJ엔터테인먼트가 배급을 맡은 국제시장/영화 스틸
CJ엔터테인먼트가 배급을 맡은 '국제시장'/영화 스틸

5일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집계에 따르면 '국제시장'은 지난 주말인 2일부터 4일까지 165만 5551명의 관객을 동원해 누적 관객 775만 3065명을 넘어섰다. 개봉 이후 연일 박스오피스 정상을 유지하던 영화는 조심스레 '1000만' 타이틀까지 노리고 있다.

지난해 12월 17일 개봉한 '국제시장'은 굵직한 외화부터 국내 기대작들이 대거 개봉한 연말-연초 극장가에서 빠르게 관객몰이하며 순항 중이다. 하지만 눈에 띄는 것은 숨 가쁜 관객몰이 속도가 아닌 '너무 많은' 영화관 수다.

배급사가 CJ엔터테인먼트인 덕에 CJ가 운영하는 극장 CGV에 가면 '국제시장'을 관람하기 편리한 상영 스케줄과 대부분 해당 영화로 도배된 상영 스케줄이 눈길을 끈다. 이러니 관객이 영화를 골라 볼 수 없을 정도의 과도한 독과점이 아니냐는 비판의 목소리가 거셀 수밖에 없다.

롯데엔터테인먼트가 배급을 맞은 기술자들은 박스오피스 2위에 그쳤지만, 롯데시네마 대부분 상영관을 차지했다./기술자들 스틸
롯데엔터테인먼트가 배급을 맞은 '기술자들'은 박스오피스 2위에 그쳤지만, 롯데시네마 대부분 상영관을 차지했다./'기술자들' 스틸

'국제시장'은 개봉 첫날(이하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기준)인 지난해 12월 17일 931개 스크린으로 시작해 지난 3일, 개봉 4주차에 스크린을 1044개로 늘렸다. 개봉 첫날 CGV 상영 횟수 점유율 33.1%를 기록한 영화는 개봉 4주차인 4일에도 상영 횟수 점유율 31.1%를 기록하며 30% 밑으로 떨어지지 않고 있다. 시간이 지날 수록 상영 횟수 점유율을 줄이는 다른 영화와 다른 '역주행'을 보이고 있다.

현재 박스오피스 5위, 개봉 당시 박스오피스 2위에 그쳤던 롯데엔터테인먼트 배급의 '기술자들'은 개봉 당시 롯데시네마에서 상영 횟수 점유율 23%를 웃돌며 대부분의 황금 시간대를 장악한 바 있다. 천만 관객을 동원한 '인터스텔라'역시 1000개 이상 되는 스크린을 독점해 비난의 목소리가 거셌다.

역주행 열풍의 주인공인 독립영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영화 포스터
역주행 열풍의 주인공인 독립영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영화 포스터

반면 '역주행' 열풍의 주인공인 독립영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는 개봉 이후 상영 횟수 점유율을 늘렸지만, 턱없는 수치였다. CGV 아트하우스와 대명문화공장이 공동배급을 맡은 이 영화는 지난해 12월, 박스오피스 정상을 달리며 뜨거운 화제를 모았지만, CGV 상영 점유율(12월 15일 기준) 23.3%, 롯데시네마 22.9%에 그쳤다.

개봉 4주 차에도 1000개 이상 되는 스크린을 독점하고 있는 '국제시장'과 굵직한 배급사를 무기로 주요 상영 시간표를 독점한 몇몇 작품들. 스크린 독과점 비판의 목소리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지만, 어쩔 수 없이 해당 시간에 영화를 본 관객들은 '빛 좋은 개살구'에 분통을 터뜨리거나 취향을 강요당하는 듯한 상영 시간표에 억울함을 토로할 수밖에 없다.

지난해 아트버스터열풍과 다큐버스터 열풍을 불러일으킨 국내 극장가/남윤호 기자
지난해 '아트버스터'열풍과 '다큐버스터' 열풍을 불러일으킨 국내 극장가/남윤호 기자

지난해 국내 스크린은 '아트 버스터'열풍에 이어 '다큐 버스터'열풍까지 다양성 영화가 장식한 한해였다. 하지만 여전히 극장가의 시장 구조는 '다양성'이란 단어를 위해 많은 노력이 필요해 보인다.

익명을 요구한 한 평론가는 이러한 현실을 개탄하면서도 "이렇게 끊임없이 문제를 제기하다 보면 언젠가는 바뀌지 않겠는가"라고 조심스럽게 예측했다. 문제를 제기하고 계속해서 관심을 두는 것이 중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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