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가연 기자] 연기자 이민기(30)에게서 가장 먼저 발견할 수 있는 이미지는 '꽃미남'이다. 길고 가는 몸매와 귀여운 얼굴, 환하게 웃는 장난꾸러기 미소까지 '여심'을 사로잡는 미남 배우. 그런 이민기가 변하고 있다. 올 초 개봉한 '몬스터'에서는 살인마로 변신하더니 지난 11일 개봉한 '황제를 위하여'에서는 조직폭력배로 탈바꿈했다. 조직폭력배와 살인마, 그리고 이민기는 쉽게 어울리는 조합은 아니다.
'몬스터'에서도 그렇지만, 이민기는 '황제를 위하여'에서 이환 캐릭터를 썩 잘 소화했다. 이환은 야구 유망주였지만 승부조작 사건에 휘말려 끝내 불법조직으로 들어선 인물. 이민기는 첫 누아르 도전임에도 무리 없이 연기하며 필모그래피를 넓혔다. 선이 가늘고 섬세한 조직폭력배 연기 도전, 어렵진 않았을까. 개봉 날 <더팩트>과 만난 그는 오히려 다른 조직폭력배를 연기할 수 있어서 좋았다고 말한다.
"조직폭력배라고 해서 일명 깍두기 머리를 하고 통 넓은 바지를 입어야 하는 것은 아니잖아요? 조금 색다른 조직폭력배를 연기하고 싶었어요. 그리고 제가 한다고 어울리지도 않아요.(웃음) 제가 통 넓은 바지를 입으면 얼마나 어색하고 이상하겠어요. 그래서 저는 저만의 방식으로 조직폭력배가 된 이환의 캐릭터를 만들었어요. 정장도 조금 더 몸에 붙게 입었고요, 머리도 파마해서 독특하게 표현했죠. 조직폭력배 캐릭터를 참고한 것이 아니라 이민기식으로 만들었어요."
그의 말대로 이민기가 연기한 '이환식 조직폭력배'는 그동안 작품에서 많이 다뤘던 이미지와 다르다. 섬세하면서도 세련되다. "'황제를 위하여'는 구시대와 신시대적인 이미지를 섞었어요. 신세대적인 세련미는 아무래도 이환에게도 많이 풍기는 편이죠. 감독님과도 충분히 대화했고 이점이 일치해서 세련된 조직폭력배 이미지로 이환 캐릭터를 잡았어요."
'황제를 위하여'는 호불호가 명확하게 엇갈리는 영화다. 군더더기가 없이 빠르게 진행되는 빠른 영화라는 평이 있는 반면 같은 이유로 오히려 개연성 없다는 평도 더불어 나온다. 이민기는 둘 다 옳은 평이라고 말하면서 장단점이 분명하다고 한다.
"우리 영화는 이미지를 많이 보여주는 영화인 것 같아요. 어떤 이야기를 따라가는 것은 아니니까 같은 내용을 두고도 상반된 평가가 나오는 것 같아요. 감정보다는 캐릭터가 보이는 이미지와 모습, 장면이 중요한 부분이죠. 두 남자를 비롯해 남자들이 가진 욕망이 직구로 뻗어 나가죠. 시원시원하고 세고 폭력적인 느낌은 있죠."
이민기는 이환의 어떤 점에 끌렸을까. "인간적인 모습에 끌렸어요. 이환도 욕망을 좇아서 그 높은 곳까지 올라가잖아요. 하지만 자신이 원하는 곳에 도달했을 때는 유약한 모습을 보이죠. 인물이 가진 양면성이 마음에 들었어요. 영화의 장르와 분위기는 세지만 캐릭터 자체는 세지 않거든요. 이환이 가진 연민이 제 마음에 와 닿았던 것 같아요."
그동안 김민희 김고은 손예진 등 꽃같이 아름다운 여배우와 호흡을 맞췄던 이민기는 이번 영화에선 박성웅과 함께한다. 물론 이태임과의 정사 장면이 화제가 되긴 했지만, 이민기와 갈등을 일으키면서 영화를 이끌어가는 한 축은 박성웅이다. 호흡에 대해서 묻자 이민기는 웃기부터 한다. 궁금해하자 "(호흡이) 어땠을 것 같으냐"고 되물으면서 박성웅과의 함께한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연기 호흡은) 이번 작품을 통해서 처음 만났는데 좋아도 '너무' 좋았어요. 현장에서 수다스러운 정도였죠.(웃음) 말하지 않아도 서로 알고 눈빛도 봐도 알았죠. 오히려 남자끼리어서 편했던 것 같아요. 소통 자체가 원활했죠. 사실 편한 것도 여배우보다 훨씬 편해요."
로맨스물에서 두각을 보였던 이민기는 최근 몇 편을 통해서 다양한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 하지만 본인은 변신이라고 말하는 것이 부담스럽단다. 배우라면 당연히 익혀야 하고 연기해야 하는 부분인데 제 나이에 맞게 찾은 것이라는 것. 이민기의 말을 듣다 보니 이해가 가는 대목이다.
"장르와 캐릭터의 변화를 느끼고 싶긴 해요. 하지만 억지로 변화해야겠다고 하는 것은 아니에요. 좋은 작품이 인연이 됐고 제 나이에 어울린다고 생각했어요. 아마 '황제를 위하여'도 제가 조금 더 어렸을 때, 20대 때 받았다면 아마 쉽게 한다고 하지 못했을 것 같아요. '몬스터'도 마찬가지였죠. 센 캐릭터라도 '몬스터'와 '황제를 위하여'는 완전히 다른 면이 있으니까요. 차기작은 '내 심장은 쏴라'에요. 휴먼 드라마 장르죠. 저에게 어울리고 새롭게 무언가를 할 수 이는 장르면 다 하고 싶어요."
30대에 들어선 이민기의 취미는 몇 년 전까지 친구 그리고 술이었다. "마치 영화 '아저씨'의 대사처럼 '오늘만 산다' 는 느낌으로 살던 때였어요. 경험이 쌓이고 출연편수를 늘리면서 자연히 혼자 지내는 시간이 많아졌죠. 지금은 20대가 아니니까요.(웃음) 출연 작품을 결정하고 그에 필요한 책을 읽고 영화를 보며 연기를 준비하는 일이 이젠 더 재미있다고 느껴요. 내게 정말 행복한 일은 연기라고 생각해요."
이민기는 차기작으로 '내 심장을 쏴라'로 정하고 전북 전주에서 한창 촬영하고 있다. '내 심장을 쏴라'는 정유정 작가의 동명 소설을 스크린에 가져온 작품으로 정신병원이 배경이다. 여진구와 호흡을 맞추는 이민기는 또 새로운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을 것 같다며 웃는다.
"그동안 한 작품 중에 어떤 캐릭터가 잘 맞는 것 같으냐는 질문에는 답하기 어려워요.(웃음) 지금 '퀵'을 보면 '그때는 어떻게 저렇게 능청스럽게 했지'라는 생각이 들고 얼굴이 붉어질 때도 있어요. 아마 '내 심장을 쏴라'를 찍고 '황제를 위하여'나 '몬스터'를 본다면 '어떻게 저렇게 잔인하게 했을까'라는 생각이 또 들 것이에요. 단지 저는 그 작품에 몰입할 때 가장 저답다고 느껴요. '내 심장을 쏴라' 역시 그런 마음으로 촬영하려고요. 배경이 정신병원인데 장소 섭외가 어려워서 전주에 있는 폐허가 된 병원에서 촬영하고 있어요. 얼마나 더운데요.(웃음) (여)진구와 저, 스태프들 모두 고생하면서 찍고 있어요. 개봉 날짜는 아직 미정이지만 이 작품에서도 새로운 이민기의 모습을 발견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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