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지연의 연예人 돋보기] 이야기꾼 장진, '하이힐'을 만든 이유
  • 성지연 기자
  • 입력: 2014.05.31 08:00 / 수정: 2014.05.31 08:50

연극, 영화, TV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장진 감독이 오는 4일 개봉하는 영화 하이힐을 차기작으로 선택하고 2년 만에 메가폰을 잡았다./이새롬 기자
연극, 영화, TV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장진 감독이 오는 4일 개봉하는 영화 '하이힐'을 차기작으로 선택하고 2년 만에 메가폰을 잡았다./이새롬 기자

[성지연 기자] "'그들'이 말하고 싶었던 메시지를 제대로 전달했는지 궁금해요."

영화감독 장진(44)이 2년 만에 새로운 작품으로 돌아왔다. 감독 외에도 시나리오 작가, 예능프로그램 PD, 진행자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며 '이야기꾼'으로 불리는 장진. 그의 눈빛이 또 한번 반짝인다.

장진 감독의 차기작은 영화 '하이힐'(감독 장진, 제작 장차앤코, 배급 롯데엔터테인먼트)이다. '하이힐'은 제작 발표 때부터 높은 관심을 불러모았다. '박수칠 때 떠나라'(2005년) '아들'(2007년)로 장진과 호흡을 맞춘 차승원이 주인공으로 나선 데다 연기파 배우 오정세 이솜 박성웅 등이 합류해 화려한 라인업을 자랑했기 때문이다. 또 60억 원 이상의 제작비는 작품의 규모를 짐작하게 하면서 팬들의 기대를 모았다.

장진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하이힐은 배우 차승원이 주연을 맡고 오정세 이솜 고경표 등이 출연한다./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장진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하이힐'은 배우 차승원이 주연을 맡고 오정세 이솜 고경표 등이 출연한다./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특히 이 영화는 지난 1996년 단편 '영웅들의 수다'로 입봉한 장진 감독이 지난 18년간 한 번도 시도하지 않았던 누아르물이다. 얼굴을 보면 선한 인상을 주는 그가 범죄와 폭력으로 상징되는 누아르 영화를 만든다고 하니 관심이 집중될 수밖에 없다. 도대체 새로운 '도전'으로 담고자 한 메시지는 과연 무엇일까.

차승원과 누아르. '몸짱 마초'를 연상케 하는 차승원이 주연으로 나선 '하이힐'은 언뜻 보기에 '진한 남자 영화'를 기대하게 했다. 하지만 베일을 벗은 '하이힐'은 트랜스젠더를 소재로 한 작품으로 반전을 선사했다. 완벽한 남자의 조건을 모두 갖췄지만, 여자가 되고 싶은 욕망을 숨긴 채 살아온 강력계 형사 지욱(차승원 분)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지욱이 진짜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겪는 이야기를 그렸다.

하이힐에서 차승원은 여자가 되고 싶은 강력계 형사 지욱 캐릭터를 맡아 연기했다./네이버 영화 하이힐-포토다이어리
'하이힐'에서 차승원은 여자가 되고 싶은 강력계 형사 지욱 캐릭터를 맡아 연기했다./네이버 영화 '하이힐-포토다이어리'

영화가 트랜스젠더를 소재로 한 작품이란 것이 밝혀진 것은 지난달 29일 영화 기자간담회를 앞둔 시점이다. 차승원이 인터뷰하며 여장을 했던 에피소드를 털어놨고 그 가운데 언급한 작품 소재는 사람들을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다.

그간 국내에서 성 소수자를 주제로 한 작품은 있었지만, 트랜스젠더와 관련한 상업 영화를 꼽자면 지난 2006년 개봉한 '천하장사 마돈나'(감독 이해영, 이해준) 정도다.

'천하장사 마돈나'는 당시 화려한 배우가 출연하거나 거대한 제작비를 들인 작품은 아니었지만, 작품성을 인정받아 평단의 호평을 이끌었다. 하지만 이후에도 성에 관한한 보수적인 시각을 가진 국내 정서상 트랜스젠더 혹은 성 소수자를 이야기하는 상업 영화가 제작되는 일은 쉽지 않았다.

장진 감독이 지난달 29일 서울 광진구 자양동 롯데시네마 건대입구에서 열린 하이힐 기자간담회에서 취재진을 향해 영화를 만든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장진 감독이 지난달 29일 서울 광진구 자양동 롯데시네마 건대입구에서 열린 '하이힐' 기자간담회에서 취재진을 향해 영화를 만든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이와 관련해 장진 감독은 지난 29일 서울 광진구 자양동 롯데시네마 건대 입구에서 열린 '하이힐' 기자간담회에서 "주위에 '여자'가 된 친구들이 많다. 언젠가 그들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라고 덤덤한 어조로 말문을 열었다. '트랜스젠더'란 단어를 지양하며 '여자가 된 사람들'이란 단어를 고집하는 그에게 '하이힐'은 남다른 작품이었다.

장진 감독은 "작품의 흥행이나 평점보다 궁금한 것은 내가 만든 '하이힐'이 그들의 이야기를 얼마나 잘 전달했는지다"라며 "'여자'인 그들이 영화를 위해 뒤에서 많은 노력을 했다. 나를 믿어준 그들에게 고맙다"면서 '하이힐'을 완성할 수 있도록 도와준 친구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표현했다.

장진을 믿고 기꺼이 여장까지 감수했던 '마초' 차승원은 "내 모습이 끔찍해서 힘들었다"고 너스레를 떨었지만, 완성된 작품을 본 그는 흐뭇한 웃음을 감추지 못 했다. 영화를 위해 눈썹을 밀고 원피스까지 입었던 차승원은 오랜 친구이자 존경하는 감독인 장진이 전달하고자 했던 '메시지의 힘'을 믿은 것이다. 이 모든 것을 기꺼이 감수했던 수고를 한 후 확인한 열매의 보람이 차승원에게 여유로운 미소를 허락한 셈이다.

하이힐 기자간담회에 나란히 앉은 장진 감독(왼쪽)과 주연배우 차승원. 차승원은 이날 장진 감독의 연출력을 믿고 트랜스젠더를 소재로 한 작품에 기꺼이 출연했다고 말했다./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하이힐' 기자간담회에 나란히 앉은 장진 감독(왼쪽)과 주연배우 차승원. 차승원은 이날 장진 감독의 연출력을 믿고 트랜스젠더를 소재로 한 작품에 기꺼이 출연했다고 말했다./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장진 감독은 '하이힐' 기자간담회에서 유난히 말이 많았다. 마무리하려는 행사에서 끝까지 마이크를 부여잡은 그는 "감독으로 일하면서 가장 낮은 자리에서 높은 곳을 올려보며 겸손하게 만든 영화가 '하이힐'이다. 상업적 득과 실을 떠나 지루할 정도로 질기게 찍었다. 보편적 가치관에서 우리가 관심을 가지지 않는 것들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연극과 영화 TV 등 편식 없이 종횡무진으로 방송계를 활동하는 장진. 다수의 영화에서 따뜻한 로맨스를, 유쾌한 코미디를, 'SNL 코리아'에선 날카로운 풍자로 한국의 대표적인 '문화 게릴라'로 손꼽히는 그가 만든 '하이힐'은 반갑기만 하다. '퀴어 장르'에 의존해야 했던 '소수자만 보는 영화'를 대중들이 즐겨 찾는 누아르란 장르로, 트랜스젠더 주인공에 대한 거부감을 차승원이란 배우로 묘하게 중화시킨 그의 재능이 영롱하게 빛난다. 그리고 그 빛은 언제나 우리와 함께했지만, 그늘에 있어야 했던 '그들'을 따스하게 비추기 때문이다.

장진 감독과 차승원이 함께 한 '하이힐'이 묵직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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