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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디즈니 애니메이션 '겨울왕국'이 흥행하며 전문 성우의 필요성과 관련해 다양한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배정한-문병희 기자, 김슬기 인턴기자 |
[성지연 기자] "성우 출신 스타는 있지만, 스타 성우는…글쎄요."
지난달 25일, 디즈니 애니메이션 '겨울왕국(감독 크리스 벅, 제니퍼 리)'의 국내 더빙을 맡아 연기한 성우 소연(41)과 나눈 대화 중 한 부분이다. 그에게 '스타 성우'가 된 기분을 물었다. 소연은 질문을 던진 <더팩트>취재진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성우.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면 목소리로만 연기하는 배우를 의미한다. 오롯이 음성으로 영화 드라마에 출연하는 이들은 '얼굴 없는 배우'로 불린다. 하지만 최근 두 명의 성우가 대중 앞에 얼굴을 내밀었다. 그들의 등장은 우연한 계기였지만, 의미있는 일이었다.
국내 개봉 애니메이션 중 최대 관객을 동원한 '겨울왕국'의 한국판 더빙 성우 소연(엘사)과 박지윤(안나)이 그 주인공이다. 최근 작품의 흥행 덕분에 갑작스러운 인기를 누리게 된 그들은 수많은 인터뷰 요청과 방송 출연 섭외를 받고 있다. 하루아침에 스타가 된 그들은 뜨거운 대중의 관심에 본업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할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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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즈니 애니메이션 국내 더빙에서 엘사 역을 맡은 성우 소연./김슬기 인턴기자 |
지난 25일 엘사 목소리를 연기한 성우 소연을 만났다. 소연은 최근 자신에게 생긴 변화에 대해 "엄청난 인기는 아니라 민망하다"며 수줍게 웃었다. 이어 "하지만 중요한 부분은 본업으로 이름을 알릴 수 있는 계기가 된 것 이다"고 힘줘 말했다. 이어 "성우를 전문으로 하는 후배들에게 조금이나마 힘이 되는 일이 아닐까 싶다"고 설명했다.
소연의 말투는 부드러웠지만 뼈가 있었다. "성우 출신 스타는 있었지만, 스타 성우는 없었다"는 말이 그랬다. 그리고 전문 성우들이 '스타성'에 대해 언급할 수 밖에 없는 이유 또한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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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다양한 국내 애니메이션 개봉작들이 흥행을 위해 전문 성우가 아닌 연예인을 목소리 배우로 선택한다./영화 '슈퍼배드2', '에픽:숲속의 전설', '모모와 다락방의 수상한 요괴들', '프리버즈' 프로모션 스틸 |
최근 애니메이션 더빙 시장은 '공채 성우'타이틀이 민망할 정도로 전문 성우들의 참여율이 저조했다. 연예인들의 더빙작업은 지난 2010년부터 활성화됐고 그 탓에 전문 성우들은 설 자리를 잃었다. 그전에는 주로 전문 성우들이 맡아 했던 목소리 연기가 개그맨 아이돌 배우들에게 돌아갔다. 규모가 적은 수입 애니메이션은 더욱 그랬다. 작품의 홍보를 맡은 홍보사들은 홍보 효과를 의식할 수밖에 없었고 아이들이 좋아하는 개그맨을 캐스팅해 유행어를 삽입하는 파격적인 시도(?) 또한 서슴지 않았다.
홍보사의 예상은 적중했다. 연예인의 이름이 들어간 작품은 전문 성우의 이름이 들어간 작품보다 관심을 끈 것이다. 영화와 별도로 개그맨이 부른 노래가 부가 콘텐츠로 부수적인 수익을 올리며 효자 노릇을 했다. 그럴수록 성우업계엔 불만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하지만 불만을 들어주는 이는 없었고 성우들은 스스로 '전문직' '프로'라고 불렀지만, 프로보다 '아마추어'의 목소리는 더 비싼 값을 받았다.
영화 '도가니(감독 황동혁)'로 얼굴을 알린 배우 장광(62)과 tvN 예능프로그램 'SNL 코리아'에서 섹시한 이미지로 화제를 모은 방송인 서유리(29)는 대표적인 성우 출신 스타다. 그들은 여전히 방송활동과 성우를 병행하고 있지만, 이들의 주요 수입원은 본업이 아닌 '부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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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7년 KBS 15기 공채 성우로 데뷔한 장광. 그가 목소리 배우로 참여한 애니메이션 작품 수만 100편에 달한다./문병희 기자 |
1977년 KBS 15기 공채 성우로 데뷔했던 장광. 올해로 데뷔 37년 차인 그가 지난해 SBS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해 했던 말이 생각난다. 목소리 배우로 참여한 작품 수는 애니메이션 작품만 100편이 훌쩍 넘는 장광이였지만, 그는 생활고에 시달렸다.
장광은 "성우로 일한 지 36년 정도 됐는데 당시 외화 더빙이 가장 큰 수입이었다. 하지만 IMF가 오면서 외화 수입이 반으로 줄기 시작했고 거기에 투자했던 부동산도 잘 안됐고 사기도 당해 생활고에 시달렸다"고 털어놨다. 이어 "성우를 병행하기 위해 탑차 운전면허를 땄다"고 설명했다. 그는 "현재도 빚이 남아 있는 상태지만, 영화 '도가니'와 다수의 드라마 출연을 통해 조금씩 갚아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성우의 수입은 기본적으로 '박리다매'다. 많은 작품에 출연해야만 일정 이상의 수입이 보장된다는 말이다. 애니메이션 프로덕션 관계자는 "연예인들이 목소리 녹음에 참여해 받는 수입과 전문 성우가 받는 비용이 크게 10배 이상 차이가 난다"고 귀뜸했다.
'겨울왕국'의 흥행과 더불어 수입이 크게 늘었느냐 질문에 소연은 "그렇지 않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이번 계기로 적정한 기준이라도 세우는 것을 바라고 있는데 그것 또한 여의치 않다"며 고개를 저었다. 공채 성우로 출발해 프리랜서로 활동하고 있는 그들에겐 적정 기준이 없는 탓이다. 체계화된 매니지먼트도 없을뿐더러 시스템도 없다. 일본처럼 스타 성우가 대규모 팬덤을 이끄는 것은 이들에겐 '꿈'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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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내 전문 성우들에겐 체계화된 시스템이나 적정 기준이 없는 탓에 수입 보장이 힘들다./더팩트DB |
하지만 갑작스러운 '겨울왕국'의 등장이 성우 출신 스타가 아닌 스타 성우 두 명을 만들었다. 아직은 조심스럽고 작은 시작에 불과하지만, 긍정적인 변화인 것은 분명하다. 소연은 "성우는 긴 시간 훈련이 필요한 직업이다. 정확한 발음과 전달력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며 "목소리 배우라는 자부심, 후배들에게 좀 더 좋은 길을 열어주고 싶은 마음이 요즘 열심히 인터뷰하게 만든다"며 활짝 웃었다. 목소리 대신 얼굴을 내민 소연, 성우를 하기 위해 탑차 면허를 땄던 장광, 방송활동을 하지만 여전히 마음 속 1순위 직업은 성우라던 서유리.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목소리로 연기하는 배우들의 변화를 응원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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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팀 ssent@tf.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