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S탐사보도-달라진 스턴트맨 세계③] 정두홍 "액션스쿨은 천국, 스턴트는 내 모든 것" (인터뷰)
  • 성지연 기자
  • 입력: 2013.07.20 10:42 / 수정: 2013.07.20 13:41

정두홍 무술감독이 18일 <더팩트>과 진행된 사진 촬영에서 밝게 웃고 있다./파주=배정한 기자
정두홍 무술감독이 18일 <더팩트>과 진행된 사진 촬영에서 밝게 웃고 있다./파주=배정한 기자


[파주=성지연 인턴기자] "인터뷰 좀 그만하고 싶어요. 우리 스턴트 이야기 말고 다른 이야기 하면서 놀까요?"

'액션인생 23년'. 열심히 달리고 또 달린 그를 표현하는 수식어는 다양하다. 스턴트맨 정두홍(47), 무술감독 정두홍, 그리고 배우 정두홍, 한국무술연기자협회 회장이 그것이다. 그를 만나기 전, 어떤 수식어로 그를 불러야 할지 고민했지만, 직접 만난 그는 "저요? 저는 그냥 스턴트맨이죠"라며 간단하게 자신을 정의했다.

정두홍 감독(오른쪽)이 서울액션스쿨에서 탁구를 즐기고 있다./파주=배정한 기자
정두홍 감독(오른쪽)이 서울액션스쿨에서 탁구를 즐기고 있다./파주=배정한 기자


강렬한 햇볕이 내리쬐는 19일 오후, 경기도 파주에 있는 정두홍 감독이 몸담고 있는 서울액션스쿨을 찾았다. 예술마을 헤이리 안에 있는 서울액션스쿨은 입구에 들어서자 마자, 땀 냄새가 물씬 풍겼다. 그 안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탁구를 즐기고 있는 정두홍 감독이 취재진을 가장 먼저 맞이했다. 강한 인상과 달리 함박웃음으로 인사를 건네던 정두홍은 "인터뷰는 재미없는데, 우리 시원한 커피나 마시면서 재미있는 이야기나 합시다"라며 특유의 너스레를 떨었다. 자신을 'B급 인생을 사는 스턴트맨'이라고 정의하는 정두홍 감독과 함께 나눈 다양한 'A급' 이야기를 이제부터 풀어보고자 한다.

◆ "서울액션스쿨이요? 매일 출근하지 않으면 죽을 거 같아요"…'천국 같은 곳'

경기도 파주 예술마을 헤이리에 있는 서울액션스쿨 전경./배정한 기자
경기도 파주 예술마을 헤이리에 있는 서울액션스쿨 전경./배정한 기자


-서울 액션스쿨은 어떤 곳인가요? 간단히 설명해주세요.

천국이죠(웃음). 액션스쿨을 운영한 지 16년 정도 돼가요. 지금은 경기도 파주에 있지만 처음 시작한 곳은 서울 보라매 공원 근처 체육관이었어요. 무료로 액션수업을 받을 수 있게 운영되죠. 스턴트맨과 액션배우들을 양성하는 곳입니다. 나의 모든 땀과 추억이 담겨있는 곳이죠.


-서울액션스쿨에 매일 출근하시나요?

스케줄이 없으면 거의 매일 출근합니다. 액션스쿨에 안 오면 제가 죽을 것 같아서요(웃음). 사실 현장에 있는 것보다 여기서 지내는 것이 좋아요. 액션스쿨에 와서 축구도 하고 탁구도 하고 여러 가지 운동을 즐기죠. 교육생들이 가고 난 오후 시간에는 2시간에서 3시간 정도 혼자 운동을 하고요. 교육생들을 지도하러 오는 건 아니에요. 젊은 친구들이라 세대 차이가 나거든요(웃음). 제가 여기 '대장'이니까 후배들이 저를 무서워하기도 합니다. 사실 '이빨 빠진 호랑이'인데 말이죠(웃음).

정두홍 무술감독은 진한 아메리카노나 에스프레소를 즐겨 마신다. /파주=배정한 기자
정두홍 무술감독은 진한 아메리카노나 에스프레소를 즐겨 마신다. /파주=배정한 기자


-커피를 진하게 드시네요.

에스프레소를 즐겨 마셔요. 그런데 보는 사람마다 의아해하고 의심하더라고요(웃음). 커피숍에 가서 에스프레소를 시키면 '에스프레소가 뭔지 아시죠?'라고 재차 묻습니다. 지금은 알아보시는 분들이 꽤 많아서 덜한 편이죠. 험악하게 생긴 외모 때문에 그런 거 같은데 그럴 때마다 당황스럽네요.

-직접 만나보니 부드러운(?) 남자네요. 가정에서도 좋은 아빠, 좋은 남편인가요?

'좋은 아빠'인지 잘 모르겠어요. 같이 살아보세요. 굉장히 힘들어요(웃음). 집에서 엄청나게 두드려 맞는 아빠입니다. 지금 아들이 6살이랑 4살짜린데 나를 닮아 그런지 굉장히 거칠거든요. 일이 없는 날에는 나를 들어 눕혀놓고 때리면서 놀아요.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나 곁들이자면, 큰 아이가 요새 태권도를 배워서 집에서 열심히 연습하고 있어요. 그걸 보고 있다가 '그렇게 하는 게 아니고 이렇게 하는 거야'라면서 동작을 보여줬더니 큰 아이가 의외라는 표정으로 '오~'라고 감탄을 해주더라고요(웃음). 그때 얼마나 웃기던지…. 아이들에게는 태권도 관장님, 사범님이 제일 무서운 사람이에요. 아빠는 아니에요. 그래서 나도 '너희 말 안 들으면 관장님에게 이른다'라며 협박을 하죠.

◆ '스프링 두' 정두홍, 할리우드 한복판에서 '한국 액션'을 알리다.

영화 레드:더 레전드 촬영 당시 배우 이병헌, 브루스 윌리스, 정두홍(왼쪽부터)./레드:더 레전드스틸 컷
영화 '레드:더 레전드' 촬영 당시 배우 이병헌, 브루스 윌리스, 정두홍(왼쪽부터)./'레드:더 레전드'스틸 컷

-목표라고 하셨던 '할리우드' 진출에 대한 꿈을 이루셨습니다. 진출해보니 어떤가요?

저를 질투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힘들었어요. 그런데 이해는 돼요. 내가 만약 현지 무술감독인데 한국의 배우가 스턴트 더블을 데리고 와서 그 사람이 뭔가를 창조하거나 정해진 합을 바꾸면 시쳇말로 재수 없잖아요(웃음). 나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현지 프로듀서나 감독, 배우들이었어요. 현지 코디네이터들은 다들 나를 싫어해요. 경쟁상대니까요. '굴러 온 돌이 박힌 돌 빼낸다'고 생각하더라고요.

-이병헌 씨와 '레드:더 레전드'와 '지.아이.조2'까지 함께 작업했네요. 에피소드가 있나요?

병헌이가 인터뷰할 때 그런 이야기 안 하던가요? 저랑 많이 티격태격했어요(웃음). '레드:더 레전드' 촬영할 때, 제가 바꾼 액션 장면을 병헌이가 "형, 그건 아닌 거 같다"라고 충고하더라고요. 속상했어요. 담배를 뻑뻑 피우고 병헌이에게 찾아갔죠. 찾아가서 솔직하게 말했어요. "병헌아, 내가 네 연기 가지고 말 안 하잖아. 왜냐면 네가 전문가니까. 그런데 액션만큼은 내가 전문가니까 내 자신감을 지켜줘!"라고 했어요(웃음). 둘이 그렇게 차에서 티격태격하고 있으니까 현지 매니저가 초등학생들이 싸우는 것 같다면서 비웃더라고요.

정두홍 무술감독의 대표작 4편.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짝패 아라한, 장풍대작전 피도 눈물도 없이(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영화 포스터
정두홍 무술감독의 대표작 4편.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짝패' '아라한, 장풍대작전' '피도 눈물도 없이'(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영화 포스터

-미국 현장이랑 한국 현장이랑 많은 차이가 있나요?

가장 큰 차이점은 장비예요. 이번에 미국에 가서 장비 사진만 엄청나게 찍어 왔어요. 기자님도 생각해 보세요. 인터뷰하면서 노트북이 필요하죠? 노트북 성능이 좋으면 욕심나잖아요. 그거와 같아요. 액션장면을 안정감 있게 촬영할 수 있는 하는 고가의 '신비스러운' 장비들이 정말 많아요. 한국에서 좋은 장비를 빌리려면 200만 원에서 300만 원이에요. 비싸서 잘 못 빌리죠. 그런데 미국은 달라요. 장비들을 쌓아놓고 촬영하더라니까요. 한국은 장비를 다 수입하기 때문에 열악할 수밖에 없어요. 수입도 단가가 맞아야 장비를 들여오는데 단가가 안 맞아서 못 들여오는 장비들이 많아요. 정말 부럽더라고요. 그런 장비가 국내에도 제대로 갖춰 치면 질 좋은 액션영화가 나올 수밖에 없죠.

-한국 액션 vs 할리우드 액션, 어떻게 다른가요?

할리우드 액션은 간단하고 정확해요. 그래서 할리우드 액션이 좀 더 쉽죠. 미국에 가서 액션 배우를 한다면 나이 60을 먹어도 가능할 것 같아요(웃음). 반면 한국 액션 스타일은 미국의 정확한 느낌보다 생동감을 중요시하죠. 쉽게 말하자면 한국 감독들은 액션 신을 찍을 때, "좀 더 악써라!"고 주문하는 반면 미국은 '합'을 중요시해요. "내가 때리면 넌 왼쪽으로 피하고 넘어져" 라는 식이죠. 그래서 '몸의 감정'을 중요시하는 제 액션을 보고 현지 사람들이 많이 놀랐어요. "실제로 싸우는 줄 알았다"고 말하더라고요(웃음). 하지만 액션 연기라는 게 정확도보다는 실감 나게 표현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을 해요.

◆ 정두홍이 말하는 스턴트 맨, 그리고 액션

정두홍은 1990년 장군의 아들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다양한 영화에 무술감독은 물론 배우로서 활약한 바 있다./짝패 스틸컷, 1번 가의 기적스틸 컷
정두홍은 1990년 '장군의 아들'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다양한 영화에 무술감독은 물론 배우로서 활약한 바 있다./'짝패' 스틸컷, '1번 가의 기적'스틸 컷


- '스턴트맨', 혹은 '무술 연기자', 무엇으로 불리길 바라나요?

무술 연기자요(웃음)? 저는 그냥 스턴트맨으로 불러주세요. 스턴트맨인데 가끔 배우라는 소리를 들을 때도 있긴 하죠. 하지만 제 본질은 스턴트맨이에요. 제가 후배들을 교육할 때 '너희는 스턴트 연기자다'라고 표현은 해요. 몸으로 연기하는 직업이잖아요. 그리고 작은 역이라도 표정 연기를 해야 할 경우도 있고요. 하지만 제가 걱정되는 부분은 스턴트맨 본래의 직분을 잃고 자신을 배우로 단정해버리는 후배들이에요.

예를 들어 어떤 작품에서 17:1로 싸우는 장면이 있다고 생각해 봅시다. 스턴트를 하는 사람은 거의 17명의 악역 중 한 명이고 1을 맡은 이는 주인공이겠죠. 그런데 스턴트맨이 마음 속으로 계속 그 한 명의 주인공을 하고 싶어하는 거죠. 저는 그런 후배들을 볼 때마다 안타까워서 가끔 '그러지 말라'고 이야기해요. 하지만 아직은 어려서 그말이 무슨 말인지 모르는거 같아요(웃음). 직접 와닿지 않으니까 말을 잘 안 듣죠.


-스턴트맨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은 많이 달라진 것 같아요. 처우 또한 변화했나요?

처우요? 음, 그건 자기가 하는 것에 따라 달린 거 같아요. 좋은 처우를 받고 싶으면 비단 스턴트맨뿐 아니라 자기가 맡은 일을 열심히 해서 최고가 되는 수밖에 없어요. 프로가 뭔데요. 자기 몸값을 자기 스스로 결정하는 게 프로죠. 사실 슬픈 일화가 있어요. 2002년도였어요. 한창 액션 훈련을 받던 후배였는데 지방에서 올라와서 방값을 내느라고 밥 먹을 돈이 없었나 봐요. 훈련 도중에 힘들다고 해서 병원에 데려갔는데 영양실조라고 하더라고요. 그때 기분은…. 미쳐버리는 줄 알았죠. 그때부터 아이들 점심을 액션스쿨에서 챙겨 먹었어요. 그러니까 돈이 금방 떨어지더라고요(웃음).

무료로 액션 스쿨을 운영하지만, 차비가 없어서 오지 못하는 교육생들도 많아요. 무도 종목은 돈이 없는 사람들이 많이 하잖아요. '헝그리 복서'라고 하죠? 지금도 마찬가지예요. 그래서 액션스쿨에 들어오고 싶다고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항상 물어요. "너 돈 많니?"라고요(웃음). "차라리 다른 일을 찾아봐라"라고 말하죠. 6개월 동안 훈련을 하고 힘들게 고생했는데 별 볼일 없으면 시간이 아깝잖아요.

정두홍 감독은 노력 없이 얻는 대가를 원하지 않는다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배정한 기자
정두홍 감독은 노력 없이 얻는 대가를 원하지 않는다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배정한 기자


-액션이란 정두홍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오나요?

삶이죠. 나에게 액션이란 것을 빼앗으면 금방 죽을 거 같아요. 어느 순간부터 나도 모르게 확고해졌어요. 때로는 힘들기도 하고 아프고 고통스럽지만, 뼈가 부러지고 갈리는 소리를 듣고 있어야 내가 맡은 책임을 완수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인생이란 것 자체가 쉽지 않은 여정이에요. 저는 노력 없이 얻는 대가도, 쉽게 사는 것도 원치 않아요. 저 자신을 사랑하는 저만의 방법이에요. 인간은 소모품이 아니잖아요. 앞으로도 열심히 살아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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