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 등 3명 명예훼손·업무방해 고소
운용업계 주주활동 위축 우려

[더팩트|윤정원 기자] 태광산업이 2대주주 트러스톤자산운용의 공개 질의에는 답하지 않은 채 운용사 대표 등 3명을 형사고소했다. 회신 시한인 지난 3일까지 트러스톤이 받은 답변이나 자료는 한 건도 없었다.
8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트러스톤은 지난달 3일 태광산업 이사회와 이사 전원에게 공개주주서한을 보내 10개 사항을 질의하고 5개 조치를 요구했다. 답변 기한은 서한 수령일로부터 30일이었다. 그러나 기한이 지난 현재까지 공식 회신은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질의는 경영지원협의체가 어떤 근거로 설치됐고 누가 참여하는지부터 시작한다. 협의체가 태광산업의 인력·비용을 지원받았는지, 주요 투자와 인수합병(M&A), 교환사채 발행, 기업가치 제고계획 등이 이사회 심의에 앞서 협의체에서 논의됐는지도 물었다. 이호진 전 회장의 협의체 관여 여부와 경영자문계약, 태광산업의 미공개 중요정보가 협의체에 전달됐는지도 질의 대상에 포함됐다.
◆ 답변 대신 대표 2명까지 고소…'업무방해' 이유는
그러나 트러스톤의 질의에는 별도 회신을 하지 않은 채 태광산업은 형사 대응에 나섰다. 지난달 14일 황성택·이성원 트러스톤 대표 등 3명을 명예훼손과 업무방해 혐의로 경찰에 고소했다. 공개서한에 허위 내용이 담겼고 이를 통해 회사와 이사들의 명예를 훼손하는 동시에 정상적인 경영활동을 방해했다는 주장이다.
태광산업은 트러스톤이 현재 존재하지 않는 '경영협의회'를 그룹 경영을 좌우하는 조직처럼 표현한 점을 허위라고 지목했다. 과거 경영협의회는 지난해 8월 경영지원협의체로 명칭을 변경했고, 현 협의체는 계열사 간 협력을 위한 조직일 뿐 개별 계열사의 경영 의사결정을 대신하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김기유 전 경영협의회 의장 재임 당시 상황을 현재까지 이어지는 것처럼 표현했다는 점도 문제 삼았다.
고소 사유에는 트러스톤이 회계장부 열람·등사와 주주대표소송, 임시주주총회 소집 청구 등을 언급한 대목도 포함됐다. 태광산업은 경영협의체의 개입과 이사회의 방치를 기정사실화한 뒤 이 같은 조치를 거론해 이사들을 압박했고, 자유롭고 독립적인 기업활동과 이사회 업무를 방해했다고 주장했다.
태광산업은 <더팩트> 측에도 고소 이후 특별히 달라진 내용은 없다고 밝혔다. 트러스톤이 요구한 사항에 향후 회신할지, 회계장부 열람·등사 요구가 들어올 경우 관련 자료를 제공할지에 대해서는 "정해진 바가 없다"는 입장이다.
◆ 장부 열람·등사로 번지나…상법이 보장한 주주권
금융투자업계에서는 회신 시한이 끝난 만큼 트러스톤이 후속 절차 가운데 회계장부 열람·등사 청구에 우선 나설 것으로 보고 있다. 앞서 거론한 임시주총 소집이나 주주대표소송 등 다른 절차까지 이어질지는 아직 지켜봐야 한다는 분위기다.
회계장부 열람·등사는 행동주의 운용사가 임의로 만든 압박수단이 아니라 상법에 규정된 소수주주권이다. 상법 제542조의6은 6개월 전부터 상장회사 발행주식 총수의 0.1% 이상을 계속 보유한 주주에게 회계장부 열람·등사 청구권을 인정한다. 일정 규모 이상 상장사는 기준이 0.05%까지 내려간다.
물론 주주라고 해서 원하는 자료를 제한 없이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청구인은 열람·등사가 필요한 이유를 구체적으로 적어야 하고, 회사는 청구 목적이 부당하다는 점 등을 입증해 거부할 수 있다. 장부 공개를 놓고 이견이 생기면 청구 목적과 범위의 적정성을 법적으로 다투는 구조다.
트러스톤은 이 같은 권리를 행사할 지분과 보유기간을 크게 웃돈다. 2021년 6월 태광산업 지분 5.01%를 확보해 대량보유 사실을 공시했고, 2022년 12월에는 투자 목적을 '일반투자'에서 '경영참여'로 변경했다. 그 사이 태광산업 경영진과 수차례 면담하고 현금성 자산 활용과 주식 유동성 확대, 배당정책, 정기적인 IR 등을 요구했다.
주주활동 수위도 지속적으로 높여왔다. 2023년 정기주총에서는 주당 1만원 현금배당과 액면분할, 50억원 규모 자사주 취득 등을 주주제안했고, 2024년에는 사내이사와 감사위원 선임안을 제안했다. 올해 들어서도 2월과 7월, 9월 세 차례 태광산업을 상대로 공개서한을 냈다. 이번 질의가 갑작스럽게 시작된 일회성 문제 제기는 아닌 셈이다.
◆ 당국은 "더 적극적으로"…형사고소가 만든 엇박자
형사고소 대상이 운용사뿐 아니라 대표 등 개인으로까지 확대됐다는 점은 업계에서도 부담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기업과의 의견 충돌이 운용사 임직원에 대한 형사고소로 이어지는 사례가 반복되면 공개서한과 자료 요구 등 주주활동이 위축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규모가 작은 운용사일수록 수사 대응에 들어가는 비용과 인력, 법무·컴플라이언스 부담까지 고려해야 해 적극적인 주주권 행사에 나서기 어려워질 것"이라고 봤다.
상장사가 주주활동을 문제 삼아 운용사 임직원을 형사고소하는 방식은 최근 금융당국이 기관투자자에게 요구하는 방향과도 맞지 않는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3월 기관투자자가 기업가치 제고를 위해 보다 적극적인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주주활동 관련 법령해석을 구체화했다. 주총 안건의 조기 공시를 요구하거나 구체적인 설명을 요구하는 활동, 자기주식 소각이나 배당정책에 의견을 내는 행위 등이 원칙적으로 경영권 영향 목적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점도 명확히 했다.
금융당국은 여기서 한발 더 나갔다. 이억원 금융위원장은 지난 6월 스튜어드십 코드 개정 공청회에서 국내 기관투자자의 주주활동이 여전히 소극적인 의결권 행사에 그친다는 비판을 언급하면서 투자기업의 사업모델과 재무상황, 지배구조를 점검하고 지속적인 대화와 주주권 행사를 통해 기업의 변화를 이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당시 스튜어드십 코드에는 4대 연기금과 141개 운용사를 포함해 모두 257개 기관투자자가 참여하고 있었다.
스튜어드십 코드 발전위원회는 이어 지난 7월 24일 2016년 도입 이후 10년 만의 첫 전면 개정안을 최종 의결했다. 기관투자자의 수탁자 책임 활동 범위를 넓히고 이행 수준을 점검하는 체계를 강화하는 게 골자다. 금융위도 지난달 28일 유엔 책임투자원칙(PRI) 측과 만나 이번 개정을 주요 자본시장 정책으로 재차 소개했다.
한 운용업계 관계자는 "기관투자자의 정당한 주주권 행사와 회사 업무를 침해하는 행위를 어디서 구분할지에 대한 기준이 보다 명확해져야 한다"면서 "상법상 권리 행사와 맞닿아 있는 행위까지 형사 문제로 번질 경우 운용사와 기업 모두 판단 기준이 불명확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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