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사모펀드] KKR, 韓 투자 사상 최대…AI 공급망에 몰리는 글로벌 자본
  • 박지웅 기자
  • 입력: 2026.09.27 10:30 / 수정: 2026.09.27 10:30
해시드, 3억달러 스테이블코인 신용펀드 참여
어펄마, 세아FSI 1550억원에 매각…투자금 회수
글로벌 사모펀드(PEF)의 한국 투자가 빠르게 늘어나는 가운데 AI 인프라와 스테이블코인 등으로 투자처가 확대되고, 국내 M&A 시장에서는 투자금 회수 움직임도 이어지고 있다. /더팩트DB
글로벌 사모펀드(PEF)의 한국 투자가 빠르게 늘어나는 가운데 AI 인프라와 스테이블코인 등으로 투자처가 확대되고, 국내 M&A 시장에서는 투자금 회수 움직임도 이어지고 있다. /더팩트DB

[더팩트ㅣ박지웅 기자] 글로벌 사모펀드(PEF)의 한국 투자가 빠르게 늘고 있다. 인공지능(AI) 산업 성장으로 반도체뿐 아니라 데이터센터와 전력 등 관련 인프라 전반에 투자 기회가 확대되면서 글로벌 운용사들의 자금이 국내 시장으로 향하는 모습이다. 가상자산 시장에서는 스테이블코인을 활용한 사모신용 시장이 새로운 투자처로 부상했고, 국내 인수합병(M&A) 시장에서는 어펄마캐피탈이 세아FSI 매각에 나서며 투자금 회수에 속도를 냈다.

◆ KKR, 올해 한국에만 4조원대…AI 인프라 추가 투자 '눈독'

27일 투자은행(IB) 업계 등에 따르면 올해 들어 글로벌 PEF의 한국 투자는 역대 최고 수준에 근접하고 있다.

글로벌 대체투자 데이터업체 프레킨에 따르면 이달 초 기준 한국 사모펀드 투자 규모는 약 370억달러(약 50조8000억원)로 집계됐다. 아직 한 해가 끝나지 않았지만 기존 연간 최대 기록인 2021년 414억달러의 약 90% 수준까지 올라온 셈이다.

글로벌 운용사들이 한국에 주목하는 배경에는 AI 산업의 급성장이 자리하고 있다. AI 투자 열풍이 반도체 기업에 그치지 않고 데이터센터와 전력·에너지 등 인프라 전반으로 번지면서 관련 기업에 대규모 자금을 투입할 여지가 커졌기 때문이다.

이 같은 흐름의 선두에는 글로벌 PEF 운용사 KKR이 있다. KKR은 올해 한국 시장에 약 30억달러(약 4조1000억원)를 투자했다. KKR의 연간 한국 투자액 가운데 역대 최대 규모다. 한국은 올해 투자액을 기준으로 KKR의 아시아·태평양 주요 투자시장 3곳 중 하나로 올라섰다.

대표적인 투자는 삼성SDS다. KKR은 올해 삼성SDS가 발행한 전환사채(CB)에 약 8억8000만달러(약 1조2000억원)를 투자했다. 단순 재무적 투자에 그치지 않고 향후 M&A와 자본 배분, AI 사업 확대 과정에서 협력하는 내용도 거래에 포함됐다.

데이터센터에도 대규모 자금을 투입했다. KKR은 국내 펀드들과 함께 SK텔레콤의 신설 데이터센터 사업에 총 3조800억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AI 서비스 확대와 클라우드 사용 증가로 데이터센터 수요가 늘어나는 상황에서 관련 인프라를 선점하려는 행보로 풀이된다.

KKR은 추가 투자처로 전력과 재생에너지 분야도 주시하고 있다. AI 데이터센터 확대에 따라 안정적인 전력 확보가 핵심 과제로 떠오른 데다 반도체·제조업 기업들의 청정에너지 수요도 함께 증가하고 있어서다.

박정호 KKR 한국 대표 파트너는 국내 기업들이 사업 포트폴리오를 재편하고 핵심 사업에 자본을 집중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투자 기회가 만들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KKR 역시 기업들과 협력을 확대하며 추가 투자 기회를 발굴한다는 방침이다.

한국 시장을 향한 글로벌 PEF의 움직임은 KKR에 그치지 않는다. 블랙스톤은 이달 ESR그룹과 함께 국내 물류센터 과반 지분을 인수했고, 칼라일그룹은 지난 6월 청호그룹 인수에 합의했다. TPG 역시 지난달 롯데렌탈 경영권 지분 인수에 나서는 등 대형 글로벌 운용사들의 국내 투자가 이어지고 있다.

시장에 유입되는 자금이 늘면서 좋은 투자처를 확보하기 위한 운용사 간 경쟁도 한층 치열해질 전망이다. 단순히 자금력을 앞세우기보다 차별화된 투자 대상을 발굴하고 복잡한 거래를 성사시키는 역량이 중요해지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해시드가 스테이블코인 기반 사모신용 펀드를 운용하는 토로 캐피탈 매니지먼트에 앵커 투자자로 참여하며 가상자산 사모신용 시장 공략에 나섰다. /해시드
해시드가 스테이블코인 기반 사모신용 펀드를 운용하는 토로 캐피탈 매니지먼트에 앵커 투자자로 참여하며 가상자산 사모신용 시장 공략에 나섰다. /해시드

◆ 해시드, 3억달러 스테이블코인 신용펀드에 베팅

전통적인 PEF 시장에서 AI 인프라가 투자처로 떠오르고 있다면 가상자산 시장에서는 스테이블코인을 활용한 사모신용이 새로운 영역으로 부상하고 있다.

가상자산·테크 벤처캐피탈(VC) 해시드는 스테이블코인 기반 사모신용 펀드를 운용하는 토로 캐피탈 매니지먼트에 앵커 투자자로 참여했다. 토로 캐피탈은 총 3억달러(약 4000억원) 규모의 펀드를 조성해 가상자산 기업과 기관을 대상으로 달러 연동 스테이블코인 대출을 제공할 예정이다.

토로 캐피탈은 퍼더 벤처스 공동 창업자이자 전 매니징 파트너인 모하메드 함디가 설립했다. 함디 대표는 VC와 PE 업계에서 약 20년간 경력을 쌓으며 중동과 아시아, 미국 등에서 투자 경험을 축적했다.

이번 펀드는 가상자산 업계의 자금 조달 공백을 공략한다. 전통 금융회사들은 규제와 리스크 관리 등의 이유로 가상자산 기업에 대한 신용 공급에 상대적으로 소극적이다. 가상자산 시장 내 대출도 코인 등을 담보로 잡는 방식이 대부분이어서 기업의 재무상태가 양호하더라도 담보를 제공하거나 높은 금리를 감수해야 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토로 캐피탈은 담보 가치에 주로 의존하는 기존 방식에서 벗어나 기업의 재무지표와 경영 약정 등을 평가해 대출 여부를 결정하는 방식을 적용한다. 스테이블코인을 활용하되 전통 사모신용 시장의 기업 대출 심사 체계를 접목하는 방식이다.

해시드는 자금 출자뿐 아니라 토로 캐피탈의 글로벌 사업 확대에도 참여할 예정이다.

홍성욱 해시드 파트너 겸 최고재무책임자(CFO)는 "디지털자산 시장의 인프라는 이를 뒷받침하는 신용 시스템보다 훨씬 빠르게 성숙했다"며 "대출 심사에는 축적된 경험과 깊이 있는 시장 판단력이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 어펄마, 세아FSI 1550억원에 매각…세아 계열 투자 정리

국내 M&A 시장에서는 어펄마캐피탈이 투자금 회수에 나섰다. 어펄마캐피탈은 금속 배관 제조업체 세아FSI를 코스닥 상장사 핑거에 매각하는 주식매매계약(SPA)을 체결했다.

거래 대상은 어펄마캐피탈이 특수목적법인(SPC) 아라미스홀딩스를 통해 보유한 세아FSI 지분 100%와 해외법인을 관리하는 S&G홀딩스다. 전체 매각가는 1550억원이다.

당초 어펄마캐피탈은 지난 6월 필름콘덴서 제조업체 성호전자의 모회사인 서룡전자를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했다. 이후 서룡전자가 인수한 핑거가 최종 인수 주체로 나섰다.

핀테크 전문기업으로 출발한 핑거는 최근 M&A를 통해 제조업으로 사업 영역을 빠르게 넓히고 있다. 지난 8월에는 산업용 로봇 지능화 기업 미켈로로보틱스를 인수했다.

세아FSI 인수 이후에는 미켈로로보틱스가 보유한 피지컬 AI 기술을 실제 제조 공정에 접목하는 방안도 추진할 것으로 알려졌다. 세아FSI의 생산 현장을 활용해 제조 데이터를 축적하고 피지컬 AI 기술의 실제 적용 사례를 확보한다는 구상이다.

세아FSI는 자동차와 냉각설비 등에 사용되는 유체이송 부품을 생산하는 기업이다. 이중강관 제조기술을 기반으로 조관부터 도금·가공·검사까지 이어지는 생산 공정을 갖추고 있으며 소구경 강관(TDW) 분야에서 국내 선두권 업체로 꼽힌다.

지난해 연결 기준 매출액은 3624억원, 영업이익은 176억원을 기록했다.

이번 거래가 마무리되면 어펄마캐피탈의 세아그룹 계열 투자자산 정리도 사실상 마무리된다. 어펄마캐피탈은 앞서 세아에삽 지분 50%를 청광실업에 매각한 바 있다.

이번 주 사모자본 시장에서는 이처럼 AI 인프라로 향하는 글로벌 PEF의 대규모 자금, 스테이블코인을 활용한 새로운 사모신용 시장의 등장, 기존 포트폴리오의 엑시트가 동시에 나타났다. 투자 대상이 전통 제조업과 M&A를 넘어 AI·데이터센터·전력과 디지털자산 금융으로 빠르게 넓어지는 모습이다.

christ@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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