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공지능(AI)이 어느새 인간의 업무를 깊숙이 침범하고 있습니다. 단순 반복 업무를 넘어 인간의 고유 영역이라고 여겼던 창의성과 판단의 능력까지 AI가 장착했습니다. 인간의 일자리가 빠르게 줄어들 것이라는 공포심과 함께 생산성 혁명이라는 기대감이 엇갈립니다. <더팩트>는 [AI와 일자리] 기획을 통해 기술이 인간의 동료가 될지 아니면 인간의 대체재가 될지 짚어보고자 합니다. 거스를 수 없는 AI 혁명 속에서 우리 사회가 준비해야 할 것들은 무엇인지 그 해법을 모색하겠습니다. <편집자주>
[더팩트│황원영 기자] 수습 요리사가 수년간 땀 흘려 연마해야 했던 역동적인 웍질(팬 핸들링)을 이제는 AI 조리 로봇이 재현해낸다. 신입 변호사들이 며칠 밤을 새우며 매달리던 판례 분석과 서면 검토는 AI 법률 에이전트가 단 몇 초 만에 끝내버린다.
생성형 AI에 더해 피지컬 AI까지 본격화하면서 현재 일자리 구조와 산업 패러다임에 지각변동이 일고 있다. 기업들은 당장 눈앞의 비용 절감과 효율성을 위해 AI를 선택했고, 불과 1년새 국내 정보통신 및 전문기술 서비스업에서만 14만명의 일자리가 증발했다. 이에 고용 절벽과 노동 가치 하락에 대한 우려가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그러나 이는 위기인 동시에 기회이기도 하다. AI 로봇이 반복적인 조리 과정을 도맡음에 따라, 요리사는 레시피와 플레이팅 등 가치 노동에 집중할 수 있게 된다. 변호사는 판례를 찾는 수고 대신, AI가 추출한 핵심 쟁점을 바탕으로 논리를 구축하거나 법적 결함을 검증할 수 있다. 결국 AI는 이들을 대체하는 존재가 아닌, 전략적 파트너가 되는 셈이다.
"새로운 테크놀로지는 인간에게 편리하고 사용성이 좋다는 목적을 우선순위에 두고 개발되어야 한다…새로운 디지털 테크놀로지는 인간의 역량을 확대해 줄 수 있다. 기계의 역량이 인간을 위해 복무하게 하므로 인간의 지능을 보완한다."
2024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대런 아세모글루(Daron Acemoglu) 매사추세츠공과대학교 교수는 저서 권력과 진보를 통해 이 같이 말한다. 기술의 지향점은 인간이 더 창의적이고 복합적인 과업을 수행하도록 돕는 도구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제 AI를 인간의 대체재가 아닌, 인간의 잠재력을 끌어올릴 지렛대로 삼기 위한 사회적 설계와 공존의 해법 모색이 절실한 시점이다.


◆ 글로벌 감원 한파…예외는 없다
더팩트가 20일 국가통계포털(KOSIS) 마이크로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지난 2월 기준 '전문·과학 및 기술 서비스업'과 '정보통신업'의 취업자 수는 전년 같은 달 대비 약 14만7000명 급감했다. 두 업종 취업자가 동시에 줄어든 것은 코로나19 팬데믹 직후인 2021년 이후 5년 만이다. 감소 규모는 2013년 산업분류 개편 이후 17년 만에 가장 컸다. 해당 업종은 상대적으로 AI 노출도가 큰 분야로 꼽히는 만큼 AI 도입이 실질적 고용시장 변동을 일으키고 있다는 방증이다.
특히 사회 초년생인 청년층의 타격이 컸다. 해당 데이터에 따르면 20대, 30대 취업자는 각각 9만7000명, 3만4000명 감소했다. 전체 감소분의 약 89%(13만1000명)를 차지한다. 기초 코딩이나 초안 작성 등 저연차 업무를 AI가 대체하면서 신규 채용보다는 숙련된 경력직 중심의 고용 패턴으로 선회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국은행의 보고서 역시 이를 뒷받침한다. 한국은행이 지난해 10월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챗GPT 등장 이후 지난 3년간(2022년 7월~2025년 7월) 정보 서비스업(-23.8%), 출판업(-20.4%), 컴퓨터 프로그래밍·시스템 통합 및 관리업(-11.2%) 등 AI 활용도가 높은 산업에서 청년 고용이 일제히 위축됐다.
이 같은 현상은 국내뿐 아니라 해외 노동시장에서도 발생하고 있다. 미국 컨설팅 전문 업체 '챌린저, 그레이 앤드 크리스마스(Challenger, Gray & Christmas)'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에서 AI 관련 일자리 감원 공고는 5만4836건에 달한다. 아마존은 지난해 10월 1만4000명 감원 계획에 더해 최근에는 1만6000명을 추가로 줄이겠다고 밝혔다. 대신 AI 등 주요 부문 투자를 확대하는 '선택과 집중' 전략을 택했다. 앤디 재시(Andy Jassy) 아마존 CEO는 "AI에이전트 도입이 기업 효율성을 높이는 동시에 기존 인력의 필요성을 줄일 것"이라고 경고했다. 외에도 HSBC, UPS, 다우, 마이크로소프트 등 글로벌 기업들이 잇따라 대규모 감원 계획을 발표했다.

기술 발전의 속도는 과거 산업혁명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빠르다. MIT 연구에 따르면 AI는 이미 미국 노동시장에서 11.7%에 달하는 업무를 수행할 수 있으며 최대 1조2000억 달러 규모의 임금 비용을 대체할 잠재력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골드만삭스 역시 올해 리서치를 통해 미국 내 업무 시간 25%가 AI로 자동화될 것으로 봤다. 전 세계적으로 AI 영향을 받을 것으로 전망되는 일자리는 3억개에 달한다. 근로자들의 불안도 상당하다. 머서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근로자 40%가 AI에 의한 고용 불안을 호소하고 있다.
AI가 노동 시장에 미칠 변화를 심도 있게 전망해온 다리오 아모데이(Dario Amodei) 앤트로픽 CEO는 올해 공개한 보고서에서 AI가 도구를 넘어 화이트칼라를 포함한 인간 노동력을 광범위하게 대체할 것이라 내다봤다. 이를 방치할 경우 단기간 내 사무직 일자리의 절반이 사라질 것이라는 경고성 전망도 내놨다.
다만, 비관에서 그치진 않는다. 아모데이는 AI가 창출할 경제적 이익을 공유하기 위한 부의 재분배와 정책적 안전망 마련이 필수적이라고 역설한다.특히 국가 차원의 대규모 재교육 프로그램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제이미 다이먼(Jamie Dimon) JP모건 CEO 역시 AI로 사라지는 일자리에 대응하기 위해 정부가 지역 단위에서 재교육과 소득 지원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결국 정부와 기업이 나서 AI와 상생할 수 있는 사회적 기틀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국내에서도 법과 제도 개선 등 AI 도입에 따른 노동 충격을 완화할 사회적 안전망 구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진다. AI로 만들어 낸 부가가치를 어떻게 선순환할 것인지를 고민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 '직무 증발' 아닌 '역할 재편'…정부와 기업 공조 절실
AI와 일자리의 공존 방안을 논의하기 위한 논의도 활발하게 일고 있다. 전문가들은 AI 전환이 불가피한 흐름인 만큼, 기술을 지배하고 고부가가치를 창출할 인력을 양성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정영재 카이스트 교수는 지난 13일 고용노동부가 더불어민주당과 공동으로 진행한 토론회에서 "AI로 사라질 일자리보다 새롭게 만들어질 기회에 주목해야 한다"며 제조업 기반을 활용한 '피지컬 AI 생태계 구축'과 관련 기술 수출 등 새로운 성장동력 가능성을 제시했다. 김준하 디든로보틱스 대표 역시 "생산가능 인구 감소로 인력난이 있을 분야와 위험한 작업 등에 로봇 투입이 도움이 될 수 있다"며 "로봇과 관련된 일자리가 새롭게 창출되는 등 AI가 일자리에 부정적으로만 작용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긍정적 목소리를 냈다.
다만 이를 위해서는 초기 창업 지원과 인력 양성 등 정부·기업의 역할이 강조된다. AI 도입으로 얻은 이익을 다시 '인적 자본'에 재투자하지 않고 단순 비용 절감에만 치중할 경우, 장기적으로는 소비 주체인 노동자가 사라지는 악순환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직무 전환 지원, AI 역량 강화, 사회안전망 확충 등 정부 역할이 중요하다는 데 의견이 모인다. 일각에서는 인적 자원 투자를 '비용'이 아닌 'R&D 투자'로 보는 세제 혜택 등 제도적 지원책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직무 전환 과정이 일자리 양극화로 이어지지 않도록 정책 대응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정부는 AI를 국가 생존 전략으로 규정하고 구체적인 실행 단계에 돌입했다. 대통령 직속 국가인공지능(AI) 전략위원회는 지난 2월 발표한 '대한민국 AI 행동계획'을 통해 AI 전환에 따른 일자리 혁신과 교육격차 해소를 핵심 과제로 확정했다.
우선 고용노동부는 오는 6월 '산업전환 고용안정 기본계획'을 발표하고, 플랫폼 종사자와 프리랜서 등 사각지대에 놓인 소외 계층의 권리를 법적으로 보장하는 사회안전망 확충 방안을 구체화할 계획이다. 하반기부터는 대기업 인프라를 활용한 실무 중심의 AI 직무 교육을 생애 전 주기에 걸쳐 확대하고, 고용보험과 취업 서비스를 연계한 개인 맞춤형 경력 설계 지원체계를 본격 가동한다.
동시에 AI 활용 과정에서의 불공정을 방지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도 마련한다. 정부는 글로벌 기준에 맞춘 '노동분야 AI 윤리 가이드라인'을 수립해 알고리즘의 투명성을 확보하는 한편, 내년 2분기까지는 기술 도입에 따른 소득·기회 상실을 보전하는 '포용적 노동 전환 국가 전략'을 완성한다는 계획이다. 이는 단순한 교육 지원을 넘어 '훈련-매칭-보상'을 아우르는 전 주기적 대응 체계를 통해 AI로 창출된 부가가치를 노동자와 공유하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권창준 고용노동부 차관은 지난 10일 더팩트와의 인터뷰에서 AI 시대를 '일자리 축소가 아닌 직무 재편의 기회'로 규정하고, "입법과 정책을 집중 추진해 노동배제 없는 전환을 최우선으로 지원하겠다"고 강조했다.

◆ AI, 결국 사람이 답이다
AI를 단순한 위협으로 규정하기보다, 노동자의 역할을 '단순 실행'에서 '판단과 책임'의 영역으로 확장시킬 필요가 있다. 기술은 인간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더 본질적인 결정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돕는 파트너로 진화해야 하기 때문이다. 삼일PwC경영연구원은 "앞으로 AI를 업무에 능숙하게 활용하는 인력이 시장의 수요를 선점할 것이며, 노동의 본질이 '단순 수행'에서 '감독' 중심으로 이동할 것"이라고 짚었다.
이러한 변화는 인간 고유의 역량을 더욱 가치 있게 만든다. 세계경제포럼(WEF)은 '미래 직업 보고서 2025'를 통해 단순 반복 직무의 감소를 예견하면서도, 분석적 사고와 리더십, 공감 능력 같은 '인간 중심적 가치'가 급등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맥킨지글로벌연구소 역시 미래의 일터를 '인간과 AI, 로봇의 협업 현장'으로 정의하며, 노동자는 기술에 종속되는 존재가 아니라 AI의 결과값을 검증하고 최종 가치를 부여하는 '조율자'가 되어야 한다고 제언했다.
더팩트는 8부작 기획 시리즈를 통해 인공지능(AI)이라는 거대한 파도가 일자리 시장에 가져온 변화와 과제를 조명했다. AI 기술이 가져올 이점이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고루 돌아가기 위해서는 노동의 가치를 재정립하고 이를 뒷받침할 제도적 안전망을 구축하는 것이 시급하다. 개인의 직무 유연성과 정부의 체계적인 제도가 맞물릴 때, AI는 인간이 역량을 확장학 문제를 해결하도록 돕는 조력자가 될 수 있다. AI 혁명의 성패를 가르는 최종적인 열쇠는 결국 그 기술을 사용하고, 가치를 판단하는 '인간'의 손에 달려 있는 것이다.
<관련 기사>
[AI와 일자리①] 급격히 다가온 AI 시대, 대한민국 '일자리 구조'가 바뀐다
[AI와 일자리②] 신입사원 대신 로봇 구매…청년 고용 '빙하기 시대'
[AI와 일자리③] 대전환 앞에 선 노동시장…당장 감소보다 '직무 재편' 과도기
[AI와 일자리④] 주방·홀 차지한 로봇…외식업, 이젠 기술 기반 서비스업
[AI와 일자리⑤] 안전지대 없는 일자리…"생존 열쇠는 학습력·안목"
[AI와 일자리⑥] AI가 뒤흔든 고용환경…李정부 대응 속도전
[AI와 일자리⑦] 권창준 노동부 차관 "하반기 입법 추진…노동배제 없는 AI 전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