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공지능(AI)이 어느새 인간의 업무를 깊숙이 침범하고 있습니다. 단순 반복 업무를 넘어 인간의 고유 영역이라고 여겼던 창의성과 판단의 능력까지 AI가 장착했습니다. 인간의 일자리가 빠르게 줄어들 것이라는 공포심과 함께 생산성 혁명이라는 기대감이 엇갈립니다. <더팩트>는 이번 [AI와 일자리] 기획을 통해 기술이 인간의 동료가 될지 아니면 인간의 대체재가 될지 짚어보고자 합니다. 거스를 수 없는 AI 혁명 속에서 우리 사회가 준비해야 할 것들은 무엇인지 그 해법을 모색하겠습니다. <편집자주>
[더팩트|우지수 기자] 백덤블링하는 인간형 로봇이 공장 라인에 투입되고, 사무실에서는 AI가 몇 초 만에 회의록을 완성한다. 사람의 일손을 돕는 보조 도구에 머물던 기술은 어느새 복잡한 인지 판단까지 스스로 해내는 유능한 노동력으로 부상했다. 일상과 일터의 경계를 허무는 기술의 진화는 수십 년간 유지된 고용 생태계에 균열을 일으키며 세계 노동 시장에 긴장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기술의 업무 수행 능력이 정교해지자 기업들의 투자 방향도 인적 자원 육성에서 기술 자본 구매로 급격히 이동하고 있다. 신입 사원을 뽑아 교육하며 함께 성장하던 일자리 생태계를 AI 구독, 로봇 도입이 채우는 것이다. 이에 따라 노동 시장에 첫발을 들이려는 청년들의 취업 문턱이 가팔라지는 실정이다.
이같은 고용 불안의 배경에는 AI와 자동화 시스템이 결합하며 나타난 압도적인 비용 절감 효과가 있다. 현대차 미국 공장에 투입될 예정인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의 예상 가격은 2억원 수준으로 미국 현지 생산직 근로자 두 명의 연봉 합계보다 낮다. 테슬라가 개발 중인 '옵티머스'도 국내 9급 공무원 초임 연봉 수준인 3000만원대를 목표로 잡고 있다. 국가데이터처에 따르면 국내 제조업 취업자는 최근 3년 새 12만명 넘게 사라졌으며 특히 정규직인 상용직 중심으로 일자리가 줄고 있다. 과거 매년 1000명씩 기술직을 뽑던 현대자동차마저 채용 규모를 절반 수준으로 축소하면서 청년들이 선호하는 '양질의 일자리'가 자취를 감추는 추세다.

◆ 한국 '글로벌 로봇 밀도 1위'…사무직 AI 영향 확산
지난해 국제로봇연맹(IFR)이 발표한 '월드 로보틱스(World Robotics) 2025'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2024년 기준 세계 평균 로봇 밀도는 제조업 노동자 1만명당 177대다. 특히 한국의 제조업 로봇 밀도는 1220대를 기록하며 세계 1위를 차지했다. 전 세계 평균보다 7배가량 빠르게 인간의 일자리를 기계로 대체하는 중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한국 다음으로는 싱가포르(818대), 중국(567대), 독일(449대) 등이 뒤를 잇는다.
사무직 일자리 역시 AI의 소용돌이에 휘말렸다. 한국은행 분석에 따르면 직무를 AI가 대신할 가능성을 뜻하는 'AI 노출도'가 높은 직업에는 인사·경영 전문가와 법률 전문가 그리고 기업 고위 임원 등이 이름을 올렸다. 반면 농림, 어업이나 하역 등 몸을 쓰는 육체노동 직업은 상대적으로 AI의 영향권에서 비켜나 있다.
또 AI가 일을 대신할 수 있는 가능성만큼이나 '사람의 개입'이 필요한 정도 역시 따져봐야 한다. 한국은행은 업무를 AI에 맡겼을 때 발생할 수 있는 오류의 심각성이나 의사 결정의 무게를 고려한 지표 '조정 AI 노출도'를 적용한 직군 분류도 밝혔다. 조정 AI 노출도 분석 결과 법례 검색이나 서류 검토를 돕는 법률 및 감사 사무 종사자와 통신 판매직, 고객 상담원 등은 AI가 업무를 대신할 위험이 컸다. 전체 근로자의 27%가 이처럼 일자리를 위협받거나 임금이 줄어들 수 있는 위험군에 속했다.
반면 최종 판결을 내리는 판사나 환자의 생명을 책임지는 의사 등은 AI 기술에 많이 노출돼 있어도 위험도는 낮았다. 우리 사회가 결과의 중대성을 고려해 AI에게 전권을 맡기기보다 인간의 최종 판단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AI를 도구로 활용해 생산성을 높이며 더 많은 보상을 받을 것으로 예측됐다. 다만 이는 근로자가 AI를 능숙하게 다룰 능력을 갖췄을 때만 가능한 결과다.
◆ "신입 채용 사실상 올스톱" 고용 한파 더 심각해질 수도
국내 노동 시장에서는 특정 직무를 중심으로 청년 고용 감소가 감지된다. 국회예산정책처가 발표한 '생성형 AI 고노출 직업 현황과 최근 청년 고용' 보고서를 보면 지난 2022년 11월 생성형 AI가 등장한 이후 작년 상반기까지 AI 고노출 직업군으로 분류된 회계 및 경리 사무원, 고객 상담 및 모니터 요원, 작가 및 언론 관련 전문가 직무에서 청년 고용이 줄어드는 추세를 보였다.
다만 기술이 업무를 돕는 과도기적 특징도 나타난다. 천경록 국회예산정책처 경제분석관은 "전문직은 저연차 직원에서 생성형 AI가 자동화보다는 업무를 보완하는 방식으로 작용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천 경제분석관은 "올해 1월 AI 고노출 직업 비중이 높은 것으로 짐작되는 전문 과학 기술 서비스업 고용이 이례적으로 감소했다"며 "후속 연구를 통해 청년 고용에 대한 영향을 면밀히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글로벌 지표에서도 유사한 흐름이 확인된다. 스탠퍼드대학교와 전미경제연구소(NBER)가 함께 쓴 '탄광 속의 카나리아' 보고서를 보면 AI의 영향을 많이 받는 상위 20% 직종에서 22~25세 청년 노동자의 일자리는 약 16%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탄광 속의 카나리아'는 과거 광부들이 탄광에 들어갈 때 유독가스에 민감한 카나리아를 데려가 위험을 미리 알아챘던 것처럼 다가올 위기를 가장 먼저 알려주는 신호를 뜻한다. 향후 더 심각한 상황의 고용 한파가 올 수 있다는 예측이다.
이러한 변화는 국내 취업 현장에서도 감지된다. 국내 IT 대기업에서 일하는 한 개발자는 "최근 회사에서 신입 개발자를 뽑아 가르치는 대신 AI 코딩 도구를 적극적으로 도입해 기존 경력직들의 작업 속도를 높이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며 "신입 채용은 과거와 비교하면 사실상 멈춘 상태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청년들도 취업 시장의 변화를 체감하고 있다. 한 구직자는 "이제는 챗GPT 등 AI를 실무에서 어떻게 잘 다룰 수 있는지를 자기소개서에 가장 공들여 쓰고 있다"며 "AI와 함께 일할 수 있는 능력을 증명하지 못하면 서류를 통과하기도 어렵다"고 토로했다. 결국 기술을 능숙하게 다루는 경력직의 수요는 늘어나지만 일반적인 업무를 돕는 청년들의 일자리 수요는 감소하는 추세다.
◆ 글로벌 빅테크 고용 감축과 커지는 양극화
AI 시대의 고용 시장 재편은 글로벌 IT업계에서도 확인된다. 주요 분석 기관의 통계를 보면 기술 분야에서만 2024년 9만5000명, 2025년 12만7000명 이상이 일자리를 잃었다. 빅테크 기업들은 점차 인력 채용보다 데이터센터 등 기술 자산을 확보하는 데 역량을 집중하는 추세다. 인텔은 AI 반도체 중심으로 회사를 재편하기 위해 2만7159명을 줄였고 마이크로소프트는 AI 시설 투자를 늘리기 위해 1만5387명을 내보냈다. 아마존 역시 AI로 물류 시스템을 효율화하면서 3만 명 정리를 목표로 하고 있다.
경제 규모는 커지지만 노동자의 몫은 줄어드는 역설적인 상황도 예고됐다. 한국은행 분석에 따르면 AI 도입은 한국 경제의 국내총생산(GDP)을 최대 12.6% 높이고 생산성을 3.2%까지 끌어올리는 엔진이 될 전망이다. 하지만 AI 설비를 갖춘 대기업과 기술을 능숙하게 다루는 소수 전문가에게 성과가 쏠리면서 전체 소득 중 노동자가 가져가는 비중인 노동소득분배율은 오히려 하락한다는 예측도 나왔다. 양극화가 심화할 수 있다는 경고다.
고용 시장의 대전환을 앞두고 노동자들의 충격을 완화할 사회적 안전망 구축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확산하고 있다. 신입 사원을 채용해 AI 협업 인재로 육성하는 기업에 세제 혜택을 주는 등 성장 사다리를 복원해야 한다는 제언이 나온다. 아울러 기술 발전으로 얻은 경제적 이익의 일부를 근로자 재교육에 투입하는 등 사람이 기술에 소외되지 않고 공존할 수 있는 국가 차원의 정책 설계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제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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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편에서 계속